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했다. 비단 스포츠에만 해당되는 금언이 아닐 테다. 나는 올해 ‘실리콘밸리 스케치’를 시작하면서 탁월한 인물의 마음을 다루려고 마음먹었다. 마음이란 무엇인가. 마음은 가슴에 있는가. 아니면 마음은 머리에 있는가. 오랫동안 궁금해한 질문이다. 과학적으로 그리고 기술적으로 마음은 뇌에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인간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마음이 심장에 있다는 말도 성립한다고 믿는다. 창업가가 주인공인 실리콘밸리에서 나는 주변인의 시선으로 일과 생활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나는 도전자였고 언더독(underdog)이었다. 부와 명성이 부족한 나는 마음만이라도 충만하게 먹어야만 했다. 그렇다. 중요한 것은 굴하지 않는 마음이다.
시인 함민복은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 중심과 주변의 경계에 서서 올해 나는 나만의 이야기와 내러티브를 찾으려고 애썼다. 안이한 감동에 빠져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을 반복하는 것은 지면낭비이자 직무유기다. 결국 한 사람의 삶은 자신의 말과 주장에 대한 행위 근거를 쌓아가는 과정으로 요약될 것이다. 많은 이가 새의 눈(bird’s eye)으로 실리콘밸리를 바라볼 때 나는 벌레의 눈(worm’s eye)을 탑재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실리콘밸리가 내세우는 압도적 수치와 거대한 서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진솔한 이야기와 미시적 내러티브가 필수적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다행히 얼마전 나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책을 발견했다.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의 편집국장인 질리언 테트가 쓴 <알고 있다는 착각>이다. ‘비즈니스와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의 영문판 원제는 <인류학 시야(Anthro-Vision)>다.
질리언 테트는 책에서 “딱딱한 경제모형과 같은 20세기의 도구만으로 21세기를 탐색하는 것은 한밤중에 나침반의 눈금만 읽으면서 어두운 숲을 지나가는 격이다”고 단언한다. 또한 “나침반의 눈금만 읽다가는 나무에 부딪힐 수 있으므로 터널 시야는 치명적이다”며 “주변을 둘러보기 위해서는 인류학 시야가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테트는 인류학 시야를 기르는 방법을 크게 두 가지로 제시한다. 첫째는 ‘낯선 것을 낯익게 만들기’고 둘째는 ‘낯익은 것을 낯설게 만들기’다. 나는 테트가 제시한 방법을 나의 이국생활에 적용하면서 책을 읽어나갔다. 첫 번째 국외근무지인 이란에서는 모든 게 낯설었다. 나는 일하는 틈틈이 페르시아어를 배웠고 현지 대학교를 다니면서 이란학을 공부했다. 언어와 문화로 대변되는 낯선 것을 낯익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5년이 걸렸다. 미국은 어떨까. 강원도 출신이지만 사실상 대단히 서구화된 세계에서 40년 가까이 자라온 내게 미국은 낯익은 곳이었다. 영어는 적어도 페르시아어보다 열 배는 편했고 지천에 널린 게 맥도날드와 스타벅스와 코카콜라였다. 지난 2년 간의 미국생활은 낯익은 것을 낯설게 만들기 위한 내면의 투쟁과도 다름없었다. 매일 실패하는 나는 여전히 도전자이자 언더독의 입장이다. 함민복 시인의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는 말을 다시금 되새긴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질리언 테트는 인류학 시야를 바탕으로 “사회적 침묵에 귀를 기울이자(Listen to Social Silence)”고 제안한다. 나는 테트의 아이디어를 상대적으로 소외된 분야에 마음을 쏟자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나의 실리콘밸리 생활에 응용해본다. 실리콘밸리에서 근무하며 나만의 해답을 꼭 찾고 싶은 과제는 ‘무엇이 탁월한 창업가들을 탁월하게 만들었는가’다. 탐구기간은 삶 전체가 되어야 하므로 현역에서 물러났거나 현재 존재하지 않는 인물들을 대상으로 한정한다. 내게 가장 흥미로운 기업가를 세 명만 꼽자면 애플의 스티브 잡스,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나이키의 필 나이트다. 이들 중 아무도 나를 직접 만나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말과 글을 통해 무엇이 그들을 탁월하게 만들었는지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내가 찾은 공통점은 하나다. 마음이다.
스티브 잡스는 선심(禪心, Zen’s Mind)에 천착했다. 잡스는 특유의 열정으로 평생 선에서 강조하는 직관적 통찰을 수련했다. 잡스가 죽었을 때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에게는 구도자 요가난다의 <어느 수행자의 자서전>이 배포됐다. 일생을 선의 마음에 심취해서 살았던 잡스 자신의 뜻에 따른 것이다. 잡스가 선심이라면 제프 베이조스는 초심(初心, Beginner’s Mind)이다. 베이조스의 철학은 ‘첫날’ 정신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베이조스는 “둘째날은 정체됨, 무관함, 극심한 쇠퇴로 결국 남은 것은 죽음 뿐이다”며 “따라서 항상 첫날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필 나이트는 나아가 선심과 초심을 동시에 이야기한다. 나이트가 쓴 자서전 <슈독>의 첫 문장은 스즈키 순류의 ‘선심초심’을 인용하며 초심자의 마음을 강조한다. 이처럼 실리콘밸리에는 마음이 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살면 살수록 마음과 태도와 자세가 전부라는 생각이 굳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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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욱진 (KOTRA 실리콘밸리무역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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