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Decision to Leave)이 지난 14일 미국 극장가에서 개봉됐다. 비평가들의 호평 속에 상영되고 있는 이 영화는 범죄수사물이자 로맨스이고, 미스터리와 스릴러가 팽팽하게 교직된 수작이다. 두 남편의 살해용의자 서래(탕 웨이)와 담당형사 해준(박해일) 사이의 매혹과 긴장이 아슬아슬하고 위태위태하게 줄타기를 하며 비극을 향해 치닫는다.
이 영화에서 슬쩍 지나치듯 나오는 섬뜩한 부분이 있다. 서래가 중국에서 간호사였을 때, 병든 자기 어머니를 본인의 간절한 부탁에 따라 안락사 시킨 ‘살인’ 전력이 그것이다. 그 사실을 캐묻는 해준에게 서래는 “원하던 방식으로 보내드렸어요. 펜타닐 캡슐 네 개면 되죠. 나도 네 개를 챙겼구요.”라고 말한다. 어머니 유해를 담은 항아리 뚜껑 밑에 4개의 청록색 캡슐을 붙여놓은 서래, 자신도 언제든 원할 때 죽으려 하던 그녀는 그러나 해준을 만난 후 새로운 사랑의 희망을 품게 된다.
여기에 등장하는 펜타닐(Fentanyl)이 바로 요즘 미국에서 비상이 걸린 마약진통제다. 특히 알록달록 캔디처럼 보이는 ‘무지개 펜타닐’이 10대 학생들 사이에 퍼지고 있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했다. 지난 몇 주 동안에만도 남가주의 여러 고등학교에서 펜타닐 과용 후 쓰러지거나 숨진 학생이 10명이나 된다. 연방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의하면 2021년 한 해 동안 펜타닐 과용으로 사망한 사람이 7만1,000여명, 18~45세 젊은이의 사망원인 1위로 코비드 19, 자살, 자동차사고로 인한 죽음보다 더 많은 숫자다.
펜타닐이 위험한 이유는 극히 적은 양으로도 근육경직, 호흡곤란, 혼수상태에 빠질 수 있고, 마이크로그램의 차이로 사망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진통효과가 헤로인의 50배, 모르핀의 100배에 달한다는 펜타닐은 신체의 시스템을 빠르게 통과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과다 복용으로 이어지게 된다.
펜타닐은 1959년 ‘얀센 제약’ 창업주인 벨기에의 화학자 폴 얀센(Paul Janssen)이 최초로 합성한 아편유사제(opioid)이다. 미국에서는 1968년 의약품으로 승인되어 정맥주사 마취제로 사용돼왔고, 1981년 얀센의 특허가 만료된 후에는 전 세계 의료계에서 말기 암이나 수술 후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에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마약성 진통제가 되었다.
그런데 지금 거리에서 유통되는 펜타닐은 대부분 중국에서 대량 불법 제조된 것으로 분말, 정제, 캡슐, 용액, 패치, 캔디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져 북미주와 유럽은 물론 호주, 일본, 한국 등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이번 핼로윈 데이를 앞두고 LA카운티 셰리프국이 “트릭 오어 트릿에 나선 아이들의 바구니에 펜타닐 사탕이 등장할 수 있다. 이를 잠깐 만지는 것만으로도 인체에 치명적일 수 있다”고 부모들에게 경고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6월에는 바닥에 떨어진 1달러 지폐를 줍지 말라는 경고가 나온 적이 있다. 텍사스 주의 한 여성이 맥도널드 화장실 바닥에 떨어진 지폐를 주웠다가 몇 분만에 온몸이 마비되면서 숨을 쉬지 못해 병원으로 이송됐기 때문이다. 같은 시기, 테네시 주에서는 주유소에 떨어진 1달러지폐와 길에서 접힌 채 발견된 10달러지폐에서 펜타닐 가루가 검출된 사건이 발생했다.
이처럼 극소량으로도 치명적이어서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마약’ ‘죽음의 마약’으로 불리는 펜타닐은 헤로인보다 환각효과가 빠르고, 값이 싸서 급속히 중독자가 늘고 있다. 단 한 번만 투약해도 굉장한 행복감과 황홀감을 느끼게 되는데 한 중독자는 “인간이 인생에서 느낄 수 있는 모든 쾌락을 넘어선 고양감을 단 한순간에 느낀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극도의 쾌락과 황홀감이 사라지면 전에는 못 느꼈던 통증과 자극에 민감해지면서 점점 더 높은 용량을 요구하는 상태로 중독이 돼버린다.
최근 들어 이 약이 젊은 층에 확산되는 이유는 마약 밀거래 조직들이 유통망 확장을 위해 호기심 많은 사춘기 청소년들에게 손을 뻗고 있기 때문이다. 의도적으로 알록달록 색을 입힌 ‘레인보우 펜타닐’로 아이들이 마치 캔디처럼 쉽게 접근하도록 유혹하는 무서운 수법이다. 아무 것도 믿을 수 없는 위험한 세상, “내 아이는 절대 그럴 리가”라는 속단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편 한국 영화계에서는 ‘헤어질 결심’이 제2의 ‘기생충’의 영광을 이어주기를 기대하는 모양이다. 내년도 오스카 국제영화상 부문에 출품할 한국 대표작으로 선정됐고, 현재 미국 개봉과 함께 홍보에 돌입했다고 한다.
하지만 ‘기생충’과 ‘헤어질 결심’은 비교가 불가능하다. 순전히 개인적인 관람 평이지만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에 비해 다소 산만하고 작위적인 느낌이 든다. 박해일의 연기도 기대만큼 인상적이지 않았고, 정훈희의 ‘안개’도 느닷 없달까…. 이 영화는 탕 웨이의 기묘하고 순수한 팜므 파탈 연기가 일품으로, 그녀의 미스터리한 분위기와 스스로 무너지는 라스트 씬이 아름답고 파격적이다.
한국 영화계의 염원처럼 ‘헤어질 결심’이 오스카상을 수상하기를 응원한다. 하지만 ‘기생충’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만한 흡인력과 설득력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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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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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1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AMC 회원으로 영화를 보던 중 '헤어질결심'을 보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매사 뒤로하고 2.15분을 보았는데... 정숙희 논설실장님의 의견에 저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또 다른 각도에서 영화를 좋게 보는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하며... 오스카상에 큰 행운이 있길 바랍니다. 저 개인적으로 3 별로 종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