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다멜의 LA필과 파리 오페라 발레단 할리웃보울 공연
▶ 한국이 낳은 최고 수석무용수 박세은 무대 ‘군계일학’
구스타보 두다멜 LA필하모닉 예술음악감독 겸 파리 오페라 발레단 음악감독. [LA필/할리웃보울 제공]
‘완벽한 예술’이란 이런 것이다.
지난 20일과 21일 할리웃보울에서 열린 ‘두다멜과 파리 오페라 발레’ 공연은 세계 최고 수준의 오케스트라와 발레단이 이뤄낸 환상의 조합이 한여름 밤을 아름답게 수놓은 음악과 무용 예술의 극치였다. 구스타보 두다멜 음악예술감독이 이끄는 LA 필하모닉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발레단으로 세계 4대 오페라단의 하나로 꼽히는 파리 오페라 발레단 소속의 대표적 무용수 20명이 펼친 무대는 LA에서는 다시 쉽게 보기 힘들 기회였다.
이번 공연은 지난해 8월부터 파리 국립 오페라의 음악감독으로 임명돼 LA필 감독직과 겸임하고 있는 두다멜이 이번에 처음으로 파리 국립 오페라 산하 발레단의 대표적 무용수들을 LA로 초청해 이뤄졌다.
이날 레파토리는 프랑스 작곡가 오버의 곡으로 시작해 모차르트, 차이코프스키, 드뷔시, 생상, 사티, 그리고 슈베르트까지 클래식의 정수들로 구성됐으며, 발레 안무는 고전 발레가 2곡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현대 발레로 이뤄져 현대 발레를 중시하는 현재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트렌드를 보여줬다.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에투알(수석무용수) 박세은. [LA필/할리웃보울 제공]
특히 이번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할리웃보울 공연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 발레리나 박세은의 무대를 직접 볼 수 있어 더욱 특별했다. 박세은은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353년 역사상 한국인은 물론 아시아 출신으로는 최초이자 유일한 수석무용수(에투알)로, 말 그대로 ‘군계일학’을 연상케 했다.
입단이 바늘구멍 들어가기만큼 어렵다는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정단원 무용수들은 5개 등급으로 나뉜다. 가장 낮은 카드리유(군무 무용수)에서부터 코리페(군무리더), 쉬제(솔리스트), 프리미에르 당쇠즈(제1무용수), 그리고 최고 등급인 에투알(수석무용수) 순이다. 여기서 에투알은 현재 단 18명만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지위로, 수년 간 주연급 활약으로 인정을 받은 무용수들만이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예술감독과 파리 오페라 극장장의 특별 지명으로만 발탁된다. 기존 에투알의 은퇴 등으로 공석이 생기지 않으면 뽑지를 않으며, 은퇴 후에도 에투알의 명칭과 영예는 계속 유지된다고 한다.
박세은은 지난 2011년 준단원으로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 합류한 뒤 승급시마다 한국인 최초 기록을 만들며 10년 만에 최고 무용수인 에투알에 올랐다. 세계 4대 발레콩쿠르 중 3개를 석권한 것으로 유명한 박세은은 더구나 유학파가 아닌 순수 국내파 발레리나로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라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발레를 시작한 박세은은 예원학교를 거쳐 서울예고 발레과를 다니던 도중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에 영재 입학해 발레로 학사학위를 취득한 뒤 세계무대에서 드높이 비상한 것이다.
지난 2007년 스위스 로잔콩쿠르 수상자에게 주어지는 특전으로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에 입단, 스튜디오컴퍼니(ABTⅡ)에서 활동한 뒤 귀국해 국립발레단에 입단했다가 파리 오페라 발레단으로 진출했다. 2018년 6월에는 무용계의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브누아 드 라 당스’에서 최고 여성무용수상을 받기도 했다.
필자가 지난 21일 관람한 공연은 파리 오페라 발레단 단장을 지낸 러시아 출신 안무가 빅토르 그로브스키가 19세기 프랑스 작곡가 대니얼 오버의 곡을 바탕으로 1949년 초연한 ‘그랑 파 클래식’(Grand Pas classique)으로 문을 열었다. 남녀 무용수가 무대에 등장해 환상적인 고전 발레의 진수를 보여준 작품이었다.
이어 ‘모차르트와 발레의 만남’으로 잘 알려진 안무가 안겔린 프렐리오카이(Angelin Preljocaj)의 현대 발레 작품 ‘르 팍’(Le Parc) 중 남녀 듀엣 형식인 ‘빠드되’(Pas de deux) 연기가,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3번 2악장 아다지오를 클래식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프랑스 출신 유명 피아니스트 장 이브 티보데(Jean-Yves Thibaudet)가 연주하는 가운데 환상적으로 펼쳐졌다.
세 번째로 드디어 대망의 박세은 무대였다. 박세은은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동료 수석무용수인 폴 마르크와 호흡을 맞춰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2악장에 나오는 빠드되를 환상적으로 연출, 그야말로 백조의 환생을 보는 듯 했다. 순백색 고전 발레복의 박세은이 이날 그 어느 무용수보다 더 우아하고 아름답게 보인 것은 결코 한국인이라는 편견 때문은 아니었다.
이날 공연에서는 박세은의 ‘백조의 호수’를 클라이막스로 해서 고전 발레 무대는 끝나고, 이후 작품들은 모두 파리 오페리 발레단 대표 무용수들이, 섹시하고 에로틱한 듀엣에서부터 역동적이면서도 아름다운 군무에 이르기까지, 바로 현대 발레가 이런 것이라는 보여주는 벅찬 무대들로 이어졌다.
이날 두다멜이 이끄는 LA 필하모닉의 완벽한 연주는, 함께 관람한 음악 칼럼니스트가 평한 대로, 최고 경지의 발레 예술과 함께 어우러져 더욱 완벽하게 빛을 발했다.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에투알(수석무용수) 폴 마르크. [LA필/할리웃보울 제공]
▶김종하 기자의 ‘클래식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