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모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음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차르트, 바흐, 베토벤… 하다 못해 조용필이라 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좋아하지는 않는다. 보편적인 음악, Ordinary Music이란 이 세상에 없다. 사실 보통(Ordinary)이라는 단어 자체가 매우 어폐가 있는 낱말이다. 무엇을 기준으로 ‘보통’을 삼아야 하는가? 그 표준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인구 50%를 커트라인으로, 그 중간 수입자들을 우리는 흔히 ‘보통 사람들’이라 부르는지도 모른다. 즉 보통 수입과 그에 준하는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예술이나 과학적 업적을 남긴 천재들도 수입의 측면에선 모두 보통 사람들이었다. ‘보통’이란 한자에서 ‘과유불급(過猶不及)’, 즉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필부, 아마추어 등 자신의 한계를 넘지 못한다는 부정적인 뜻도 포함하고 있다. 보통은 자신을 평범하다고 낮추고 있지만 남이 자신을 평범하다고 지적하면 화를 내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다. 사람들은 모두들 Ordinary People이 되기보다는 무언가 특별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그런데 그것이 순수한 경쟁 의식이나 야망 따위에서 시작되는 것이라면 오히려 문제가 적은데 ‘콤플렉스’ 또는 어떤 트라우마(마음의 상처)에서 시작되는 것이라면 문제는 한층 더 심각해진다는 것이다.
1980년 로버트 레드포드가 감독하여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보통 사람들(Ordinary People)’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여기서 영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면, 형제가 있는 가정에 어느 날 큰 아들이 보트 사고로 사망하게 되면서 한 가족이 기로에 서게 된다는 이야기다. 동생은 형이 자신 때문에 죽었다며 트라우마를 겪게 되고 어머니는 그런 아들이 못났다며 큰 아들을 잃은 상처를 작은 아들에게 화풀이하며 보상받으려 한다. 중간에 낀 아버지는 점차 까칠해지는 아내를 참지 못하면서도 아들에게도 이렇다 할 구심점이 되지 못한다. 결국 해답을 찾지 못한 ‘Ordinary People’은 부부가 갈라선다는 불행한 결말을 통해 리셋의 시간을 갖게 되는데 이때 마지막 클로징 장면에서 흐르는 음악이 바로 파헬벨의 캐논 D장조(Johann Pachelbel Canon in D)였다.
Ordinary People을 위한 Ordinary Music… 파헬벨의 캐논 D가 과연 이 작품에서 적절하게 쓰였는가 하는 점은 논외 사항이다. 그만큼 이 작품은 영화와 잘 어울렸고, 영화 외적으로도 파급 효과가 컸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사실 파헬벨의 캐논 D는 영화 Ordinary People이 상표 등록을 먼저했을 뿐 그 어떤 영화에 삽입됐어도 맞아떨어졌을 만큼 곡상의 보편성과 아름다움이 있는 작품이었다. 첫머리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이 세상에 모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음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제목이 Ordinary People이라고 하여 파헬벨의 캐논 D가 Ordinary하게 어울린 것은 결코 아니었다. 우연히 그렇게 됐을 뿐 파헬벨의 캐논 D는 그저 파헬벨의 캐논 D였을 뿐이었다. 파헬벨의 캐논 D의 작곡 연도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형 요한 크리스토프 바흐의 결혼 연도가 1694년 이어서 대략 그때쯤인 것으로 추측하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들이 알고 있는 바흐는 당시 10세 소년에 불과했다. 그 요한 세바스찬 바흐를 매혹시켰다는 이 작품은 2백년을 넘게 사장된 채 묻혀 있다가 1919년에 발굴되어 1940년 보스턴 팝스에 의해 첫 녹음된 것이 우리가 듣고 있는 파헬벨의 캐논 D의 시작이었다. 그후 1968년 장 프랑스와 빠이야 실내악단도 이를 녹음했으며 1970년 샌프란시스코의 FM 방송에서 전파를 탄 뒤 신청곡이 쇄도하여 유명하게 되었고 영화 ‘Ordinary People’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되면서 전세계 팬들에게 크게 사랑받게 되었다. 한 FM 방송의 조사에 따르면 2021년도 가장 많이 애청됐던 클래식 순위에서 파헬벨의 캐논 D가 32위에 랭크됐다는 보도가 있었다.(참고로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는 65위)
영화 ‘Ordinary People’을 보고 있노라면 유난히 많은 활엽수와 전원 장면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영화를 보지 말고 나무를 보라는 것처럼… 나무의 숨결, 입새에 스치는 바람, 나무의 의지, 생명의 의미… 영화의 많은 장면은 대화로는 풀 수 없는 영화 주제의 많은 것을 숲과 나무를 통해 우회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마치 배경 음악 캐논 D의 등장처럼. 사실 파헬벨의 캐논 D는 파헬벨이 바흐의 형이었던 요한 크리스토프 바흐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음악이었다. 즉 결혼식 축하곡이 이 곡의 본래 모습이었다. 그러나 어딘가 가족적인 분위기의 이 곡은 장례식의 분위기에도 어울리는 곡이었다. 애조 띤 선율이 선정적이지 않고 장중하며 인간 밑바닥의 애수를 잘 표현하고 있다. 졸업식 연주 혹은 종교적인 집회나 명상 분위기에도 잘 녹아 흐른다. 생일 축하, 출판 기념회 등에도 잘 어울리며 무엇보다도 Ordinary People을 위한 Ordinary 음악으로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 이 작품이 명곡이 되고 있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보통의 가치를 위한, 오랜 세월의 기다림… 이 작품은 지금도 지구상 어딘가에서 보통 사람들의 가슴속에 풍성한 밀알처럼… 가득 울려퍼지고 있을 것이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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