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가주엔 비가 전혀 오지 않아요(It Never Rains In Southern California)’라는 흘러간 팝송이 있다. 할리웃에서 뜰 기회가 비 맞기보다도 적다는 뜨내기 가수의 넋두리다. 사실이다. LA 산에선 나무도 자라기 어렵다. 가장 높은 산의 이름이 ‘대머리 산(Mt. Baldy)’일 정도다. 하지만 이런 민둥산들에도 토끼와 사슴은 물론 곰, 쿠거 같은 맹수들이 산다.
‘시애틀(Seattle)’이라는 페리 코모의 히트곡도 있다. TV 연속극 주제가다. “시애틀 하늘이 여태껏 본 하늘 중 가장 푸르다”라고 읊는다. 내가 20년을 살아봐서 알지만, 청명한 날의 시애틀 하늘은 진짜 쪽빛이다. 갠 날보다 궂은 날이 많아 산들이 LA와 달리 정글 수준이다. 등산길에 사슴과 엘프는 물론 산양도, 곰도 곧잘 조우한다. “혹시 그 녀석도 나타날까?”라는 생각이 저절로 떠올랐었다. ‘새스콰치’다.
원주민 말로 ‘야생인’을 뜻하는 새스콰치는 서북미 깊은 숲속에 사는 털로 뒤덮인 짐승으로 사람처럼 두 발로 걷는다. 원거리에서 찍은 흑백사진이 공개돼 진위 여부가 논란됐었다. 새스콰치는 키가 최고 15피트(4.5미터)에 달하는 덩치지만 소리 없이 거동하고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날카로운 괴성을 지른다고 자칭 목격자들은 주장한다.
새스콰치는 발도 엄청 크다. 별명이 ‘빅풋(Bigfoot)‘이다. 60여년전 북가주의 한 벌목회사 인부가 석고로 뜬 새스콰치의 ‘발자국 모형’을 공개한데서 비롯됐다. 당시 LA타임스에도 보도된 이 16인치짜리 석고판형이 가짜인 것으로 40여년 후 판명됐지만 그 사이 새스콰치를 목격했다는 사람은 전국적으로 8,000여명에 달했다.
새스콰치보다 더 크고 더 오래된 미확인 괴물이 있다. 영국 스코틀랜드의 네스 호에 사는 것으로 알려져 ‘네시’로 불린다. 플레시오사우르스(장경공룡)를 닮은 이 괴물 역시 호수 한 복판에서 목만 내놓고 헤엄치는 원거리 사진으로 공개됐다. 그동안 정부당국은 물론 학술, 환경, 언론 등 관련단체들이 호수 속을 샅샅이 탐사했지만 그런 괴물은 없었다. 흐릿한 동영상도 조작된 것임이 후일 드러났다.
그런데, 숲이나 물속이 아닌 하늘에 출몰하는 괴물이 실재한대서 세상이 떠들썩하다. 지난주 연방하원이 반세기만에 개최한 ‘미확인 비행물체(UFO)’ 관련 청문회는 “설명할 수 없을 뿐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하고 “다만 이들이 외계에서 온 것이라는 증거는 없다”고 결론 내렸다. 실제로 이날 청문회의 초점은 UFO가 외계인의 비행체인지 여부보다 러시아나 중국 같은 적대국들이 미국이 모르는 기술로 개발한 신무기인지 여부를 밝히자는 것이었다. 하원 정보위원회 산하 테러·첩보·핵확산 대응 소위원회(‘3C’)가 청문회의 주최부서인 것도 그래서이다. 안드레 카슨 위원장은 UAP가 미국 안보에 대한 ‘잠재적 위협’이라고 단언하고 앞으로도 그런 시각으로 조사돼야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UFO는 당초 ‘비행접시’로 불렸다. 1873년 텍사스의 한 농부가 빠르게 날아가는 접시 모양의 물체를 봤다고 주장한데서 비롯했다. 그 후 전 세계에서 비행접시 목격자가 속출했다. 1947년엔 시애틀의 레이니어 산 위로 비행접시 9대가 줄지어 날아갔다는 목격담이 보도됐다. 같은 해 뉴멕시코의 로즈웰에선 목장에 추락한 비행접시에서 군 당국이 외계인 사체를 수거해 보관 중이라는 역대급 음모론이 터졌다.
UFO는 금세 할리웃 영화의 단골소재가 됐다. 화성에서 온 비행접시가 LA를 박살내는 H.G. 웰스 원작의 ‘우주전쟁’(1953년)을 중학생 때 손에 땀을 쥐고 봤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2005년 개작도 히트했다. 스필버그는 ‘E.T.(1982년)’로 홈런을 날리기 5년 전에 이미 ‘미지와의 조우’로 UFO 영화의 지평을 열었다.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시리즈와 리들리 스캇의 ‘에일리언’ 등에도 우주 괴물들이 출현한다.
새스콰치도, 네시도 사기극이라는 지탄을 받지만 이들의 고향인 북가주 험볼트 카운티와 스코틀랜드 인버네스엔 관광객들의 발길이 여전하다. 호기심 많고 신비주의에 약한 사람들은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실존물체로 확인된 UFO도 앞으로 목격자들이 폭증할 터이다. 새스콰치와 네시처럼 UFO도 있는 듯 없는 듯,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영화 소재로만 쓰였으면 좋겠지만, 어림없는 희망사항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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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전 시애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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