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묵고있는 호텔방에서 커튼을 열면 왼쪽으로 우뚝 솟은 남산타워가 보인다. 15층이어서 시야를 방해하는 건물이 적으니 뭣보다도 하늘이 시원하게 열려 보기 좋다. 남산 아래론 남대문시장이 펼쳐져 있다. 숭례문과 가까운 골목 쪽이 잘 보이는데, 빼곡히 들어선 가게들과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정겹다. 정면으로 시선을 돌리면 손이 닿을 듯한 곳에 숭례문이 있고 쭉 뻗은 대로 끝에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변모한 서울역 고가도로가 있다. 그리고 그 너머로 서울역의 옥색 지붕이 마치 목을 빼고 나를 반기는 듯하여 나도 손을 흔들었다.
‘남대문’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랜드 마크가 남대문 시장일 것이다. 숙소에서 신호등 하나만 건너면 되는 거리여서 약속이 있는 날을 빼곤 살 게 없어도 한바퀴 돌고 온다. 한국에 올 때마다 옷을 사러 한번은 갔던 곳인데 가까운 곳에 있으니 자주 가게 된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시장이 나를 불러서 간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코로나 이전엔 새벽시장에 가곤 했는데 지금은 새벽시장이 열리지 않는다. 상인의 말에 의하면 시장 경기회복이 안돼서 장사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 시장내 상가들은 보통 5~6시면 문을 닫는데, 그때쯤 갈 때도 있다. 통로변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은 늦게까지 열기도 하고, 낮보다는 시장통이 한산하여 천천히 걷기엔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노을이 깔리는 시장길을 천천히 걷노라면 고은의 그 꽃이란 시가 떠오른다.
“내려갈 때 보았네//올라갈 때 보지 못한//그 꽃”
전엔 바쁘게 스쳐가느라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남대문시장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도 그 자리에 있었고 지금도 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었고, 화재로 재건축한 곳도 있지만 원형은 건재하다. 그곳을 삶의 터전 삼아 살아냈던 상인이나 손님들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여러 차례 바뀌었으나 또 다른 사람들로 채워져 600년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시장은 늘 거기에 있는 것이겠거니 여겼다. 안부도 묻지 않고 제 볼일만 보고 떠나는 손님처럼 나 역시 가치나 역사를 돌아본 적이 없다. 서울에 살 때도 마찬가지였다. 시장입구에서 필요한 물건을 파는 곳이 어디인지 묻고 조급히 다녀갔었기에 시장안을 꼼꼼하게 돌아본 기억은 없다. 그래서였을까, 시장이 나를 자꾸 부르는 것 같았다.
남대문 시장은 1414년 조정이 감독하는 시전형태로 시작했다. 나라에서 몇 명 상인에게 정부 임대전 형식의 자리를 내주고 장사를 한 게 시초라고 전해진다. 1608년 대동법이 시행되면서 대동미와 대동포의 출납을 관장하던 관청인 선혜청이 남창동에 설치되면서 지방특산물도 판매하게 되었다. 가보니 지금은 터만 남아 있었다. 쌀로 세금을 받던 관청이 존재했다는 게 경이로웠다. 1897년에는 최초의 근대적 상설시장의 틀을 잡게 되었으며 광복 후 남대문시장상인 연합회가 만들어졌고, 1964년에 건물주와 상인이 공동출자한 주식회사 형태로 이어져오고 있다. 2만평의 땅에 1만개의 점포, 상인 및 시장 종사자 5만여 명에 하루 방문자가 30만명이라 하니 상상을 초월하는 숫자이다.
“남대문 시장에 없으면 서울 어디에도 없다”는 말이 생길 만큼 다양한 종류의 상점이 입점해 있다. 먹거리 또한 풍성하다. 효자손만두는 대여섯번 갔고, 남편이 추천한 야채 호떡도 사 먹고, 칼국수 골목에서 보리밥을 시키면 칼국수와 냉면을 맛보기로 주는 것도 먹어보았다. 돌아다니며 오만 걸 다 먹었는데, 갈치조림만 못 사 먹었다. 기껏 줄을 서서 기다렸는데 일인분은 안 판다고 문전 박대를 했다. 앞에 써놓았다면 시간 낭비를 하지 않았을 텐데 미안하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서비스 정신은 개선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류 영향으로 외국인 방문이 많아졌기 때문인지 남대문 시장인근의 역사체험 코스가 생겼다. 수입상가, 선혜청 터, 숭례문,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제일은행 본점을 도는 코스다. 수입상가에 갔다가 엄마생각이 나서 울 뻔했다. 외국 물건 구하는 게 어려웠던 시절에도 도깨비시장이라 불리던 그곳에서 샴푸, 소시지, 화장품 등을 사다 쓰곤 하셨다. 물론 지금은 합법적으로 들여온 물건을 당당하게 팔지만 그땐 그렇지 않았다. 그곳엔 미제뿐 아니라 다른 나라 제품도 많았다. 가장 반가웠던 건 동전 파스였다. 일본이 가까워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엄청나게 싸서 놀랐다.
공간은 역사를 대변한다. 이름과 역할은 바뀌었어도 오랜 세월 자리를 지켜온 공신 같은 건물을 보면 숙연해진다. 남대문의 하루하루를 읽으며 그곳을 일구고 세우며 살아갔던 이들을 생각했다. 온종일 이어지는 차량의 행렬과 마스크를 벗은 시민들의 활기찬 모습을 보니 제자리로 돌아간 역동의 서울이 느껴진다. 남대문 읽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돌아보고 싶은 곳이 많다. 이곳을 떠나는 날까지 구석구석 돌아보며 보듬어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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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애 시인·수필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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