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한 달 전, 우리 학교의 봄방학이 시작되던 날, 나는 새 집으로 이사를 했다. 집값은 치솟고 모기지 대출 금리는 나날이 오르기만 하던 때 이사를 하다니, 나에게 평생 없을 운을 가져다 쓴 것일까? 가난하지도 풍족하지도 않은 집에서 자랐지만, 부모님이 장사를 시작한 이후로 자영업자들의 일희일비하는 매일을 일찍이 가까이서 지켜본 나로서는 경제적인 자립이란 불안정한 매일을 지켜 나가는 댓가로 얻게 되는 그런 것이었다. 그런 나에게 내 이름으로 된 집이 생긴다니, 그것도 모두가 인플레이션으로 힘들어 하는 시기에 이런 일을 경험하다니, 기분이 얼떨떨했다.
그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집을 사는 일이 얼마나 복잡하고 심리적으로 압박 받는 일인지는 많은 이들에게 들었지만, 막상 경험해 보니 그 일면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웠다. 사실 그것보다 나와 내 파트너에게 가장 어려웠던 일은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동네를 우리에게 주어진 예산안에서 찾는 일이었다. 이민자로서 타국에 정을 붙여 살아야 하는 모든 이들은 알 것이다. 내가 우리 동네라고 부를 수 있고, 정붙여서 살 수 있는 곳을 찾기란 꽤나 큰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꼭 일어날 수 있는 일도 아니지만).
막연히 시작하게 된 이 과정이 사실은 내 삶에서 중요한 것들의 순위를 결정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엔 걸어 다니기 좋은 동네일 것, 다양한 인종과, 문화, 언어를 가진 이들이 섞여 살고, 홍수가 나지 않는 동네 일 것, 패티오가 있을 것, 남향일 것, 노을을 볼 수 있는 서향의 창문이 있을 것, 야드가 있을 것, HMart에서 너무 멀지 않을 것, 2층 이상은 아닐 것, 충분한 주차공간이 있을 것, 직장에서 너무 멀지 않을 것 (교통체증을 고려해도 40분 이상 걸리지 않는 거리) 등등, 여러가지의 조건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부동산 중개인은 나와 파트너의 예산에서 그런 동네를 찾기란 불가능 하다고 얘기 해 주었다. 미래를 생각해 투자할 만한 곳으로 눈길을 돌리는 게 어떻겠냐는 말도 여러 번 들었다. 우리의 예산을 벗어난 매물은 리파이낸스를 하거나, 렌트로 돌려 모기지를 갚는 방식의 여러 가지 방법으로도 계약이 가능하다고도 우리에게 뜨문 뜨문 흘려보냈다.
이와 관련한 여러가지 대화들을 곱씹으며 내 마음은 이상한 텐션과 그로인한 불편함으로 가득찼다. 이 와중에서 나를 제일 괴롭혔던 것은, 나의 우선순위를 만족시키는 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우리가 좋아한 동네들은 홍수가 나지 않고 걸어 다니기 좋고 귀여운 상점들이 즐비했지만, 우리의 예산에서 턱없이 벗어났고, 이미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된 역사가 있었고, HMart와 가까이 있는 집들은 예산에 맞는 집들이 더러 있었지만, 우리의 스타일에 맞지 않았고 또 중요하게는 직장과 꽤 멀어 운전시간과 가스비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 인종, 특히 여러 나라에서 온 아시안, 라티노, 흑인 이민자들이 형성한 커뮤니티는 홍수로 인한 피해를 종종 입지만, 그 보상을 제대로 받기도 전에 또 다른 홍수로 곤혹을 치루고 있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은 동네는 이미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중인 곳들이었다. 레드 라이닝이라는 역사와 자본주의가 결합된 시스템은 다른 얼굴을 한 채 사람들을 출신 배경과 자산의 정도로 가르고 또 가르고 있었다.
실제로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역사적으로 흑인들이 대부분이 살고 있는 곳인 third ward에 있다. 백인과 흑인의 분리 역사의 증거인 기차길이 남아 있으며, 경찰차가 항상 순찰 중이다. 이 곳은 홍수로 인한 수해피해를 빈번히 입는 동네로, 5년전 허리케인 하비 때에는 캠퍼스의 여러 곳이 누수로 큰 불이 나기도 했다고 한다. 그 건물 중의 하나가 지금은 리모델링을 끝낸 나의 연구실이 있는 건물이기도 하다. Third Ward와 더불어 바로 윗 동네인 Second Ward는 히스패닉이 많이 거주하는 동네로 멕시칸 레스토랑이 즐비하다. 이 두 동네 모두 현재 다른 동네에 비해 싼 땅 값으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의 조짐을 열심히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새로 지은 삐까뻔쩍한 큰 건물과 모던한 느낌의 집들의 모습이 오래되어 허물어져 가는 집들 사이로 어색하게 솟아오른다.
지난 2년 여간 헤매고 또 헤매고 난 후 드디어 계약한 나의 첫 집은 나에게 큰 성취감과 뿌듯함, 그리고 안락함을 가져다 주고 있지만, 이 과정을 거치며 알게 된 마냥 즐겁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아마 이 과정을 거치며 알게 된 마주하기 싫은 진실들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보고 아직 미성숙하고, 어리다고 얘기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숙한 어른이 상상하는 미래에 내가 살고 싶은 동네는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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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정 / 휴스턴대학교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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