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일요일, 28일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이날 오후 3시에 LA 다운타운 지퍼홀에서 ‘뮤직 박스 LA 2022’라는 특별한 음악회가 열린다. 남가주에서 활동하는 6개 실내악 연주단이 다 함께 출연하는 일종의 갈라 축제, 실내악의 대향연이다.
카메라타 퍼시피카(Camerata Pacifica), 콜번 스쿨(Colburn School), 자카란다(Jacaranda), LA 체임버오케스트라(LACO), 피탄스(Pittance), 살라스티나(Salastina)의 음악을 모두 한 자리에서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연주회가 여섯 번이나 열리는 것은 아니고, 한 단체가 약 15분씩 한두 개의 짧은 곡을 선사하는 실내악의 샘플러, 맛보기 종합선물세트 같은 삼빡한 음악회다.
이런 일은 실내악계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워낙 보기 드문 이벤트라 ‘역사적’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하고 있다. 여섯 앙상블이 함께 한다는 게 뭐 그리 대단하냐고? 사실이 대단하다.
남가주에는 이름 있는 실내악단이 약 10여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팬들의 숫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게다가 실내악보다 웅장한 오케스트라 콘서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체임버 앙상블들의 입지는 그 규모만큼이나 조촐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연주회 티켓수입만으로는 재정을 꾸려갈 수 없기 때문에 거의 모든 단체가 음악애호가 도너들의 기부에 매달리는 형편이다. 제한된 청중과 더 제한된 기부자를 놓고 파이를 갈라먹어야 하는 사정이라 치열한 물밑경쟁은 당연하다. 이런 사정은 LA뿐만 아니라 어느 대도시나 마찬가지이고, 예로부터 숱한 앙상블들이 생겨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해온 배경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난 2017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남가주 클래식 음악계의 오랜 후원자인 워너 헨리(1938-2020)가 실내악단들의 연합체인 ‘체임버 뮤직 LA’(CMLA)를 창설한 것이다. 헨리 부부는 지난 40여년간 LA 일원의 수많은 음악단체들을 후원해온 큰손 기부자로, LA 오페라의 창단 때부터 1,000만 달러 이상을 기증했고, LACO에도 300만 달러를 기여하는 등 남가주 음악계의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였다.
특히 헨리 부부는 체임버뮤직을 좋아하고 실내악단들의 열정과 실력을 높이 평가했는데, 고만고만한 단체들이 도토리 키 재기를 하며 잠재력을 키우지 못하는 모습을 늘 안타깝게 여겼다. 그가 인생 말년에 조직한 CMLA는 아름다운 실내악의 저변확대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서로 경쟁하기보다 돕고 협력함으로써 오히려 힘을 얻고 번영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은 연합체다.
그의 비전과 사랑과 지원에 힘입어 CMLA의 회원 단체들은 그때 이후 서로서로 홍보해주고 격려하는 ‘동료’ 관계로 발전했다. ‘카메라타 퍼시피카’의 음악회 카탈로그에 ‘콜번 스쿨’ 연주 스케줄이 나와 있는가하면, 회원들의 웹사이트가 모두 링크돼있어 서로의 연주활동을 자연스럽게 공유하게 되었다.
28일 열리는 ‘뮤직 박스 LA 2022’는 이렇게 열일 하는 CMLA가 창설 후 처음 기획한 행사다. 모든 음악단체는 9~10월에 새 시즌을 시작하는데 시즌 오픈에 앞서 각 회원 단체의 연주와 특징과 성향을 선보이고, 청중이 바로크 음악부터 현대음악까지 고루 섭렵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짜여진 콘서트다.
첫 무대에 오르는 ‘살라스티나’는 워너 헨리에게 경의를 표하는 드뷔시의 ‘시링크스’를 연주하고, 다음번 ‘콜번 스쿨’ 순서에는 얼마전 미국최대의 실내악 경연대회인 피쇼프 내셔널 체임버뮤직 컴피티션에서 주니어현악부문 금상을 수상한 이 학교의 ‘올리브 트리오’가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트리오 1번을 들려준다. ‘자카란다’의 프로그램은 우크라이나의 저명한 작곡가 발렌틴 실베스트로프의 대표작 ‘메신저’를 솔로 피아노 버전으로 연주함으로써 6개월 넘게 러시아의 침공에 저항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연대를 표하게 된다.
후반의 세 무대는 특히 아름답다. ‘LA 체임버오케스트라’는 라벨의 현악사중주 1번을 연주하는데 LACO의 최정예 현악주자들이 주인공이다. 마거릿 뱃저 악장과 함께 비올라 수석인 유라 리(Yura Lee)가 눈에 띈다. 그는 영예로운 에이버리 피셔 그랜트 수상자이며, 링컨센터 체임버뮤직 소사이어티의 단원이자 현재 USC 음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인들에게 친숙한 ‘카메라타 퍼시피카’는 20여명의 단원을 다 관두고 단 한명의 연주자, 이소연(Soyeon Kate Lee)을 무대 위에 세운다. 이소연은 지난 달 줄리어드음대 피아노과 최초의 아시아계여성 교수로 임용된 대단한 피아니스트로, 이날 모리스 라벨의 ‘라 발스’를 연주한다. 그녀는 카메라타의 오는 10월과 11월 콘서트에도 출연하는데 특히 11월에는 마림바 주자 정지혜와 둘이서 전 프로그램을 이끌어간다.
마지막 피날레는 ‘피탄스’가 들려주는 슈베르트의 ‘바위 위의 목동’. 이 노래는 슈베르트의 작품 중에서도 특이한 것으로, 피아노와 클라리넷이 함께 반주하는 가운데 고도의 기교가 요구되는 소프라노 선율이 아름답다.
총 9개의 레퍼토리 하나하나가 호기심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음악이다. 거창하지 않아서 부담 없고 티켓 가격도 45달러로 저렴하다. 풍성하게 차려진 실내악의 잔치상, 자신이 좋아하는 소리와 앙상블을 찾을 수 있는 기회다. 연주회 정보와 티켓 https://chambermusic.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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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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