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재의 식사 - 한국 요리책의 연보
▶ 각 지역 양반집에서도 ‘반상차림법’ 문자로 기록
우리에게는 얼마나 많은 옛 요리책이 자료로 남아 있을까? 15~20세기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한국 요리책의 연보를 정리해 보았다. 요리의 주체는 분명 여성이었건만 대부분이 남성에 의해 쓰여졌다는 점이 시사하는 바가 있다. 성편향적 가사 노동에 시달리는 것으로 모자라 쌓이는 경험을 기록하고 남길 언어도, 교육의 기회도 제대로 제공받지 못한 것이니 참으로 불공평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1450년 산가요록
2001년 청계천8가 고서점 폐지 더미 속에서 ‘산가요록’이 발견돼 한국 요리 전문서의 역사가 다시 쓰였다. 이 책 발견 이전까지 가장 오래된 요리 전문서로 알려진 것은 수운잡방(1540년경)이었다. ‘산가요록’은 책의 앞뒤 부분은 훼손이 심하지만 가운데 부분, 230여 가지에 이르는 조리법은 온전하게 남아 있다.
서문이 훼손되고 없기에 지은이와 정확한 편찬 연대, 의도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중간에 담겨 있는 실마리를 통해 의관인 전순의가 쓴 책으로 추정되고 있다. ‘산가’란 평범한 서민층을 이르는 말이니 결국 서민의 삶에 필요한 생활 기술을 망라한 종합 농서이다. 50여종의 술, 12가지 장류, 17종의 식초, 38종의 김치 조리법 등이 수록돼 있다.
■1460년 식료찬요
산가요록의 저자인 전순의가 세조 6년(1460년)에 편찬한 우리나라 최초의 식이서이자 가장 오래된 식이요법서이다. ‘식료’라는 제목에서 엿보이듯 음식으로 질병을 다스리는 개념을 아우르고 있다. 증상별로 서로 다른 치료법을 제시하고, 여러 가지 약재를 식재료와 함께 먹어 병을 치료하는 방법, 일상생활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음식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 등을 기록했다. 중풍, 감기, 설사, 골절 등 45가지 질병에 대한 식이요법을 담았다.
■1540년경 수운잡방
‘구름이 하늘로 올라가는 때에 쓸 만한 갖가지 방법’이라는 뜻의 ‘수운잡방’은 중국의 고전 ‘역경’에서 따온 말이다. ‘격조 있는 음식 문화’를 가리키는 ‘수운’에 ‘온갖 방법’이라는 의미의 ‘잡방’을 붙였다.
1500년대 초 안동에 살았던 유학자 김유(1481~1552)가 쓰기 시작해 손자인 김령(1577~1641)이 뒷부분을 보완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필체나 표현의 차이에 따라 상하편으로 구분하는데 술이 61종, 식초류 6종, 채소 절임 및 침채류가 15종, 두부와 타락(우유) 1종씩을 포함 총 121종의 조리법이 담겨 있다.
■1611년 도문대작
‘도문대작’은 의역하면 ‘흉내 내고 상상만 해도 유쾌하다’는 의미이다. 홍길동의 작가인 허균(1569~1618)이 쓴 도문대작은 그의 유배문집 성소부부고(1611)의 마지막 책에 실려 있다.
“내가 죄를 짓고 바닷가로 유배되어 살게 되니 지난달 먹었던 음식이 생각난다. 그래서 종류별로 나열하여 기록해 놓고 가끔 읽어보면서 맛본 것과 같이 여기기로 했다”라고 소회를 밝혔듯, 허균이 유배지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식도락의 추억에 빠져 쓴 글이다.
자신이 맛본 음식을 떠올리며 각지의 이름난 산물과 음식을 분류 및 나열하고 명산지와 특징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덧붙였다. 떡류 19종, 과일 33종, 채소 38종에 차, 술, 꿀, 기름 등과 서울에서 계절에 따라 만들어 먹는 음식 34종을 기록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음식을 주제로 쓴 가장 오래된 산문으로 여겨진다.
■1660년경 최씨음식법
신창 맹씨 가문에는 ‘자손보전’이라는 책이 있다. 가문의 여성에게 대물림하는 살림의 요령이 담긴 책으로 7대에 걸쳐 270년의 기록을 모아 놓았는데, 1~10면에 음식 조리법이 기록되어 있다. 해주 최씨(1591~1660)가 한글로 썼으니, 2015년 발굴된 이후 ‘최씨음식법’이라 일컫고 있다. 조청과 흑당 2종, 정과 1종, 떡 5종, 김치 6종 등 총 20종의 음식 조리법이 수록되어 있다. ‘음식디미방’과 더불어 1600년대 여성이 직접 한글로 써서 남긴 드문 책으로 꼽히는데, 특히 다양한 김치 조리법이 두드러진다.
■1670년경 음식디미방
1670년(현종 11년)경 정부인 안동 장씨라 불리던 장계향(1598~1680년)이 집필한 ‘음식디미방’은 무엇보다 여성이 한글로 쓴, 여성을 위한 요리책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품는다. ‘음식의 맛을 아는 방법’이라는 의미의 음식디미방은 총 30장에 146가지의 조리법을 담고 있다. 전반부에는 국수와 만두, 떡, 과자 등의 면병류 18종, 어육류 37종 등이, 후반부에는 51종의 술 양조법과 3종의 식초 담그는 법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고려 말 등장한 발효떡인 상화의 구체적인 조리법이 눈에 뜨인다. 고추가 본격적으로 쓰이지 않았던 시기이므로 천초와 후추, 겨자 등이 매운맛 조미료로 쓰였다.
■1600년대 말~1700년대 초 주방문
집에서 직접 담그는 술을 강조하는 옛 조리서가 많다. 주방문은 아예 제목부터 ‘술 담그는 법’이지만 그 밖의 음식 조리 및 가공법을 소개하고 있다. 찬자와 편찬 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책에 등장하는 김치에 고추가 쓰이지 않았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1600년대 말 1700년대 초에 쓰였으리라 추측된다. 과하주, 벽향주, 감주 등 술 28종, 면, 떡과 과자, 느르미 등 음식 46종으로 총 74종의 조리법이 기록되어 있다.
■1700년대 음식보
드물게 호남지역에서 발굴된 순 한글 조리서로 총 36종의 조리법이 실려 있다. 원문이 오래되고 낡아서 내용 해독이 불가능한 부분이 많다.
■1720년경 소문사설
‘들은 것은 적지만 그래도 아는 대로 말한다’는 뜻의 ‘소문사설’은 조선 숙종, 경종 때 어의를 지낸 이시필(1657~1724)이 1720년경에 편찬한 책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 1종, 종로도서관에 2종이 소장되어 있는데 판본마다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국립중앙도서관 본에는 식혜, 순창고추장, 깍두기, 백어탕, 가마보곶 등의 조리법이 추가로 실려 있다.
다만 소문사설 전체가 요리책은 아니고 그 일부인 ‘식치방(음식 치료법)’에 찜, 탕, 떡, 만두 등 총 28종의 음식과 조리법이 담겨 있다. 음식을 조리하고 함께 배웠던 이들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 특색이자 강점이다. 신선로라고 알려진 열구자탕이 가장 처음 소개된 책이기도 하다.
■1809년 규합총서
1800년대부터 필사 혹은 목판본으로 전해 내려오던 가정생활 백과사전이다. 1939년 ‘빙허각전서’가 발견된 후에야 이 책이 빙허각 이씨(1759~1824)가 쓴 책의 일부임이 밝혀졌다. 해물, 젓갈, 고추가 본격적으로 쓰인 김치가 등장한다. 조선시대의 김치가 오늘날 우리가 흔하게 먹는 것처럼 점차 진화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1800년대 말 이씨음식법
24장으로 된 한글 필사본에 음식에 관한 내용은 총 53종이다. 무엇보다 도미찜을 통해 초고추장이 처음으로 소개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후 1901년의 ‘진찬의궤’에 식초와 고추장, 꿀을 섞어 만든 초홍장이 기록되었고 1900년대 이후의 근대 조리서에는 초고추장이 훨씬 더 자주 등장한다.
■1800년대 말 시의전서
밥이나 국, 찌개, 김치를 기본으로 삼고 반찬을 ‘첩’이라 규정해 가짓수에 따라 3, 5, 7첩이라 일컫는다. 첩은 재료나 조리법이 중복되지 않는 게 원칙이다. 이러한 반상차림의 형식이나 구성이 문자로 남은 자료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 시의전서이다. 1800년대 말엽에 지어졌으며 편찬자가 알려져 있지는 않고 현재는 1919년의 한글 필사본이 남아 있다. 경상도 사투리가 두드러진 것으로 보아 당시 유력한 그 지역 양반집의 음식이라 짐작되며 총 422종의 조리법이 담겨 있다.
■1900년대 초 부인필지
주로 ‘규합총서’의 내용을 발췌한 책이지만 당시 인기를 끌었던 명월관의 냉면이 실려 있다. “무에 배와 유자를 더해 담근 동치미 국물에 말아 돼지고기 편육, 달걀, 배, 잣 등을 고명으로 얹어 먹는다”고 소개하고 있다.
■1924년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이용기(1870~1933?)가 쓴 요리책으로 1924년 처음 출간되었고 1943년까지 4판을 찍었다. 색을 쓴 앞표지의 신선로 및 각종 이미지를 통해 당시 즐겨 먹었던 식재료가 무엇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술, 초, 장, 젓 담그는 법을 시작으로 밥, 국, 김치 등 우리 음식은 물론 서양, 중국, 일본 요리까지 전부 68항목 790종의 조리법이 담겨 있다. 특히 잡채가 등장하는데 당시 유행했던 것과 달리 당면을 넣지 않은 것이 정식이라 소개하고 있다.
■1917~1962년 조선요리제법
이화여자전문학교 가사과 교수 방신영(1890~1977)이 한식 조리법을 집대성해 근대 조리를 바탕으로 서술한 책이다. 1917년에 ‘만가필비 조선요리제법’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뒤 ‘우리나라 음식 만드는 법’으로 제목이 바뀌어 1962년 마지막 개정판이 나왔다. 특히 1957년판에는 요일별 식단표, 성탄절 식단표 등 제철과 상황에 맞춘 식사의 형식을 제시하기도 했다.
■1957년 이조궁정요리통고
숙명여자전문학교 가사과 교수인 황혜성(1920~2006)이 일본인 교장의 권유로 1944년, 낙선재에서 한희순(1889~1972) 상궁을 만나 전수 받은 궁중요리법을 계량하고 조리법을 정리해 담은 책이다.
◆참고서적
음식고전(한복려·한복진·이소영, 현암사) 조선요리제법 (이용기, 라이스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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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 음식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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