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맥도날드여야 했다. 실리콘밸리를 걸어서 일주하겠다고 당차게 문을 나섰지만 3시간이 지나지 않아 나는 쉴 곳을 찾아 헤맸다. 발걸음이 눈에 띄게 느려졌고 어깨는 빠질 듯이 무거웠다. 아침을 거른 탓에 허기가 졌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절실했다. ‘조금만 버티자. 경험 상 프리몬트 대로를 쭉 따라 올라가면 맥도날드가 나온다.’ 1달러짜리 프리미엄 로스트 커피를 떠올리며 다리에 힘을 불어넣었다. <걸어서 실리콘밸리> 프로젝트의 첫 끼니는 맥도날드에서 해결하고 싶었다.
왜 꼭 맥도날드여야 했을까? 나는 내 인생의 절반을 맥도날드가 없는 곳에서 살아왔다.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서울로 가기 전까지 고향에는 맥도날드가 없었다. 강원도 시골내기에게 롯데리아는 햄버거 가게였지만 맥도날드는 찬란한 세계화의 상징이었다. 대학교 논술시험에도 조지 리처의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가 지문으로 나왔다. 나는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맥도날드식 효율성을 비판하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는 한풀이하듯 열심히 빅맥을 사먹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돈을 벌게 되면서 내 의식과 입맛도 맥도날드에서 해방되는 것처럼 보였다. 며칠에 한 번씩 햄버거가 생각날 때면 빅맥이 아닌 수제버거를 사먹었다. 이쑤시개 꽂힌 햄버거가 정성스레 접시에 담겨나온 모습을 봤을 때, 새삼 나는 자각했다. ‘내가 돈을 벌고 있구나!’ 하지만 감상의 여운은 오래 가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첫 번째 해외근무를 시작했다. 목적지는 긴 시간동안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이란이었다. 5년 간 이란생활을 하면서 나는 틈날 때마다 맥도날드를 찾아 거리를 헤맸다. 결과는 실패였다. 경제제재를 받는 이란에는 미국식 프랜차이즈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60개월이 걸렸다.
맥도날드가 없는 곳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탓에 맥도날드는 내게 양가적 대상이 되었다. 머리로는 피하고 싶지만 몸의 이끌림마저 제어할 방도는 없다. 미국에 와서도 제일 먼저 찾아간 햄버거 가게는 맥도날드였다. 캘리포니아를 대표하는 인앤아웃도 있고 오바마 대통령이 좋아한다는 파이브가이즈도 있지만 내키지 않았다. 맥도날드에서 우걱우걱 빅맥을 씹으면서 비로소 내가 미국에 도착했다고 느꼈다. 미국생활 1년, 무엇이 지금의 맥도날드를 만들었는지 알고 싶었다. <걸어서 실리콘밸리>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직전, 맥도날드가 처음 문을 열었다는 샌버나디노(San Bernardino)를 찾았다.
샌버나디노의 맥도날드 박물관은 초창기 맥도날드의 역사를 잘 간직하고 있었다. 1940년 맥도날드 형제는 드라이브인 형태로 운영되는 햄버거 식당을 차린다. 햄버거의 맛은 좋았지만 전체 메뉴가 27가지나 되었다. 맥도날드 형제는 곧 한계에 부딪힌다. 난관을 뚫고자 매출흐름을 분석하던 동생 딕 맥도날드가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한다. 전체 매출의 87%가 햄버거, 감자튀김, 탄산음료에서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맥도날드 형제는 사업모델을 거침없이 단순화한다. 가격도 햄버거는 15센트, 감자튀김은 10센트로 통일했다. 30분 걸리던 음식이 30초 만에 나왔다. ‘스피디(Speedee)’ 시스템의 탄생이었다.
80년 전 맥도날드 창업자의 이야기가 구시대적으로 들릴지 모르겠다. 시간을 40여년씩 앞으로 넘겨보자. 1977년, 애플의 슬로건은 ‘단순함이 궁극의 정교함(Simlicity is the ultimate sophistication)’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일생 동안 단순한 디자인이 제품을 쉽게 사용하도록 만든다고 믿었다. 2020년, 테슬라는 프리몬트 공장에서 모델Y를 생산하며 ‘기가프레스(Giga Press)’ 기술을 선보였다. 알루미늄을 녹인 액체를 틀에 부어 통째로 주조하는 방식이다. 일론 머스크는 금속판 80개를 용접하던 과정을 하나의 주조품으로 단순화했다.
프리몬트의 맥도날드에서 나는 나부터 단순화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배낭을 열어서 소지품을 하나씩 확인했다. 일주일 여정을 소화하기에 필요없는 물건이 너무 많았다. 그래도 멀쩡한 제품을 놓고 가려니 속이 쓰렸다. 무거운 어깨의 짐을 덜면서 나는 내 존재가 한층 정교해지고 있다고 믿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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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욱진 (KOTRA 실리콘밸리무역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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