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있었다면 괜찮았을까?
아마도 최소한 그렇게 놀라진 않았을 것이다. 뉴스와 일기예보에 민감한 사람이니 폭풍이 오기 전에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 몇 시쯤 왔다 몇 시쯤 우리 동네를 지나가는지 정도는 알고 대처했을 테니까.
남편이 출장을 가게 되었다고 했을 때 내심 좋았다. 부엌일과 텔레비전 소음에서 해방된다는 것과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해서만 시간을 쓰면 된다는 점에서 오히려 내가 특별 휴가를 받아 떠나는 기분이었다. 코로나 이전엔 간혹 출장을 가곤 했는데, 코로나가 창궐했던 지난 삼 년은 집과 회사만 오갔다. 운전해서 네 시간 거리에 있는 시댁에 간 게 아마도 가장 멀리 간 외출이었을 것이다.
남편은 일이 끝나면 곧바로 집에 오는 칸트형 인간이다. 귀가 시간이 거의 정확하다. 십여 분의 시차가 생겼다면 그건 러시아워 때문이지 그의 탓이 아니다. 게다가 얼마나 부지런한지 집에 와서도 가만히 앉아 밥을 받아먹는 법은 없다. 청소, 빨래, 설거지 상 차리기 등 보이는 대로 집안일을 한다. 도움이 되었으면 됐지 귀찮게 하는 사람이 아닌데, 어느 순간 그런 남편을 보는 게 숨 막혔다. 타이밍의 문제였던 것 같다. 내가 편한 시간에 내가 했으면 좋겠는데, 저녁 시간에 깔끔을 떠는 게 불편했던 모양이다.
불후의 명작을 쓰는 것도 아닌데 뭔가 집중해야 할 시간에 들려오는 청소기 소리,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물소리, 텔레비전 소리, 뉴스를 보며 욕하는 소리까지 원치 않는 시간에 나는 모든 소리가 거슬렸다. 누가 들으면 호강에 받혀 요강에 똥 싸는 소리 한다고 하겠지만, 극도로 예민해질 때는 정말 요강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싶을 만큼 설사에 시달렸다.
달라스의 칸트가 베트남으로 떠난 후, 이틀 동안 문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자가격리형 인간인 데다 내가 하는 일이 생각하고, 쓰고, 읽고, 가르치는 일이다 보니 혼자 있어도 심심치 않고 종일 바빴다. 내 삶은 코로나 전과 후가 크게 다르지 않아서 모두가 힘들어했던 그 시기에도 견딜 만했다. 모처럼 해방의 기쁨을 누리며 밤새 일 하고 아무 때나 먹고 졸리면 아무 데서나 쓰러져 잤다. 텔레비전과 SNS와도 담을 쌓았다. 남편 출장 가면 자유부인이 된다는 게 바로 이런 기분이구나 싶었다.
모처럼 느꼈던 평화가 깨진 건 나흘째 되던 날 밤이었다. 열심히 작업하던 원고를 저장할 새도 없이 불이 나갔다. 일순간 사위가 캄캄했다. ‘내 원고…’하는 생각뿐이었다. 냉장고 돌아가던 소리가 멈추자 이내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전기가 나가면 알람이 울리는 모양이었다. 그러더니 밖에서 긴급 경보 사이렌을 울렸다. 뭔가 심상치 않은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금방 들어올 줄 알았던 불은 한참이 지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핸드폰 충전을 안 해서 밧데리도 얼마 없었다. 최대한 아껴야 했다. 핸드폰 플래쉬를 켜고 초와 라이터를 찾아 불을 켰다. 촛불이 만든 분위기가 근사했다. 남편에게 카톡을 해서 알람을 어떻게 끄는 건지 물었다. 자기 핸드폰으로 할 수 있는데, 우리 집에 전기가 나가서 끌 수 없다는 문자가 뜬다며 방법이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울려 대는데 고문이 따로 없었다. 청소기 소리에 스트레스받는다고 불평한 벌을 받는 건지 더 큰 소리에 시달렸다.
창가에 가서 블라인드를 열었다. 바람이 무섭게 불고 있었다. 나무 허리가 반은 휘어지는 것 같았다. 이내 우박이 떨어졌다. 깜짝 놀랐다. 창문이 깨질 것만 같아 겁이 났다. 지붕을 때리는 소리 또한 요란했다. 정보에 밝은 옆집 아줌마에게 전화를 했다. 바람이 시속 80마일의 속도로 몰아치는 폭풍 주의보가 발령되었는데 몰랐냐며 지나갈 때까지 안전한 곳에 들어가 있으라고 했다. 일순간 뉴스에서 보았던 최악의 폭풍 피해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갔다. 공포가 밀려왔다. 하지만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무사히 지나가 주길 바랄 뿐.
그 와중에 배가 고팠다. 가스는 들어오겠지 싶어 켰는데 켜지지 않았다. 가스를 점화하는 것도 전기였다. 남편에게 가스를 틀고 라이터 불로 켜도 되냐고 물었더니 날아갈 수 있다며 말렸다. 냉장고를 여니 컴컴한 공간에서 김치 냄새가 훅 들어왔다. 한국 사람이 맡아도 기절할 냄새였다. 부엌 싱크대 위로 촛불을 옮겼다. 어제 지인이 사다 준 떡이 보였다. 평소에 웃돈을 얹어줘도 안 먹는 팥떡을 한 쪽 먹으며 책을 펼쳤다. 그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바람도 없는데 촛불이 흔들렸다. 일렁이는 불빛 때문에 글씨가 어른거렸다. 책 읽기를 포기했다. 선조들은 어떻게 호롱불과 달빛 아래서 공부했을까? 반딧불이를 잡아서 불을 밝히고 공부했다던 그들이 새삼 위대해 보였다.
무서운 바람 소리와 귀가 먹먹하도록 울리는 알람 소리를 들으며 침대에 누웠다. 근간 불평만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내가 부족한 건데, 어쨌다고 환경 탓을 했을까. 해방은 뭔 놈의 해방? 남편 없는 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하늘이 거둬 가시고자 하면 오늘 밤 한방에 거둬 가실 수 있는 건데 모자란 인간이 감사를 모르고 불평했다고 생각하니 회개가 절로 나왔다. 나의 해방은 자유롭지 못했다. 앞으로 쓸 해방일지는 잘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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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애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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