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비드로 두 해 넘게 손맛을 보지 못했다고 아내는 좀이 쑤셔 안달이다. 유튜브에서 섬에 가서 사는 사람들 시리즈를 찾아낸 뒤로는 더 하다. 그렇게 주말마다 들볶이면서도 안 가고 버티고 있다.
한번만 가도 새까맣게 탈텐데 애 웨딩 앞두고 안 된다 등등 이유를 대지만 결정적으로는 그날 이후 낚시가 싫어졌던 것이다. 3년 전 그날…
새 학기 준비할 게 많아서 낚시 아니 된다며 주초에 미리 선언한 아내였다. 평소의 주말 게으름을 떨쳐내고 공과금 납부, 잔디 깎기, 화단 정리, 세탁기 돌리기… 밀린 집안 일 마치고서야 겨우 설득할 수 있었다. 늦여름의 오후 두 시간 운전길의 하늘과 숲과 구름은 가히 환상적이었는데 7시에 도착한 메릴랜드 포인트 룩아웃에는 바람이 강했다. 해도 저물었고 바람에 날아갈까 모자를 벗어 짐가방에 넣어두었다.
저녁에 물때까지 맞아 떨어져 기대가 컸는데 바람 때문에 영 꽝이다. 좌우로 흔들리는 낚싯대만 하릴없이 바라보고 있는데 가까이의 한국사람 일행 중 한 분이 켄터키 치킨을 들고 오셨다. 내 본래 닭은 별로지만 사양하기 어려워 감사히 먹겠습니다 하며 받았다. 그렇게 말을 텄다.
낚시터에서 마주치는 한인들에게 평소 가벼운 목례, 많이 잡으셨어요 하는 인사 정도 나눈다. 괜찮은 분들도 있고 남들 보기 창피한 분들도 있다. 그러니 마음에 선을 그어놓는 것. 적당히 예의껏.
일행은 세 분, 영감님들. 한 분은 구경만 하신다. 치킨을 권하신 그 분이다. 어째 채비가 낚시를 오래 하신 것 같지는 않다. 락 피쉬를 올렸는데 길이를 놓고 옥신각신 하기에 줄자를 빌려드렸다. 규정 사이즈에 모자라는데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눈치로 봐서도 그렇고.
어두워져 초릿대 끝에 야광 막대기를 달았는데 그게 신기하셨나 보다. 가장 나이 들어 뵈는 분이 어디서 파는지 물어오셨다. 아는 대로 소상히 알려들었다. 그런데 질문이 이어진다. 어디 사세유. 피차간에 손 놓고 있는 판이니 심심하기도 하고 질문의 꼬리를 끊지 않는 어조로 대답해 드렸다.
버지니아요(로 끝내지 않고), 알렉산드리아에서 왔어요.
아유, 지도 그 옆에 마운트 버넌 산 적 있어유. 지금은 애쉬번이고유. 두 시간 반 걸려유.
그렇게 해서 이민사를 나눴다. 세 분이 70년대 초에 이민 오셨고, 낚시 권해서 데리고 온 친구는 동갑이고 한 동네에서 서로 세탁소를 했는데 우리는 서로 경쟁 그런 거 안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케미칼 때문인지 목이고 어디고 아파서 당신은 일찌감치 은퇴했는데 백발이 멋진 친구분은 아직도 일을 하신다고. 놀랍게도 좀 떨어져 혼자 던지고 미끼 확인하고 또 던지고 열심이던, 작고 다부진 몸집의 동행 분이 팔순의 형님이시고 조기축구회 출신이어서 지금도 근력이 장난 아니며 또 공군전우회 회장을 지내셨다는….
이래서 해병이라는 당신은 내가 육군 출신임을 고문도 없이 자백 받아내시고 그러고도 이리저리 외곽을 치시더니 급기야 취조의 핵심에 들어왔다. 근디 두 분이 어떤 사이에유? 따님이에유?
그게 궁금하셨던 것이다. 중늙은이가 왠 젊은 여자를 데리고 왔나 그것이. 당황스러웠지만 우습기도 해서 해명 아닌 해명을 하다 보니 우리 나이가 다 나왔다. 이이가 올해 환갑이고요 저도 몇 해 안 남았어요. 그냥 웃어넘겨야 했는데 아내의 대답이 확인사살을 불렀다. 아이고 근디 어쩌다가 머리가 다 벗겨졌어유?
나와 띠동갑 47년 돼지라는 그 분이 밉지는 않았다. 올드타이머들이 그렇다. 큰길 건너에 한국사람 같아 보이면 찻길을 건너가 손잡고 반가워 인사하던 분들이다. 연락처 종이 찢어 주고 받고. 누가 한국에서 고춧가루 보내오면 양배추로 김치 담아 나눠먹던. 90년대 초에 온 나는 동네 신문에서 일해서 그분들을 많이 알고 지낸 편이다.
괘씸한 건 아내다. 처음엔 옆에서 예 아니오 정도로 거들기만 했었는데 딸인 줄 알았다는 말 듣고 나서는 그렇게 친절할 수가 없다. 우리가 먼저 접고 떠나는 길에 쓰던 야광막대 거두어 영감님들 쓰시라며 손수 꽂는 시범까지 보인다. 다음 주에 또 뵈요, 호호호. 젊은 여자의 가벼운 웃음소리.
돌아가는 길, 평소에는 쏟아지는 잠을 못 참고 옆에서 졸던 사람이 어인 일로 말이 많다. 그리고 틈틈이 맥락 없이 혼자 웃기. 흐흐흐. 늙은 남자가 듣기에 안 좋은 웃음소리.
<
정재욱 / 전 언론인, 알렉산드리아 VA>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총 2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덕분에 혼자서 한참 실실 웃었네요^^ 고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재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