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자들이 분석한 광범위한 서베이 결과에 따르면 진보주의자들보다 보수주의자들 사이에서 행복하다는 대답이 더 많이 나왔다. 학자들은 지난 수 년 간 이같은 현상을 설명해줄 다양한 이론을 제시했다.
첫 번째 설명은 보수주의자가 결혼과 종교활동 등 개인의 행복과 연결된 활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설명은 보수주의의 정의에 담겨있다. 보수주의자는 기존질서에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을 일컫는다.
세 번째 설명은 두 번째 설명에 연결되어있다. 이들 두 그룹을 대상으로 한 성격 테스트에서 진보주의자는 보수주의자보다 새로운 경험에 훨씬 개방적이지만 지나칠 만큼 신경이 과민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잠재적 위험까지 미리 경계하는 진보주의자는 슬픔과 걱정 같은 부정적 감정을 달고 살기 마련이다.
필자는 몇 년째 이런 종류의 토론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유는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버락 오바마 시절만 해도 진보주의자는 결코 침울해 보이지 않았다. 희망과 변화의 슬로건을 내건 오바마의 유세장은 “그래, 우린 할 수 있어!”를 외치는 젊은 민주당지지자들의 열기로 뜨거웠다. 미국은 전진 중이며, 역사의 물길이 다시금 정의를 향해 흐르고 있다는 확신이 그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서서히 분위기가 바뀌었다.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는 젊은이를 중심으로 미 국민의 영혼에 부정적 영향을 주었다. 뒤이어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이 좌우 할 것 없이 국민 모두의 정서에 먹물을 끼얹었다.
이로 인해 젊은 진보주의자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캐더린 킴브론, 리사 M. 베이츠, 세스 J. 프린스와 캐더린 M. 케인즈는 2005년부터 2018년까지 12학년생들의 감정상태를 살펴본 후 이를 바탕으로 보고서를 작성했다. 2021년에 나온 보고서에 따르면 우울증 증상을 지닌 진보적 여학생의 비율이 급등했고, 같은 증세를 보이는 진보적 남학생의 비율 역시 높게 나왔다. 보수성향의 남녀학생 가운데서도 높은 수치가 나왔지만 진보성향 학생들 사이에 기록된 것만큼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진 않았다. 이런 결과만 놓고 보면 슬픔은 이념과 연결되어있다.
최근 우파의 심리상태가 크게 흔들렸지만 좌파에 속한 많은 사람들 역시 ‘부적응 비애’(maladaptive sadness)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이런 사고방식은 세 개의 주된 특징을 지닌다.
첫째는 재앙적 사고(catastrophizing mentality)다. 많은 사람들은 ‘미국병’을 돌림병이라 생각한다. 아메리칸 드림은 가짜고, 기후변화는 막을 수 없으며, 조직적 인종주의는 영구히 계속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재앙 선언’은 미국의 잔혹함에 눈떴다는 자기과시 방식이 되었다.
유명언론인인 매튜 이그레시아스는 나쁜 상황을 재앙으로 과장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우울증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인들은 재앙적 사고의 순환을 깨뜨리려 노력한다. 과장된 거품을 떼어내고 실질적으로 통제가 가능한 문제의 실체를 찾아내기 위해서다.
둘째는 피해에 대한 극단적인 감수성이다. 이런 감성의 소유자는 공격적이고 안전치 못한 연설에 끊임없이 시달린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우려는 안전 공간, 사전경고, 취소문화 등으로 연결된다. 유명 블로거인 질리 필리포빅은 자신이 느끼기에 문제가 있거나 폭력적이라고 생각되는 상황에 폭언과 비난을 퍼붓는 태도는 젊은이들에게 장기적이고도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 강조한다.
복원성과 정신적 웰빙에 관한 이제까지의 연구결과는 “내 인생의 설계자는 바로 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피해의식과 상처, 인생에 대한 수동적 태도를 자신의 기본설정으로 삼는 사람들”에 비해 훨씬 성공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셋째는 비난문화다. 감정적으로 불안정할 때 사람들은 종종 지나칠 정도로 신랄한 용어에 의존해 감정풀이에 나선다. 지난 수 년 동안 우리가 목격한 매도와 비난의 치열한 공방전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예를 들어보자. 데이먼 링커는 최근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론 디산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나쁘긴 해도 트럼만큼 끔찍하진 않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자 온라인상에서 누리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디산티스를 그저 나쁘다고 평가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파시스트이자 완전한 악마라고 말해야 한다!”
이런 시각을 지닌 사람들에게 극단적인 퇴마사의 주술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대의를 배신하는 행위이다.
이런 언어사용 방식은 자기파과적이다. 만약 극단적 비방이 우리가 찾는 기구라면 다음번 비방전의 피해자가 누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언제 매도를 당할지 모르는 공포 분위기 아래서 살다보면 건강한 정서를 지닌 사람조차 방어적인 태도로 글을 쓰거나 연설을 하게 된다.
필자는 ‘사회적 각성’의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는 견해에 동의한다. 사회적 상황은 점차 안정되고 있다. 이제 필자가 제시하는 결론과 독자들이 내린 결정이 일치하길 바란다. 건강한 정치를 원한다면 변화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자신에게 있음을 믿고, 그 같은 믿음을 스스로 약화시키지 말아야 한다.
데이빗 브룩스는 2003년부터 뉴욕타임스의 컬럼니스트로서 정치, 문화, 사회과학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현재 PBS‘뉴스아워’와 NBC의‘언론과의 만남’(Meet the Press)의 해설자이며,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한‘소셜 애니멀’ 등 다수의 저서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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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브룩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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