▶ 자박자박 소웁탐방 - 동해 두타산 무릉계곡
전국에‘무릉’을 지명으로 쓰는 곳이 여럿 있다. 경북 안동에는‘무릉유원지’가 있고, 강원 영월엔‘무릉도원면’이 있다. 무릉도원은 중국 동진의 시인 도연명의‘도화원기’에 나오는 표현으로‘이상향’‘별천지’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진(晉)나라 때 무릉의 한 어부가 배를 저어 복숭아꽃이 아름답게 핀 수원지로 거슬러 올랐다. 굴속에서 진(秦)나라의 난리를 피해 온 사람들을 만났는데, 하도 살기 좋아 이들은 바깥세상의 변천과 세월의 흐름을 몰랐다고 한다. 지금의 후난성 북부 동정호 기슭의 창더(常德)에 위치한다. 동해시 두타산 무릉계곡도 충분히 그럴 만한 곳이다.
■두타산 베틀바위가 멋지다길래…
동해 삼화동 무릉계곡은 초입의 호암소를 시작으로 용추폭포까지 약 4km에 달한다. 깊은 골짜기라는 명성에 비하면 완만한 경사에 길이 순탄해 산책하는 기분으로 가볍게 다녀올 수 있다. 그러나 베틀바위 코스를 포함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급경사 협곡 중턱의 바위 군상을 연결한 험한 길로 2년 전에야 등반 코스가 개설됐다. 계곡 아래와는 완전히 다른 산수가 펼쳐진다.
매표소를 통과해 다리 하나를 건너면 왼쪽으로 바로 ‘베틀바위 산성길’ 이정표가 보인다. 시작부터 가파른 오르막이다. 약 1.2km를 걷는 동안 해발 180m에서 500m 지점까지 단숨에 치고 오른다. 거리는 짧아도 산을 잘 타는 사람이 아니면 1시간 30분가량 잡아야 한다. 고도가 상승할수록 계곡 맞은편 풍광이 하나둘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늘어진 소나무 가지와 줄기만 앙상한 고목 사이로 크기를 가늠하기 힘든 커다란 암반이 보인다. 물길 자국이 선명하다. 비가 내린 직후라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만 해도 가슴 벅차다. 이름하여 그림폭포다.
수직에 가까운 계단을 힘겹게 오르면 드디어 베틀바위 전망대다. 우측으로 날카롭게 쪼개진 바위 기둥이 능선을 이루고 있다. 그 형상이 마치 베틀을 닮아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한국의 장자제' ‘동해의 소금강'이라는 수식은 식상하다. 예사롭지 않은 풍광에 하늘나라 선녀가 인간세상으로 내려왔다 비단 세 필을 짠 후 올라간 곳이라는 이야기도 회자된다. 전체를 파악하기 힘든 절경만큼 무한정 상상의 나래를 편다. 올라오는 길이 전투 같아 어쩌면 ‘배틀(Battle)바위’로 불러도 되겠다는 엉뚱한 생각도 해 본다.
아닌 게 아니라 인근에 ‘무릉산성’ 흔적이 남아 있다. 임진왜란 때 전투가 벌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확인되지 않는다. 그냥 둬도 범접하기 어려운 요새인데 이 험한 산중턱에 산성이 왜 필요하고 전투가 웬 말일까 싶다.
베틀바위가 목적인 사람은 이곳에서 왔던 길로 하산하지만, 산행을 즐기는 이들은 능선을 따라 ‘무릉협곡 마천루’를 거쳐 쌍폭포와 용추폭포를 감상한 다음 계곡을 따라 하산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베틀바위는 미끼상품이자 맛보기다.
이곳에서 협곡 마천루까지는 약 2.4km, 또다시 가파른 계단이 시작된다. 베틀바위와 연결되는 바위 능선 꼭대기까지 약 200m를 기다시피 오른다. 사람의 두상처럼 생긴 커다란 암석에 ‘미륵바위’라는 이름이 붙었다. 조선 숙종 때의 문신 허목(1595-1682)의 ‘두타산기’, 삼척부사를 역임한 김효원(1532-1590)의 ‘두타산일기’, 조선 중기의 시인 김득신(1604~1684)의 ‘두타산’에 미륵봉이 기록돼 있다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믿음이 부족한 탓일까, 상상력 빈곤일까. 미륵불의 자비가 잘 전해지지 않는다. 멀지 않은 위치지만 계곡 입구에서는 베틀바위나 미륵불의 존재를 확인하기 어렵다. 길도 제대로 없었을 400여 년 전 이곳 미륵바위까지 올랐다는 얘기여서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미륵불부터 길은 한결 순탄해진다. 그늘 가득한 숲길을 걷노라면 험한 바위산이라는 것이 실감 나지 않는다. 오르락내리락하던 산길은 ‘산성 열두폭포’에서 다시 한번 시야가 확 트인다. 매끄럽게 닳은 낭떠러지 바위가 차례로 작은 물웅덩이를 품고 있다. 탐방로에서는 한두 개만 보이는데 수십 미터 바위 절벽에 이런 물웅덩이가 12개나 이어진다. 산중턱으로 이어진 길을 돌아가면 그 웅장한 모습이 조금 더 명확히 파악된다. 봄 가뭄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 폭포 물줄기를 볼 수 없는 점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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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글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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