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아들의 친구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슬럼버 파티 다음날 아이를 픽업하기 위해서였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의외의 광경이 펼쳐졌다. 집안이 완전 창고였다. 현관에서 거실로 향하는 복도 양편으로 물건들이 빼곡하게 쌓여있었다. 꽤 큰 2층집이었는데도 사람이 지나다닐 통로를 제외하고는 사방이 물건더미였다. 나중에 들으니 그 친구의 엄마가 어린 시절 겪은 트라우마 때문에 물건을 버리지 못한다고 했다. 저장강박증이었다.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물건에 대한 집착으로 굳어졌다.
인간의 모든 행동 뒤에는 심리적 원인이 있는 법, 물건은 단순히 물건이 아닐 수가 있다. 그렇다면 물건을 계속 사들이는 우리의 샤핑 습관은 어떤가. 옷장에 옷이 가득한데도 또 옷을 사고 신발이 넘치게 많은 데도 또 사면서 물건을 사고 또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블랙 프라이데이, 사이버 먼데이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연말 샤핑시즌이 시작되었다.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 우려가 한편에 있지만 그럼에도 소비자들의 지출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팬데믹 기간 하고 싶은 것 못하고 지낸 데 대한 분풀이 소비가 올해도 계속될 모양이다. 백화점 등 소매업계의 올 연말 매출은 전년 대비 4.5% 증가해 9,426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 많은 돈을 쓰려고 미 전국의 샤핑몰마다 사람들이 몰리고, 온라인 주문 손길들이 바빠져서 집집마다 배달박스가 쌓일 것이다. 우리는 왜 그렇게 많이 사들이는 걸까.
심리학자들이 꼽는 첫째 이유는 간단하다.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물건을 사면 기분이 좋아지는 건 누구나 경험하는 바이다. 스트레스 받거나 우울할 때 샤핑을 가면 언제 그랬더냐 싶게 기분이 가벼워진다. 기분 좋게 하는 호르몬, 도파민이 배출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는 어떤 행동이 몸에 이로우면 도파민이라는 상을 줌으로써 그 행동을 계속 더하게 만든다고 한다.
샤핑이 이로운 행동으로 분류되는 것은 진화와 상관이 있다. 수렵채집 사회를 상상해보면 이해가 된다. 먹을 걸 손에 넣느냐 못 넣느냐는 고대인들에게 죽고 사는 문제였다. 달콤한 열매를 발견하거나 사냥에 성공해 먹을거리를 손에 넣었을 때의 기쁨이 얼마나 컸을 것인가. 우리가 샤핑을 통해 물건을 손에 넣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태곳적 배경이다.
둘째는 충동을 제어하지 못하기 때문. 뭔가 맘에 드는 걸 보면 일단 사고 보는 충동구매는 생존본능과 상관이 있다고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의 라이언 하웰 심리학 교수는 분석한다. 사냥감이 보이면 고대인들은 이것저것 따질 여유가 없었다. 눈에 보일 때 일단 잡아야 생존이 보장되었다. 그 아득한 기억이 유전자에 각인되어 현대인의 충동구매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세일이라도 하면 안 사고는 못 배긴다.
셋째는 새것을 원하기 때문. 새 옷, 새 신발, 새 장난감, 새 자동차 … 아무리 좋았던 물건들도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진다. 가슴을 뛰게 할 새로운 물건을 원하게 된다. 그 외 남들이 안 가진 걸 가지면 자신이 특별한 존재가 된 듯한 느낌, 고가의 물건을 가지면 신분이 상승된 느낌, 같이 어울리는 그룹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는 비교심리 등이 우리의 샤핑을 부추긴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미국에서는 2차 대전 후부터 대량생산, 대량 마케팅, 대량 소비문화가 자리를 잡았다. 정부와 기업이 국민들의 소비를 전략적으로 부추겼다. 전쟁 중 군수품, 비행기, 탱크 생산으로 재미를 보았던 기업들이 전쟁이 끝나자 일반 소비자용품 대량생산으로 방향을 돌렸다. 세탁기, 냉장고 등 가전제품 갖추고 교외의 신규주택에서 새 자동차 타며 사는 라이프스타일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국내총생산(GDP)의 70%를 소비에 의존하는 미국경제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미국경제를 위해서 우리는 계속 소비를 해야 할 것인가. 물건을 계속 사들여야 할 것인가. 대량소비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 지 오래다. 소비주의는 물질만능주의를 부추기면서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했고, 환경을 크게 훼손했다. 가정용품과 서비스 생산 및 사용과정에서 온실개스의 60%가 배출된다는 연구보고가 있다. 그러니 제발 필요 없는 물건들은 사지 말자는 운동이 호응을 얻고 있다. 매년 블랙 프라이데이를 ‘아무 것도 안사는 날(Buy Nothing Day)’로 삼자는 캠페인에 이어 ‘아무 것도 안사는 크리스마스(Buy Nothing Christmas)‘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크리스마스에는 선물을 주고받는 것이 아름다운 전통이다. 무작정 물건을 살 게 아니라 선물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가족들이나 고마운 이들에게 어떤 선물을 하면 좋을까. 같이 음악회를 가는 선물도 좋고, 멋진 식당에서 함께 추억을 만드는 선물도 좋다. 가능하면 여행 선물도 좋겠다. ‘선물 = 물건’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샤핑하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기에는 아까운 절기이다. 크리스마스의 참 의미를 되새기며 12월을 차분하게 보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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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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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사는것 무지좋아하는데…. 지금은 몇번 더생각하고 그래도 쓸데없는것들 들고 들어옴. 룰을 만들어서 한개사면 두개나가야 하는 .. 양말이라도 나가야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