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도라, 오픈카라 추울텐데 만토를 걸치지 않구…” “아니야 메리, 니가 준 길고 멋진 이 실크 스카프면 충분해. 안녕! 난 사랑을 나누러 갈게…” 부웅~.
근 백년전인 1927년 9월의 어느 날 밤, 남불 니스의 해안도로에서 그 마지막 말을 남기고 출발한 이사도라는 잠시후 불과 50세의 나이로 허망하게 우리 곁을 홀연히 떠났다. 목에 두른 스카프가 바람에 날리며 자동차 뒷바퀴에 끼이면서 차에서 내동댕이쳐져 그녀는 그렇게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한 것이었다.
나는 우리 집에 전축을 처음 들여온 날의 환희를 아직도 가슴 떨리게 기억한다. 고딩 때인 1976년경이었다. 당시 최고급이던 천일사의 별표전축 같은 비싼 브랜드는 집안 형편에 꿈도 꿀 수 없어 청계천 세운상가로 12살 위의 큰형님을 따라가서 비록 조립품이었지만 깎고 또 깎아 사서 조심조심 안고 버스를 타고와 집에 들여놓았는데 그날은 돌이켜 볼 때 내 생애 최고로 기쁜 날 중의 하루였다.
사장님이 보너스로 끼워주신 도시락만한 크기의 8트랙 ‘폴 모리아’ 악단의 경음악 테이프를 카트리지에 조심조심 밀어넣으니 세상에 생전 처음 들어보는 기가 막힌 스테레오 사운드로 Love is Blue, 눈물의 토카타, 엘빔보(El Bimbo)가 연주되더니 이윽고 도저히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이곡 맨발의 이사도라가 내 가슴을 촉촉이 적시며 흘러 나왔던 것이다. 스윗 식스틴 청소년 시절, 그 곡은 심야 청소년 라디오 방송의 인기 성우 김세원님이 진행하던 ‘밤의 플랫폼’ 시그널 뮤직이기도 하였다.
아... 그게 바로 현대무용의 창시자인 이 이사도라를 말하는 거였구나... 오죽하면 조선 현대무용의 효시라 하는 숙명여학고 출신의 전설의 월북 무용가로 지금은 평양 애국렬사릉에 안장됐다는 고 최승희(1911-1969, 향년 58세)를 조선의 이사도라 던컨이라 부르며 오늘날까지 인구에 회자돼왔을까. 불현듯 제목으로만 알던 구슬픈 서정의 멜로디가 바로 이사도라 던컨의 일생을 기리는 것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아차렸으니 이런 형광등이 또 어딨을까.
이사도라 던컨은 이제 매우 구체적으로 내게 다가온다. 우선 그녀가 내가 이민 와 21년째 살고 있는 이곳 샌프란시스코 출신(1877생)이라는 것이다. 금융가였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하면서 하이틴 시절 오클랜드로 이사가 바느질하는 엄마를 돕는 틈틈이 동네의 소녀들에게 춤을 가르치다 20세때 뉴욕으로 건너가 본격 춤을 배우는 한편 자신만의 독창적인 춤을 개발하였다고 한다. 1차 대전을 전후한 뒤숭숭하던 시절에 유럽으로 건너가 베를린, 런던, 모스크바 등에 무용학교를 세워 전통 발레의 틀에 박힌 의상과 모션에서 탈피해 대영박물관의 그리스 평면 양각의 이미지 등에서 영감을 얻은 춤사위를 개발해 유명 디자이너 뽀와레가 디자인한 그리스 풍 야회복을 입고 맨발로 추는 자신만의 아름다운 춤사위를 개발하면서 전 세계에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고 한다. 오늘날 국제 무용계에 최고로 권위있는 상이 바로 ‘이사도라 던컨’ 상인 것은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다.
두 번째는 이곳 베이 지역에서 한국 국립무용단 수석 무용수 출신의 한인 무용가로 옹댄스 컴퍼니(Ong Dance Company)를 이끌며 샌프란 헙스트 극장 등에서 활발한 안무 활동을 해오던 옹경일 안무가가 바로 이 이사도라 던컨 상을 무려 2번이나 수상했다는 것이다. 4년 전인 2019년, 그녀가 두 번째로 이 상을 수상하였을 때는 샌프란의 일식집에서 타계하신 N 선배님을 비롯 그녀를 아끼는 뜻있는 분들이 모여 조촐한 축하디너도 함께 했었는데 이후 몰아닥친 팬데믹으로 많은 예술가들이 활동에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아 요즈음은 공연이나 활동소식이 매우 뜸한 것은 샌프란시스코 문화계를 위해서나, 좋은 공연으로 가끔 예술에의 갈증을 위로받아오던 교민사회를 위해서나 매우 안타까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고 하겠다. 팬데믹으로 인한 어려움이 비단 예술계뿐이었으랴 마는 팬의 한사람으로서 옹경일 무용가의 조속한 무대 복귀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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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환 팔로알토 갤럭시 부동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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