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장춘 박사의 연구 기록과 생전 모습. [농촌진흥청 제공]
올해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수박을 8월 마지막 주나 되어서야 먹었다. 이렇게 맛있는 걸 여름 내내 못 먹었다니. 속으로 눈물을 왈칵 쏟은 한편 우장춘 박사를 떠올렸다.‘덕분에 수박 잘 먹고삽니다’라고 생각하다가 멈칫했다. 아니, 사실‘씨 없는 수박’은 박사의 업적이 아니지. 1980년대에 교과서가 수정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이 착각하고 있다. 심지어 1999년 부산시는 동래구에 씨 없는 수박 모양의 우장춘 기념관을 건립했다. 박사 탄생 100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이었지만 사실 씨 없는 수박의 최초 개발자는 일본 교토대의 키하라 히토시 박사다.
우장춘 박사와도 친밀하게 교류했던 히토시 박사가 씨 없는 수박을 처음 발명한 건 1943년 무렵이며, 정리해 논문 ‘3배체를 활용한 무종자 수박의 연구’로 발표한 건 1947년의 일이다. 우장춘 박사의 전기 ‘꽃씨 할아버지 우장춘’에 의하면 1937년 4월, 대만의 총독부 농업 시험소에서 4배체 수박을 육성해 3배체를 만들어 내려는 시도를 했다고 한다. 이런 씨 없는 수박이 한국에 알려진 건 우장춘 박사가 귀국하고도 3년이 지난 1953년의 일이다. 우장춘 박사의 중요성을 홍보하기 위해 씨 없는 수박 생산을 시연했는데 마치 그가 개발자인 것처럼 와전된 것이다.
우장춘 박사는 1898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에게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바로 아버지가 명성황후 시해, 즉 을미사변에 참여한 우범선이라는 사실이다. 다만 우범선의 사변 개입 정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1881년 창설된 별기군의 훈련대대장을 역임했는데, 일본인 자객들과 합세해 적극 가담하다 못해 시신을 불태워 연못에 뿌린 당사자라고까지 알려져 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명성황후에 의해 해산당할 위기에 처해 있던 훈련대에게 시해죄를 뒤집어씌우려는 일본의 계략에 의해 강제로 동원되었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우범선은 이후 일본으로 망명해 기타노 이치헤이라는 일본 이름으로 살다가 사카이 나카와 결혼해 맏이로 우장춘을 낳았다.
이후 1남 4녀가 더 태어났지만 가정의 평화는 오래 가지 못했다. 아버지 우범선이 일본에서 피살당한 것이다. 황국협회 부회장과 만민공동회 회장을 지내다 일본으로 망명한 고영근과 하수인 노윤명의 짓이었다.
보육원에 맡겨져서 감자만으로 끼니를 때우는 등 어려움을 겪었던 박사는 조선총독부로부터 양육비와 학비를 지원받아 생활과 교육을 이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대가는 치러야만 했으니, 조선총독부의 지시에 따라 도쿄제국대학 농학부 농학실과(실업교육 전문대)에 진학했다. 식민지인 조선의 청년에게는 실업 교육을 우선으로 권장한다는 당시 일본의 방침에 의한 진로였다.
1916년에 농학실과에 입학해 1919년에 졸업한 박사는 농학부 안도 교수의 추천으로 농림성의 농사시험장에 취직한다. 우장춘은 시험장에서 자리를 잡은 뒤 나팔꽃 연구를 시작해 1922년, 스물네 살의 나이로 유전학 잡지에 논문을 발표한다. ‘종자에 따라 감별할 수 있는 나팔꽃 품성에 관하여’라는 제목이었다.
1926년, 스물여섯에 와타나베 고하루와 결혼한 우장춘은 사이타마현의 고노스 농장으로 발령을 받는다. 세계 1차 대전 이후의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설립된 농장에서 우장춘은 나팔꽃과 더불어 피튜니아를 연구한다. 오직 더 아름다운 겹꽃만이 가치를 인정받았는데, 당시에는 씨를 뿌리면 홑꽃과 겹꽃이 각각 절반씩의 비율로 피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박사는 백 퍼센트 예측 가능한 피튜니아 종자를 개발했고, 그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해 박사 학위를 받으려 했다. 조선총독부의 방침으로 실업 교육 과정을 밟았으나 박사가 된다면 조선인으로서 받는 차별이 덜해질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30년 가을, 논문 제출 전날 연구소 건물이 불에 타 버리는 바람에 그간의 연구결과가 소실되어 버리고 만다.
아픔을 겪은 박사가 끝내 논문을 제출한 건 4년 뒤인 1934년의 일이다. ‘배추 속(屬) 식물에 관한 게놈 분석’이라는 논문에서 박사는 종은 다르더라도 속이 같은 식물을 교배하면 새로운 식물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냈다. 이를 테면 배춧속 기본 종 식물인 배추(염색체 수 10)와 양배추(염색체 수 9)를 교배해 기존의 식물인 유채(염색체 수 19)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교배의 과정을 정리하면 삼각형의 다이어그램을 이루니 이를 ‘우장춘 트라이앵글’이라 일컬었다. 논문을 통해 박사는 같은 종끼리만 교배가 가능하다는 학계의 정설을 깼다. 이를 통해 ‘농림 1호’라는 새로운 배추 품종을 개발하고 1836년 5월 4일 드디어 학위를 받는다.
학위를 받았음에도 우장춘 박사의 처우는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기수(技手)는 어찌어찌 달았지만 기사나 농장장으로는 승진하지 못했다. 임금은 애초에 낮아 25엔부터 시작했는데, 일본인 대졸 은행원 초봉이 40~50엔 했던 시절이었다. 결국 그는 농림성에 몸담은 지 19년, 고노스 농장에서 일한 지 13년 만에 퇴사를 했다. 그리고 이후 교토의 다키이 종묘 회사에 스카웃되어 일하다가 광복을 맞이하고 한 달 만인 9월 사직했다.
이후 귀국할 때까지 박사의 행적에는 빈 공간이 남아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박사는 귀국 동기 또한 명백하게 표현했던 적이 없다. 투철한 애국심을 위한다거나, 역적으로 낙인찍힌 아버지의 죄를 갚기 위해서였다고 판단하기에 갓 독립을 이룬 한국의 정세는 불안정했다. 박사 또한 일본 여성과 결혼했으니 자식들 또한 일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고, 따라서 이래저래 섣불리 동반 귀국을 결정할 상황이 아니었다. 또한 무엇보다 그의 한국어는 아주 서투르거나 아예 할 줄 모르는 수준이었다.
이런 정황 속에서 박사가 귀국할 수 있었던 건 새로이 독립한 나라의 농업을 일으켜 세우는 데 그만한 적임자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특히 박사를 적임자라 점찍고 귀국을 적극적으로 제안했던 김종의 공이 컸다. 우장춘과 타키이 종묘회사에서 함께 일했었던 그는 우장춘 박사 환국추진위원회를 조직해 성금을 모으는 한편 부산 동래에 국가의 지원을 받는 한국농업과학연구소 설립에도 관여했다. 그리하여 1950년 3월 8일 부관 연락선 신고마루호를 타고 우장춘이 귀국해 연구소 소장을 맡았을 때, 김종은 부소장으로 부임했다.
귀국한 우장춘에게 이승만 대통령은 농림부 장관 자리도 제안했지만 그는 수락하지 않았다. 육종사업과 후진양성만이 가족을 일본에 남기고 홀로 귀국한 그의 목표였다. 그 핵심에는 ‘종자 독립’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동안 조선에서는 쌀과 보리만 경작해야 했고, 그 결과 종묘업의 자본과 기술이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김치를 담가야 할 배추와 무의 씨앗을 계속 일본에서 수입해서 써야만 했었다. 이러한 현실의 개선을 위해 박사는 육종학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는 한편, 국내 재래종 및 수입 품종의 씨앗을 모아 개량에 나섰다.
원래 품종 개량 연구의 시험장은 제주도로 낙점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1951년 방문해 본 결과 박사는 제주도가 배추와 무의 시험 경작에 맞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기후가 온화하고 장마가 빨라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시기가 겹쳐 좋은 종자를 생산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환경이 되레 귤에는 적합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재배를 적극 권장했으니, 덕분에 귤이 제주도의 명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또 다른 제주의 명물인 유채 또한 박사가 일본에서 도입한 것이다. 한편 제주 대신 진도를 시험장으로 낙점해 본격적인 종자 생산에 나선 결과 병충해에 강하고 맛이 좋은 배추와 무가 널리 퍼질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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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 음식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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