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를 다녀왔다. 조카 대학원 졸업 축하 하러 가는 길에, 딸의 시부모 사돈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미시간 호수를 끼고 있는 역사 깊은 이도시를 중서부에 사는 사람들은 무척이나 좋아한다. 이 조카는 일찍부터 부모들과 떨어져서 힘들었지만 공부를 마쳤으니 자랑스러움을 표시하고 싶었고, 사돈들은 한국인이 아니다보니 멀어지는 서먹함을 없애기 위함이었다. 가족, 친척들은 무조건 만나야 된다. 조그만 일이라도 만들어서 만나야 끈끈한 정을 가꾸어 갈수 있다. 세대가 다르고 문화, 언어가 달라도 서로 만나서 사랑을 나누고 격려해야한다.
비행기 대합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 복잡했다. 나를 포함한 이 모든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고 목적지까지 갈수 있을까? 탑승 방송이 나오고 차곡차곡 사람들과 짐이 제자리를 찾아간다. 놀라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과 짐들이 들어간다. 시간은 꽤 걸렸지만 어떻게든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게 자리를 잡았다. 모든 제자리에 앉자 비행기는 출발한다. 이륙도 관제탑 조정의 순서에 따라야 한다. 살아간다는 것은 질서를 지킨다는 것이다. 무질서에서 질서를 찾아가는 것이다.
질서를 지켜나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마치 비행기를 타고 시간이 지날수록 앉아 있는 것이 힘들어 지는 것과 같다. 졸다가 몸을 비비꼬다가 다시 힘을 내서 자세를 바로 잡아본다. 질서를 지켜나가는 데는 노력과 힘이 필요하다. 모든 사물의 무질서도는 시간에 따라 증가하듯이 우리의 삶속에서 질서는 무질서로 연결되어 진다. 일하거나 공부를 할 때는 질서가 있어야 되지만 그 질서의 시간이 계속되면 힘들기 때문에 우리는 휴식이 필요하다.
온 몸 전체의 휴식 뿐 아니라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내장도 마찬가지로 휴식기가 있어야 한다. 위장은 운동할 때와 휴식할 때가 확실히 구분되는 장기이다. 계속 먹기만 하면 위장이 힘들어 질 것은 당연하다. 심장은 매우 섬세하지만 수축기와 이완기가 존재한다. 이완하고 휴식하는 짧은 시간동안에 정맥을 타고 흘러 들어온 혈액이 심장에 차게 되면 수축기 때 심장은 동맥을 통해 온 몸으로 혈액을 보내게 된다. 이완하고 휴식하는 시간이 충분치 않으면 혈액이 심장에 차지 않아 앞으로 내보낼 혈액이 부족하게 된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규칙적으로 휴식하는 것도 질서의 일부분이다. 만일 심장의 수축기와 이완기 간격의 규칙성이 없어지게 되면 부정맥이 된다. 부정맥은 질서를 잃은 상태의 움직임이며 심장이 규칙적으로 뛰지 못하게 되면 일부 혈액이 심장 안에서 고이게도 되면서 피가 응고될 수 있고 응고된 혈전이 뇌로 가게 되면 뇌졸중을 일으킨다.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는 휴식이 필요하다. 휴식은 에너지를 재충전시켜 주는 요소이지만 용기를 주는 말에서 우리는 더욱 힘을 얻을 수 있다.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은 화초에 물과 거름을 주는 것과 같다. 부정적인 말은 사람을 시들게 하지만, 긴장을 풀어주는 적절한 유머와 용기를 주는 위로의 말은 상대방을 독수리가 힘차게 날개 치며 올라가듯 만든다.
얼마 전에 하늘나라로 가신 100세 되셨던 환자, 장 할아버님을 잊을 수가 없다. 장 할아버님은 내가 처음 개업했을 때부터 병원에 오셨는데 연세가 점점 많아지며 쇠약해지셔서 누가 모시고 올 수 있을 때만 내원 하시게 되었다. 몇 번 공교롭게도 장 할아버님이 오시는 날마다 무척 바빠서 한참을 기다리셔야 되었다. 나는 죄송하여서 “할아버님, 많이 기다리시게 해서 미안합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할아버님은 “원장님, 내가 처음 개업할 때부터 보아왔는데, 이렇게 바빠져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식사 하셨소?” 그리고 덧붙이신다. “원장님 잘되는 것 보아서 나는 많이 기다릴수록 기쁩니다.” 그 말씀은 내 가슴을 울렸다.
시간이 흘러 더욱 약해진 장 할아버님을 뵈러 양로병원으로 방문하였다. 할아버님은 불편하신 몸을 일으켜 앉으시며, “원장님, 식사 하셨소? 바쁜데 이렇게 와줘서 고맙소. 병원 크게 하소.” 잠시 후 작별인사를 드리고 일어나는 나를 배웅하신다고 할아버님은 비틀거리며 일어나신다. “장 할아버님, 제가 감사합니다. 힘내세요.” 할아버님의 말씀은 나의 모든 피로를 씻어주며 어려운 환자를 정성껏 돌볼 수 있는 힘이 솟게 하며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할아버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평안 하세요”
<
김홍식 내과의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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