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여름 책 한 권을 들고 서울 서대문구의 연세대 대강당 앞 계단을 서성거리던 중 셰릴 샌드버그 당시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와 마주쳤다. 큰 키와 자신의 장점을 잘 살린 과감한 오렌지빛의 원피스만큼이나 인상 깊게 다가온 것은 호의적이면서도 장난스러운 눈빛이었다. 인사를 건네자 그는 책에 눈길을 주며 “린 인(lean in·들이밀다)을 잘 할 수 있는 젊은 여성이네요”라며 농담을 건넸다. 그날 열린 샌드버그의 저서 ‘린 인’의 한국 출간기념 강연에서는 워킹맘으로 자신을 소개한 청중들이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고 분위기는 뜨거웠다. 샌드버그는 한국어로 ‘나댄다’는 표현을 또렷하게 발음하며 “여성들은 더 나댈 필요가 있다”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이어 그는 “이 단어가 여성에게만 쓰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왕이면 ‘나댄다’는 표현 대신 리더십 스킬이 있다고 말해주면 더 좋겠다”고 강조했다.
‘린 인’은 엇갈리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2010년대를 휩쓴 하나의 키워드가 됐다. 구조적인 부분까지 짚어내지 못했다는 지적도 따라다녔지만 샌드버그와 ‘린 인’의 공로 중 하나는 이 사회의 많은 여성, 그중에서도 기혼 여성 혹은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을 발견해낸 것이다. 일하는 여성들에게 야망을 가지는 것이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고 끊임없이 독려하고 버틸 것을 주문했다. 실제로 샌드버그도 버텼다. 그가 버티는 것만으로도 책을 읽지 않은 이들에게 하나의 메시지가 됐다. 둘째 아이가 태어난 지 7개월이 됐던 때인 2008년 페이스북에 합류한 그는 애초에 스스로도 5년 정도로 예상했던 페이스북에서의 여정을 14년간 이어갔다. 아이들이 하교한 후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다섯 시 반에는 늘 퇴근을 하고도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기도 했다. 2015년 남편 데이비드 골드버그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을 때도 애도를 마친 뒤 자신의 역할로 복귀했다. 그동안 마크 저커버그 메타(옛 페이스북) 창업자와 거대한 광고 비즈니스 제국을 만들어냈고 제품 개발을 제외한 광고 제품 개발, 운영, 대외 정책 등 광범위한 역할을 도맡았다.
저커버그 메타 창업자는 이달 1일 샌드버그가 14년 만에 메타를 떠난다고 밝히며 “한 시대가 끝이 났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셰릴은 COO의 역할을 그녀만의 방식으로 정의한 수퍼스타였다”며 “그의 자리를 완전히 대체할 사람은 없다”고 강조했다. 그의 사임 소식은 저커버그가 밝힌 것처럼 한 시대이자 ‘린 인’의 시대 역시 끝났다는 것으로 읽혔다. 저커버그 창업자는 샌드버그의 사임 소식과 함께 그녀의 공로로 지금의 메타를 만든 것에 이어 그가 구축한 팀을 꼽았다. 이어 저커버그의 후계자 라인 또한 윤곽이 드러났다. 후임 COO로 선임된 자비에 올리반을 비롯해 크리스 콕스 최고제품책임자(CPO), 샌드버그가 직접 영입했던 닉 클레그 정책 총괄 사장 등으로 모두 남성이다.
최근 그의 저서 ‘린 인’을 다시 읽어보니 ‘일을 정말 그만두기 전에는 미리 그만두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7장에 눈길이 갔다. 샌드버그는 “여성이 직위에 만족할수록 직장을 그만둘 확률은 줄어든다”며 “직장에 남기 위해 했던 일이 결국 성취감도, 몰입도도 떨어지는 직무에 스스로를 묶고 만다는 것은 아이러니이자 비극”이라고 언급했다. 샌드버그가 떠나는 시점과 계기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 역시 자신의 광범위했던 업무가 줄어들고 자신의 자리를 다른 이들이 대체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던 것은 사실이다.
샌드버그는 당분간 자신이 운영하는 ‘린인 재단’을 통해 여성들의 목소리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법무법인 펜윅앤웨스트에 따르면 실리콘밸리 내 매출 순위 150개 기업의 경우 2020년 말 기준으로 여성이 운영하는 기업은 4.8%에 불과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처럼 많은 이들이 떠나고 있다. 왜 최선을 다해 버티는 여성들도 원하지 않을 때 떠나야 하는지 또한 그가 풀어낼 수 있는 과제다. ‘린 인’ 이후의 메시지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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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진 서울경제 실리콘밸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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