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교향곡 8번’을 듣고 있으면 마치 ‘음악은 이래야 합니다’하고 말하는 것 같다. 직선의 강직함… 그 저항을 뚫고 곡선의 여유가 느껴져 온다. 서기 2027년이 되면 베토벤의 타계 200주년이 된다. 200년 동안 클래식 작곡가의 거인으로 꾸준히 사랑받아온 베토벤은 과연 누구였을까? 사람들은 베토벤을 ‘운명 교향곡’의 주인공쯤으로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베토벤의 8번 교향곡은 조금 다르다. 조금 여유 있고, 둥글게 사는 모습이 있다고나 할까. 베토벤에게 있어 삶은 점점 멀어져가는 그의 청각처럼… 운명과의 갈등, 애증과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8번 교향곡에서는 어딘가 유쾌함이 느껴져 온다. 운명과 어느 정도 화해했기 때문이었을까. 왠지 극복된 자의 자유로움… 정직하게 걸어가는 삶의 모습이 있을 뿐이다. 자연과 벗하는 무위(無爲)의 삶이랄까… 교향곡 8번에서는 어딘가 쓸쓸함 조차도 마치 소슬바람처럼 삶의 모든 지저분함과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 보내는 후련함이 있다.
베토벤은 모두 9개의 교향곡을 남겼는데 그중에서도 8번 교향곡이 가장 미스테리하다. 마치 모체는 베토벤이 분명한데 9마리 강아지 중 유일하게 (베토벤 표) 점박이가 아닌 강아지 같다고나 할까. 베토벤이 잠깐 소풍을 떠나서 작곡한 작품인 듯 보인다. 그럼에도 이 무색무취한 교향곡 8번은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교향곡 중의 하나에 속한다. 전혀 자극적이지 않은데도 오히려 내면에 울리는 감동이 어딘가 신비롭기 조차한다. 사람마다 각자 성향이 다르니 8번 교향곡을 좋아한다고 해서 딱히 이상할 것도 없지만 그 이유가 가장 베토벤답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조금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베토벤의 교향곡을 들으면서 베토벤답지 않은 교향곡을 찾는다면 조금 어페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이유는 8번에는 유일하게도 베토벤의 다른 교향곡에는 없는 ‘여유’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여유’를 찾고 싶으면 하이든 등 다른 여유 있는 작품들을 찾으면 되지 왜 하필이면 베토벤에게서조차 여유를 찾느냐 토를 달 사람도 있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여유는 그런 한가한 마음, 넉넉한 자세 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 여유를 말하는 것이다. 조금 어려운 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수많은 음악 중에서도 유일하게 철학적 여유라는 것이 느껴지는 작품이 바로 베토벤의 교향곡 8번이기도 하다.
클래식은 소위 ‘소수를 위한 예술’이라 불린다. 별로 찾지 않는 음악… 그러나 꾸준히 연주되는 음악. 꾸준히 팔리는 음반 그러나 결코 대형 이벤트가 될 수 없는 음악회… 클래식을 찾는 인구는 한정되어 있다. 마치 겨울 공원을 찾지 않는 것처럼 조용하고 쓸쓸한 클래식 정원을 찾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러나 세인의 관심이나 인기와는 무관하게 마음의 치유, 정신적인 여유를 찾고 싶은 사람들은 소수이긴 하지만 꾸준히 클래식을 찾고 있다. 아니, 사람이라면 누구나 궁극적으로 클래식(음악)을 찾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 속에는 삶의 상처… 치유… 인생의 진정한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도(道)라는 건 별거 아니다. 상처를 치유받고 마음의 여유를 찾으면 된다. 사람은 큰 부(富)를 얻거나 높은 학업의 성취, 명예를 걸머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모욕당했을 때, 체면이 손상됐을 때, 공공장소에서 새치기당했을 때, 허허… 한발 물러서기는 쉽지 않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바보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베토벤은 원래 여유가 없는 사람이었다. 결코 물러서지 않았으며 고집스러웠다. 예술적이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분노, 운명에 대한 항거 등이 그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늘 외톨박이였으며 외로웠고 말년도 그렇게 행복하지 못했다.
베토벤만큼 자유에 대한 항거… 고상한 예술과 이상으로 향하려는 노력이 큰 사람도 없었다. 귀족에게 한없이 나약했던 괴테에 대한 분노, 나폴레옹의 수하에게조차 빌빌대던 귀족은 제아무리 돈을 많이 댄 후원자라 해도 절대 용서하지 않았다. 베토벤은 아마도 음악으로 이 세상과 전쟁을 하려 했던 투사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베토벤에게 있어 분노는 고상하지 못한 세상에 대한 분노였지 자신이 이해받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만은 아니었다. 투쟁과 극복… 그러나 그런 것으로 모든 것을 다 말하기에는 저 너머 음악의 세계는 너무도 아름다웠다. 베토벤은 1812년 교향곡 7번과 더불어 8번 교향곡을 발표했다. 수많은 사람이 마치 박커스(창조의 신)가 술에 취한 듯 강렬한 선율을 담고 있는 7번 교향곡에는 열광했지만, 저 너머의 또 다른 세상…장쾌한 선율이 뿜어내는 베토벤의 철학과 그 여유의 멋은 이번에도 이해하지 못했다. ‘나의 왕국은 공중에 있다.’ 베토벤은 늘 자신의 세계와 세상의 세계와의 엇박자를 인내해야했다. 베토벤이 말하는 왕국은 어떤 것이었을까… 외로운 초인이 살고 있는 그 세계가 궁금한 사람들은 베토벤의 교향곡 8번을 들어보면 된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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