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조성진 리사이틀에 다녀온 감상이 좀 복잡하다. 음악과 연주는 더할 수 없이 좋았는데 몇가지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고, 그 작은 것들이 좋았던 전체경험을 덮어버린 느낌이다.
조성진은 이날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곡들을 연주했다. 헨델의 ‘건반모음곡 5번’과 브람스의 ‘헨델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 브람스의 ‘8개의 피아노소품’(1, 2, 4, 5번), 슈만의 ‘교향적 연습곡’, 그리고 현대 작곡가 소피아 구바이둘리나의 ‘샤콘느’가 레퍼토리였다.
잘 아는 음악보다 모르는 음악 듣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날 연주회는 더없이 즐겁고 흥미로웠다. 나무랄 데 없이 아름답고 깨끗하게 연주하는 조성진은 가끔 너무 절제한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날 콘서트에서는 폭넓게 다양한 스타일로 기교와 감정을 충분히 표현하면서 만석의 청중을 자신의 플레이에 몰입시켰다. 우아와 섬세, 서정과 격정, 비탄과 분노와 환희가 순간순간 재빠르게 옷을 갈아입는 파워풀한 연주였다.
떠나갈 듯한 기립박수에 답한 앵콜 곡은 감미로운 헨델의 미뉴에트 G단조(빌헬름 켐프 편작)였고, 열화 같은 청중의 박수갈채가 그치지 않자 다시 무대로 나와 쇼팽의 폴로네이즈 ‘영웅’으로 마무리했다. 두 시간 동안 모르는 곡 듣느라 고생한 관객들에게 주는 선물이었을까. 7분이 넘는 힘차고 열정적인 폴로네이즈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이날 프로그램의 절반은 오는 2월초 도이치 그라모폰(DG)에서 발매되는 조성진의 8번째 음반 ‘헨델 프로젝트’에 수록된 곡들이다. 그는 지난 연말부터 여기 녹음한 곡들로 레퍼토리를 구성해 한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도시에서 리사이틀을 갖고 있다. 미국에서는 작년 12월에 어바인의 소카 퍼포밍아츠센터, UC 버클리, 시애틀, 보스턴에서 거의 같은 곡들을 연주했다.
그동안 쇼팽, 드뷔시, 모차르트, 슈베르트의 음반을 내놓은 조성진의 이번 헨델음반은 좀 색다르다. 왜냐하면 헨델은 ‘메시야’와 ‘수상음악’ ‘왕궁의 불꽃놀이’, 그리고 오페라들로 유명하지, 건반음악은 거의 알려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엔 피아노가 없었고 건반악기는 하프시코드 류밖에 없었다. 이날 헨델의 건반모음곡에서 조성진이 페달에서 완전히 발을 떼고 연주한 이유도 하프시코드에는 페달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조성진은 헨델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바로크 시대에 가장 유명한 사람은 바흐이지만 몇년전 헨델의 하프시코드 모음곡들을 발견하고는 얼마나 대단한 작품인지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날 연주회에서 무척 이상했던 부분이 있다. 조성진이 첫 곡을 빼고 나머지 곡들을 모두 붙여서 연주한 것이다. 보통 리사이틀에서 연주자들은 한곡이 끝날 때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고 다시 앉거나 아니면 퇴장했다가 다시 나와서 연주를 계속한다. 인사나 퇴장을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쉬면서 곡이 끝났다는 암시를 준 후 새로운 분위기로 다음 곡을 연주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날 조성진은 전반에서 구비아둘리나의 ‘샤콘느’와 브람스의 ‘변주곡과 푸가’를 마치 한 곡처럼 내리 연주했다.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현대곡과 낭만시대 곡이었는데 말이다. 후반에서도 브람스의 ‘8개 피아노소품’과 슈만의 ‘교향적 연습곡’을 잠시의 쉼표도 두지 않고 그대로 연달아 쳤다.
또한 수많은 변주들조차 쉼 없이 모두 붙여서 연주했다. 이날 프로그램의 특징은 거의 모두 변주곡들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헨델 모음곡 4곡, 브람스 변주곡과 푸가 25곡, 브람스 피아노소품 중 4곡, 슈만의 교향적 연습곡이 15개의 변주로 구성돼있다. 보통 이런 변주곡의 경우, 각 변주마다 스타일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다음 번호로 넘어갈 때는 충분히 쉬고 치는 것이 상례다. 그런데 조성진은 전체를 하나처럼 연결하여 연주했다.
이건 좀 이상하고, 심지어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곳에서도 이런 식으로 연주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청중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작곡가들에 대해서도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다들 잘 모르실테니 내 맘대로 쉬지 않고 치겠다는 오만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을 정도로 당혹스러웠다.
또 하나 화가 났던 건 한인 청중들에 관한 것이다. 이날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은 80~90% 이상 한인들이 접수했다. 그러니 어떤 일이 벌어졌겠는가. 시작 전 디즈니홀 주변 일대는 서로 앞 다퉈 주차장으로 들어가려는 차들이 뒤엉켜 혼잡을 이뤘고 신호 무시, 레인 무시하는 차들이 서로 빵빵 대며 경적을 울려대는 바람에 조용한 다운타운이 시장통처럼 변했다. 디즈니홀을 숱하게 드나들었지만 이런 혼란은 이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당연히 지각 청중들이 늘어섰고, 첫 곡이 끝나자마자 모든 출입구에서 한인들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2019년 11월 조성진이 디즈니홀에서 데뷔 리사이틀을 가졌던 때와 똑같았다. 그때 조성진은 조용히 앉아서 마지막 한사람이 착석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음 곡을 쳤지만 이번에는 기다려주지 않고 바로 두 번째 곡을 연주했다.
그리고 연주회 내내 끊이지 않는 기침소리와 소음… 어느 음악회에서나 기침소리는 피할 수 없는 방해물이다. 하지만 이날처럼 쉬지 않고 앞뒤에서 기침소리가 들려오기는 처음이었다. 요즘 같은 시기에 그렇게 염치없이 기침을 계속 해대면 앞 옆 뒤에 앉은 사람들은 얼마나 더 괴로웠을까.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조성진은 관객들에게 바라는 점으로 “손수건으로 가려서 기침소리를 좀 죽여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조성진의 팬이라면 새겨듣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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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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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 소음은 도를 지나쳐도 한참. 기침약을 먹고 오던지 기침약으로 안되면 공석으로 두던지, 인터미션에 집에 가던지. 물건은 또 왜 그리 많이 떨어뜨리는지. LYFT 타려고 급하게 콘서트장을 나서는데 문을 잡고 있어주니까(내가 손을 놓으면 누군가 몸에 문이 부딪히니까) 여성 남성 할 것 없이 아무도 고맙다기는 커녕 눈길 한 번 안주더라고요. 인터미션 때 화장실에서도 비숫한 경우를 당했던 터라 . . . 미국 땅에 있으면 미국식 문화 예절도 지켜줬으면. 피아니스트의 수준에 맞는 관객 문화가 많이 아쉬웠던.
저도 그 곳에 있었네요. 영롱하고 깨끗하고 시적이고 열정적이고 감각적이면서 세련된 연주도 감동이었지만 고상함, 평온함, 겸손함, 자신감 이런 조합이 너무 멋진 연주자. 조성진 피아니스트가 곡들으 붙여서 친 것은 프로그램 구성 및 해석적인 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여겨서일 것이고요. 수 년동안 그의 음악과 인성을 접해온 팬이라면 '오만'과 '무례'가 얼머나 동떨어진 단어인지 잘 알거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