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십니까? 샤강의 소설 제목으로도 유명하지만 언뜻 브람스를 선전하기 위해 만든 카피라잇처럼 들리는 문구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소설 제목처럼 브람스에 열광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브람스를 대놓고 까는 안티 브람스파도 아니다. 사실 브람스보다는 차이코프스키 등을 좀 더 좋아하는 편이라고나 할까. 두 사람은 매우 다른 형태의 음악을 한 사람으로서, 한 사람은 음악의 외형보다는 내면의 울림을 중시했고 다른 한 사람은 선율적인 미를 중시했다. 차이코프스키의 입장에서 보면 브람스는 왠지 음흉(?)하며 지나치게 까다롭고 내성적이었다. 내성적인 면이야 음악이 원래 내성적인 것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차이코프스키가 얘기하는 내성적이라는 것은 음악을 지나치게 파벌적으로 본다는 것이었다. 즉 고상한 체, 고전적인 체, 격조 높은 체 하다보니 사실 차떼고 포떼고 알맹이 하나없는 싱거운 음악에 그치고 만다는 것이다. 외형만 중시하는 것이야 천박할 수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아름다운 음악이란 우선 쉽고 누구나 공감할 수있는 외적인 아름다움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아마도 차이코프스키의 비판이었던 것 같다. 물론 음악을 오래 접하다보면 브람스의 음악도 나름 중후한 매력이 있고 내적인 감성으로 사람의 마음을 끄는 마력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나의 경우는 천성적으로 차이코프스키에 더 가까운 편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 같다. 사실 ‘브람스를 좋아하십니까?’라는 문구 자체도 별로 맘에 들어하지 않는 편이다. 브람스 자신에게나 고전음악 자체에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제목에서 엿볼 수 있는 것처럼, 브람스 음악이 주는 뉘앙스가 마치 고전음악(클래식)의 모든 것을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고 또 브람스라는 인물 자체에도 어떤 고정관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브람스를 좋아하십니까? 물론 그것이 꼭 소설 제목이 아니래도 브람스라는 인물에게서 좋아할 수 있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고 또 음악이 꼭 차이코프스키처럼 외형적으로 튀어야만 모두에게 만족을 주는 것은 아닌 것이고 보면 브람스를 좋아하든 혹은 브람스를 존경하든 개인적인 취향이니 시비를 걸 이유는 없을 것이다. 브람스의 음악을 가리켜 늦가을 분위기를 전하는 음악이라고 한다. 낙엽이 다 저버린 계절의 끝자락에서… 공허하게 가슴을 울리는 감성의 선율을 전하기는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똑같은 이유로 차이코프스키나 다른 러시아 작곡가들의 작품이 브람스처럼 늦가을의 정서를 안겨주지 않는다는 것일까. 어불성설이다.
차이코프스키와 브람스는 나이는 브람스가 6년 연상이었지만 생일은 우연스럽게도 5월7일로 같았다. 음악가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접했던 브람스와는 달리 차이코프스키는 나이 20세가 되어서야 음악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음악이란 무엇인가? 어린시절부터 끊임없이 매달렸던 브람스와 달리 꿈꾸는 자로서 음악에 대한 열망에만 매달렸던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달라도 한참 달랐다. 1888년 브람스와 차이코프스키는 라히프찌히에서 조우하게 되는데 두 사람은 분위기도 맛도 틀린 너무도 어긋난 만남이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맥주와 사이다의 차이같은 것이었다고나 할까.
세계 3대 바이올린 협주곡으로서 흔히들 브람스, 멘델스존, 베토벤의 것을 꼽곤 한다. 시벨리우스, 브르흐, 차이코프스키의 작품은 왜 3대 바이올린 협주곡에 끼지 못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예술성과 대중성 등을 반영한 측면일 것이다.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곡상도 미려하고 고전적인 기풍도 살아있다. 내면에 파고드는 간절함과 부드러움 속에 강인함… 절제, 화려함… 이런 것들이 모두 함축되어 있는 것이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마치 모든 음악을 용광로에 녹여서 새롭게 정제된 음악같다고나 할까. 반면 차이코프스키의 협주곡은 치장이 너무 심한 편이다. 예술의 중도를 지키면서도 당시까지의 모든 형식을 취합하여 재창조해 낸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칭찬받을만 하다. 그의 바이올린 소나타도 그렇지만 유독 그의 바이올린 곡들은 내면에 공명하는 아름다움이 크다. 브람스는 매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업을 마치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여 미성년자 때부터 술집, 사교장 등을 전전하며 음악을 연주하여 돈을 벌었다. 브람스가 브람스로 남게된 것은 요제프 요하임이라는 바이올리니스트를 만난 덕분이었다. 브람스와 요하임은 함께 헝가리 등을 여행하며 교분을 쌓았고 브람스의 멘토 슈만을 연결시켜준 자도 바로 요제프 요하임이었다. 그것이 요하임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브람스의 성품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주력분야인 피아노 부분보다 오히려 바이올린 곡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율들을 남긴 것은 아마도 브람스의 최대 아이러니가 아닐까 한다. 지금까지 전해오는 곡은 협주곡 및 소나타 3곡 뿐이지만 절도와 기품… 아름다움… 모든 것이 깃든 바이올린 곡은 특히 소나타 1번의 경우 클라라 슈만과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애절함이 더해져 가장 아름다운 바이올린 소나타 곡으로도 알려져 있다. 최고의 고전 협주곡 바이올린 협주곡도 그렇지만 ‘브람스를 좋아하십니까?’보다는 ‘왠지 브람스가 듣고 싶어지는…’ 바이올린의 계절이 찾아왔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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