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DNA에는 특이하게도 노래를 사랑하는 피가 흐르는 것 같다. 특히 1948년 명동 시공간에서 열린 ‘춘희 공연’에 대한 열광은 어려울 때나 즐거울 때나 항상 노래를 사랑해왔던 한국민의 민족성을 말해주고 있다. 한국에 있을 당시 FM 방송 등에서 늘 화제가 되곤 했던 것이 바로 김자경 오페라단 등에서 공연하곤 했던 ‘춘희 공연’ 등에 대한 가십이었다. 당시 엄정행, 신영조 등의 테너들이 활약하고 있었고 마스크가 훤했던 엄정행 선생은 늘 ‘춘희’의 알프레도 역에 캐스팅되며 화제에 오르곤했다. 한국에서는 베르디의 많은 작품 중에서도 유독 ‘프로벤자 내고향’, ‘축배의 노래’ 등이 나오는 ‘춘희’의 아리아들을 자주 방송에 틀어주곤 했는데 한국어로 번역하여 노래한 최초의 오페라도 아마 ‘춘희’였을 것이다. 당시 바리톤 윤치호 선생이 아버지 제르몽 역을 맡아 한국어 가사로된 ‘프로벤자 내고향’을 부르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곤 하는데 그분의 자제인 바리톤 윤형씨가 얼마전 SF 오페라의 애들러 멤버로 활약하여, 본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었다.
지난 11월16일, SF 오페라에서 있었던 ‘춘희’ 공연은 필자에게는 여러모로 감개무량한 공연이었다. 그것은 그간 여러차례 ‘춘희’공연을 보아왔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춘희다운 춘희공연을 봤기 때문이고 꼭 ‘춘희’공연을 한번 보고 세상을 떠나야겠다고 하시던 고 L 위원님(본보 필진) 등이 생각나서였다. 동아일보 사회부장까지 지내셨던 L 위원님의 ‘춘희’에 대한 애착은 남다른 것이었다. 당시 어려운 세월을 살아왔던 한국인들에게 ‘춘희’는 과연 어떤 공연이었고 또 어떤 의미였길래 그처럼 다른 많은 작품들을 제쳐두고라도 (이곳에서의) ‘춘희’만큼은 꼭 한번 보고 세상을 하직해야겠다고 하셨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하필 지휘자도 한국인 김은선 지휘자였다. 공연은 기립박수를 받을 만큼 훌륭했고 무대와 연기도 훌륭했다. 사실 몇몇 지인들과 같이 가긴했지만 혼자 보기에는 너무 아까운 공연이었고 이번같은 공연은 단체관람도 추진해 볼 만하다고 속으로 다짐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베르디의 ‘춘희(La traviata)’는 매년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작품으로 선정되곤한다. ‘춘희’는 베르디의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 작품도 아니며 베르디라는 작곡가를 대표할 만한 가장 아름다운 선율이 들어있는 작품도 아니었다. 그러나 ‘춘희’는 작곡가 베르디가 가장 성공하기를 바랬던 진정성이 있는 작품이었다. 그것은 ‘춘희’가 유일하게도 작곡가의 체험이 묻어난 작품이었기 때문이었다. 베르디가 그 당시 사랑했던 여인과 작품 속의 춘희는 매우 닮은 여성으로서 당시 유럽 사회에서 결혼 상대로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던 여성들이었다. 베르디는 파리에서 뒤마 원작의 ‘춘희’ 연극을 보고 감동한 나머지 눈물까지 흘릴 정도였다고 한다. 소위 고급 매춘부를 대상으로 눈물까지 흘리면서 만든 작품이 그 당시 사회에서 환영받을리 만무했다. 베르디는 아마도 자신의 감정과 대중의 감정이 같을 것으로 봤겠지만 그러한 베르디의 감정이 이해되는데는 꽤나 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다.
베르디보다 한참 후배인 푸치니의 오페라들이 말해주고 있듯, 사람들은 전설이나 세익스피어의 문학보다는 사실적인 내용의 오페라를 더 선호한다는 것을 알수 있다. 오페라 ‘라보엠’, ‘나비부인’, ‘토스카’ 등의 작품은 어떤 전설의 이야기가 아니라 푸치니가 살던 시대의 이야기들이었다. 푸치니의 ‘라보엠’, ‘나비부인’ 등이 베르디의 ‘아이다’나 ‘멕베드’ 등보다 더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면 대중은 연극을 통한 극적 카타르시스보다는 실존적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어하며 허구의 세계보다는 사실에 더 감동한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베르디는 푸치니보다도 몇 배 많은 작품들을 남겼지만 사실주의 오페라라고 할만한 작품은 ‘춘희’가 유일했다. 그것도 초연 당시에는 전혀 이해받지 못했으며 무대를 150년 뒤로 돌린 뒤에나 겨우 인정받게 되었다. SF 오페라의 무대는 시계를 다시 베르디 당시의 19세기로 돌려서 오리지날 무대로 리바이벌했다. ‘춘희’역으로 나오는 비올렛타는 여자로서 해서는 안될 사랑을 하게 된다. 물론 그 결과는 몇배로 잔인한 댓가로 되돌아오는 것이었으며 동시에 주인공은 폐병까지 앓고 있어서 그 상심은 배가되었다. 베르디가 연민을 느낀 것은 아마도 이 이야기가 단순히 연극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뒤마라고 하는 작가의 체험이 자신의 체험과 결부되어 더 깊은 공감을 느꼈는지 모르지만 비정한 아버지역을 맡게되는 제르몽…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해야만하는 알프레도… 그 비극의 한 가운데서 울어야만하는 비올렛타의 노래들은 심금을 울리며 강한 카타르시스를 안겨 준다. 이번 공연의 주인공은 비올렛타역을 훌륭하게 소화한 소프라노 Pretty Yende였지만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김은선의 역할도 박수받기에 충분했다. 얼마전 뉴욕멧츠의 ‘라보엠’ 공연 때 뉴욕타임스 등이 평했듯 김은선의 지휘는 디테일이 살아있으며 무대 위의 성악가들과의 호흡도 완벽했다. 한인들의 음악적 DNA… 꼭 그것을 김은선과 연관짓지 않더라도 슬픈 노래, 연극을 보면 눈물 흘릴 줄 아는 한국인의 춘희 DNA라고나할까… 그 감성이 포디움 위에 계속 살아남아, 최고의 이야기를 오랫동안 들려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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