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은 거대한 경제적,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들이닥친 해였다. 지금 전 세계는 무지막지한 인플레이션과 에너지 위기, 고금리와 경기침체 우려에 시달리고 있다. 그뿐 아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사회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한 상태다. 이 같은 모든 상황을 종합해보면, 미국은 거센 탁류를 헤쳐 나갈 유일한 국가처럼 보인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게재된 에세이에 따르면 “미국 경제의 현실은 높은 이윤을 올리는 기업들이 기록적인 숫자의 인력을 고용하고, 이들에게 인상된 임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가 경제 감속 페달을 밟으면서 일부 문제가 발생하고 있기는 하지만 현재의 경제적 강점들은 미국에 분명 장기적 혜택을 가져올 것이다. 정부의 코비드-19 구제 프로그램 덕분에 미국인의 개인 저축액은 유례없이 높은 수준을 기록 중이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이루어진 개혁에 힘입어 미국 은행들은 안정을 유지해가며 세계 금융시장을 호령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기존의 에너지와 대체 에너지를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다. 게다가 달러화 덕분에 미국 정부는 세계의 그 어떤 나라보다 수월하게 채권을 발행할 수 있다.
반면 유럽은 심각하고도 장기적인 에너지 위기에 직면한 상태다. 중국은 제로-코비드 전략의 출구를 찾는데 실패했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서방의 혹독한 경제제재로 글로벌 경제와 첨단기술 흐름에서 고립됐다. 개발도상국들은 높은 에너지 가격과 달러 강세에 따른 채무부담 가중이라는 이중고에 허덕인다. 미국이라고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총체적인 불확실성의 시대에 가장 믿을만한 나라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모두가 고전하는 시기에 유독 미국만이 잘 나가는 이유가 뭘까? 양호한 경제 데이터의 뒷면에는 비범하고 강력한 혁신의 정신이 자리 잡고 있다. 이번 주제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긴 하지만 로널드 브라운스타인이 최근에 내놓은 한 권의 책이 이 문제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정리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Rock Me on the Water”라는 제목이 붙은 브라운스타인의 신간서적은 1970년대 중반의 미국 대중 문화사를 다룬 역작이다.
브라운스타인은 1960년대 초반과 중반의 미국 대중문화, 그중에서도 특히 영화와 TV 쇼는 밋밋하고, 비정치적이며 생명력이 없다고 평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할리웃은 “제 2차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와 서부극, 뮤지컬, 그리고 무엇보다 십계와 같은 대서사극에 중독된 상태”였다. 60년대 말까지 텔레비전은 “건스모크” “보난자” “루시” “경이로운 디즈니의 세계”와 같은 건전한 오락성을 표방하는 프로그램들로 채워졌다. 그러나 베이비붐 세대의 등장과 함께 이들 영화와 TV 쇼는 빛을 잃었다. 주간 영화 관람객 수는 1950년과 1960년 사이에 50% 이상 감소했다.
이어서 음악을 필두로 영화와 모든 포맷의 텔레비전 쇼에도 이 같은 순응주의적 문화와 결별하려는 저항과 혁명이 일어났고, 1970년대 중반에 이르면 록 뮤직이 대중문화의 대권을 거머쥐게 된다. 영화산업은 “잃어버린 전주곡”(Five Easy Pieces), “보니와 클라이드” “택시 드라이버” 등 날 선 작품들이 주류로 들어선다. TV 쇼는 재미있으면서도 정치성이 높은 “올 인 더 패밀리”가 최고 시청률을 찍었다.
이 같은 과거와의 결별은 필자에겐 대단히 미국적인 정신으로 느껴진다.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의 사고를 거부하고, 전통을 밀어내며, 그들만의 새로운 음악과 영화, TV쇼를 만들었다. 일종의 광적 에너지에 사로잡힌 젊은이들은 불경하고, 파괴적이다. 그러나 그 에너지가 새로운 대중문화를 창조했고, 결과적으로 미국과 세계를 재창조했다. 위계질서와 전통에 대한 이런 종류의 공격이 미국 이외의 보다 안정적인 다른 사회에서 나오리라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현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흥미롭게 들리겠지만 브라운스타인은 전통과의 결별이 그 당시 대다수의 미국인들에게 얼마나 시끄러운 마찰음으로 들렸을지 떠올리게 만든다.
전통과의 결별과 함께 단순한 분노의 표출을 넘어서는 파괴적이고 불경한 정치가 뒤따랐다. 정치인 암살, 블랙 파워 운동과 블랙 팬더, 심바이어니즈 해방군이 기세를 떨치던 폭력적이고 때론 지저분하기까지 한 시기였다. (심바이어니스 해방군은 언론재벌의 상속녀 패티 허스트를 납치하고, 미국 땅에서 경찰과 사상 최악의 총격전을 벌였던 단체이다.) 톰 헤이든과 제인 폰다가 앞장선 뉴 레프트 운동은 정당과 미국의 전체 정치 시스템에 무차별적인 총공세를 펼쳤다.
그러나 저항은 오래 가지 않았고, 곧바로 역풍이 불었다. 리처드 닉슨, 로널드 레이건을 비롯한 정치인들은 당시의 과격한 청년문화를 거칠게 비난하며 집권에 성공했다. 그럼에도 청년문화는 묵직한 영향력과 지구력을 과시했다. 스티브 잡스는 그의 자서전에서 1970년대 실리콘 밸리의 기업인 정신과 청년의 저항정신을 월터 아이작슨이 하나로 묶어 놓았다고 말한다. 그의 지적대로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인텔 등 다소 무질서하게 보였던 그 시기의 신생 첨단기업들은 결국 글로벌 경제를 새롭게 재편했다.
필자는 오늘날의 미국 문화가 1970년대의 기존 질서와 전통을 뒤흔들었던 교란적 요소들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지 궁금하다. 아무래도 그보다는 훨씬 부르주아적이 아닌가 싶다. 극단적 저항에서 출발한 문화는 오늘날 대형 상업활동으로 재빨리 변질된다.
정치 분석가인 로스 다우다트는 요즘 문화의 상당부분은 만화 캐릭터와 줄거리를 끊임없이 리메이크한 퇴폐적이고, 파생적인 문화라고 말한다. 포퓰리스트 우파 진영에서 분노가 표출되긴 하지만 그것은 닉슨과 레이건에게 연료를 제공했던 향수어린 분노의 일종으로 미국을 전진시키기보다 되찾으려는 열망이다.
필자는 현재 미국 문화에 침투한 ‘퇴폐’가 일시적 현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권력과 위계질서에 대한 공격을 장려하고, 창업을 높게 평가하며, 전통과 기존 관행에 개의치 않는 특성이 미국의 ‘본색’으로 남아야 한다.
기업인들은 “항상 배고프고, 언제나 우직하게”(Stay hungry, Stay foolish)는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대 졸업식 축사를 종종 입에 올린다. 하지만 그것은 1970년대 반문화의 아이콘이었던 스튜어트 브랜드의 “호울 얼스 카탈로그”(Whole Earth Catalog)에 나오는 구절이다. 잡스의 입을 통해 유명해진 이 같은 정신은 인종관계나 기후변화와 관련해 기성세대와 과감히 결별하려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아직도 자주 목격된다. 젊은이들은 1970년대의 미국에서 영감을 얻어야 한다.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국가였던 미국은 반대와 불만, 급격한 변화를 수용할 능력을 유지하고 있음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거기 어딘가에 미국의 지속적 성공 비결의 근원이 있을 것이다.
예일대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파리드 자카리아 박사는 국제정치외교 전문가로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CNN의 정치외교분석 진행자다. 국제정세와 외교부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석가이자 석학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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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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