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최초의 여성시장으로 한 달 전 취임한 캐런 배스 시장이 노숙자 문제의 해결을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임기 1년 내에 1만7,153명의 노숙자를 임시 또는 영구 주거지로 이주시키겠다고 공약했던 그녀는 실제로 취임 즉시 노숙자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곧바로 런칭한 ‘안전한 실내’(Inside Safe) 프로그램에 따라 최근 할리웃 거리에 살고 있던 31명과 베니스 지역의 홈리스 96명을 인근 모텔 등 셸터로 이주시켰다.
배스 시장은 과연 올해 말까지 홈리스 1만7,000여명의 숙소를 마련할 수 있을까?(현재 LA시의 노숙자수는 4만1,000여명)
거의 전적으로 돈이 해결할 수 있는 이 문제는 배스 시장이 얼마나 주정부 및 연방정부와 잘 협력하여 충분한 예산을 확보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그리고 만일 이 어려운 문제를 4년 동안 지속적으로 잘 해결해낸다면, 배스 시장은 오는 2026년 임기가 만료되는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이을 가장 강력한 후보가 될 것으로 정가에서는 점치고 있다. LA시 최초의 여성시장인 그녀가 가주의 첫 여성주지사 겸 첫 흑인주지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 주는 172년 역사 동안 40명의 주지사를 배출했지만 그 중에 여성과 흑인은 한명도 없었다. 미국에서 아직 한 번도 여성주지사가 나온 적이 없는 주가 18개 있는데, 가주가 그 중 하나라는 사실은 좀 유감스럽다. 가장 유색인종이 많고, 가장 진보적인 민주당 강세지역인데 말이다. 애리조나에서는 지난 선거에서 벌써 5번째 여성주지사 케이티 홉스를 선출했다.
현재 미국의 주지사 50명 가운데 여성은 12명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9명이었으나 지난 중간선거에서 3명을 추가해 역대 가장 많은 여성주지사가 탄생했다. 7개주에서는 현직이 재선되었고, 3개주에서 첫 여성 주지사를 선출했다. 뉴욕 주에서는 부지사였던 캐시 호컬이 2021년 앤드루 쿠오모 전 주지사가 성추행 스캔들로 사임하면서 주지사직을 승계했는데 지난 선거에서 당당하게 승리함으로써 뉴욕주 최초의 여성주지사가 되었다.
물론 이들이 모두 당적과 이념을 같이하는 것은 아니다. 아칸소 주의 새라 허커비 샌더스와 사우스 다코다의 크리스티 노엄 같은 트럼프 추종자도 있고, 매서추세츠 주의 모라 힐리와 오리건 주의 티나 코텍처럼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민주당적의 진보적 주지사도 있다.
이같은 근본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여성주지사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은 중요하다. 모두 편견과 불평등의 경험을 공유하며 살아온 탓에 여성 문제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남성 중심으로만 돌아가는 정치판에서 차일드케어, 낙태, 성추행과 성폭행 등의 이슈에 대해 거의 일치되게 여성들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공직에 나선 여성 정치인의 숫자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미국의 첫 여성주지사는 거의 100년전인 1925년 와이오밍과 텍사스에서 동시에 나왔다. 와이오밍의 넬리 테일로 로스와 텍사스의 미리엄 퍼거슨은 그러나 아쉽게도 남편의 주지사직을 승계한 ‘운좋은’ 케이스였다. 로스는 사별한 남편의 자리를 물려받았고, 퍼거슨은 탄핵당한 남편이 계속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내세운 허수아비였다.
1967년 앨라배마 주에서 럴린 월리스가 첫 여성주지사로 선출됐는데 그녀 역시 주지사 연임을 금지한 앨마배마 주법 때문에 물러나게 된 남편이 섭정하기 위해 내보낸 케이스였다. 수줍은 성격에 마지못해 공직에 앉았던 그녀는 취임 1년4개월 만에 사망했다.
자신의 힘으로 주지사에 당선되어 풀텀을 채운 여성은 1974년 코네티컷 주의 엘라 그라소가 처음이다.
작년 11월 중간선거는 주지사뿐 아니라 연방의회에서도 상하원 통틀어 역대 가장 많은 여성 의원을 배출했다. 상원 25명 하원 124명, 총 149명으로 전체의 25~28%를 차지한다. 이 가운데 아시안 출신 여성은 하원에 9명, 상원에 2명이 있다.
지난해에는 연방의회뿐 아니라 연방대법원에도 여성대법관이 역대 최다로 늘어났다. 은퇴한 스티븐 브라이어 대법관의 후임으로 바이든 대통령이 최초의 흑인여성 케탄지 브라운 잭슨을 임명함으로써 총 4명의 여성대법관이 수프림 코트에 포진하게 된 것이다. 9명으로 구성된 대법관의 성비율이 남5 대 여4로 거의 동등해진 것은 참으로 놀라운 약진이다.
그런데 2020년 타계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은 “대법원에 여성대법관이 충분해질 때가 언제일 것 같으냐”는 질문에 “아홉 명일 때”라고 답했었다. 이에 사람들이 깜짝 놀라자 긴즈버그는 “남성 대법관이 9명이었을 때는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는 촌철살인의 한마디를 남겼다. 그녀의 논리에 따르면 미국에 여성주지사가 충분해질 때는 언제일까? 50명!
세상의 남녀 비율은 50 대 50이다. 그런데 정계와 법조계 주요직에서 여성의 비율은 절반의 절반도 안 된다. 남녀가 평등한 세상은 아직도 한참 멀었다는 얘기다.
그건 그렇고, 캐런 배스 시장이 잘 해낼 수 있을까? 바이든의 러닝메이트로 거론됐을 정도로 유능하고, 자신이 한 말은 반드시 지킨다는 평판을 갖고 있는 배스 시장이 4년 동안 LA 시정을 잘 이끌어나가 또 한번 역사에 이정표를 세우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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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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