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흥진의 Hollywood Interview
우크라 록밴드 오케안 엘지의 리드 싱어 스비야토슬라브 바카르추크
록밴드 오케안 엘지의 공연장면
우크라이나 최고의 록밴드 오케안 엘지의 리드 싱어이자 작곡가로 우크라이나 의회 의원을 지낸 스비야토슬라브 바카르추크(46)는 가벼운 농담을 하면서도 결의에 찬 표정으로 질문에 대답했다. 이론 물리학 박사로 유엔 개발 프로그램 친선대사로도 활약한 바카르추크는 러시아가 조국을 침공하자 군에 입대, 전선과 병원을 방문하면서 군인들과 부상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나름대로의 전투를 하고 있다. 바카르추크는 4월 22일 우크라이나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비디오 ‘UA 소 뷰티풀’을 발표했다. 오케안 엘지가 만든 이 비디오는 조 카커의 빅 히트 곡 ‘유 아 소 뷰티풀’(You Are So Beautiful)을 편곡한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명예 문화대사로도 활동한 바카르추크는 전선과 병원에서 목격한 참담한 경험을 얘기할 때는 감정에 겨워 눈물을 닦기도 했다.
-지금 어디에 있으며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우크라이나 동부의 큰 도시 중 하나인 드니프로에 있다. 조금 전까지 동부전선을 찾아 군인들과 경찰들을 만났다. 그리고 조국을 떠나 서방세계로 갈 기차를 타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시민들을 만났다. 위험하고 두렵고 또 한심하고 감동적이기도 한 하루였다.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하루의 일과였는데 가능한 한 이 전쟁이 어서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다.”
-군에 입대해 어떤 훈련을 받았는지.
“내가 군에 입대한 것은 소위 유명 인으로서 사람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그들을 위해 노래를 부르고 또 사기를 진작시키는 일로 조국에 봉사하기 위해서다. 물론 무기도 있고 훈련도 받았지만 직접 전선에서 싸우고 있지는 않다. 사람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내 직분을 다 할 뿐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나만이 아니라 모든 남녀들이 자신의 최선을 다 해 조국에 봉사하고 있다. 내가 지금 내 직분대로 하고 있는 것이 총을 들고 전선의 참호에서 싸우는 것보다 실제적으로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전쟁을 겪으면서 무엇이 삶에 있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는가.
“전쟁은 모든 것을 흑백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 그 것은 삶을 보다 단순하게 만든다. 돈과 평안과 명성과 대중의 지지 같은 것들이 더 이상 별 의미가 없게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과 친구와 조국의 안전과 안보다. 우리의 큰 목적은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미쳐 돌아가는 러시아의 행위를 저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국가 개념을 파괴하려고 작심한 것 같다. 난 이 전쟁으로 인해 내 지나간 삶보다 단순한 삶을 경험하고 있다. 위문공연을 하기 위해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불편한 구닥다리 차를 타고 3시간이나 달려간다. 그리고 아주 간단한 음식을 들고 잠도 여인숙 같은 곳에서 밴드의 동료들과 한 방에서 잔다. 전쟁이 끝나면 다시는 과거와 같은 풍족한 삶을 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행복하기까지 하다. 난 앞으로 보다 단순하고 겸허한 삶을 살 것이다.”
-음악은 전쟁에서 어떤 작용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음악 보다 크게 예술은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술은 순수하고 맑은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 것은 전쟁의 반대어이다. 존 레논의 ‘이매진’에서도 깨달을 수 있듯이 음악과 예술이란 사람들을 자유로운 세상에서 살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과 반대로 나라라는 것을 상상하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러시아가 바로 그런 나라로 그들은 우크라이나를 한 국가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지금 우리기 이렇게 고통을 받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우리는 이에 저항하고 있다. 러시아가 우리나라를 침공한 것은 나토의 확장이나 나라의 안보가 걱정되어서가 아니라 단순히 우크라이나를 파괴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지난 30년간 정치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우리나라를 파괴하려고 했으나 안 되자 푸틴이 마침내 군사력을 동원한 것이다. 그러나 그 것은 큰 실수로 모두가 큰 대가와 고통을 치르고 있다. 음악이 우크라이나 시민들을 총 동원시키고 그들에게 이 침입을 막아야 한다는 개념을 깨우쳐 준다는 면에서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만 그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불행하게도 무기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무기를 달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전쟁으로 당신의 음악에 대한 개념이 어떻게 변했는가.
“그 질문에 대답하기엔 너무 이르다. 다만 나는 오늘 처음으로 기타를 들고 군인들과 병원 환자들을 위해 노래를 불렀고 생전 처음으로 경찰서를 방문해 노래했다. 이 인터뷰가 끝난 뒤 우크라이나의 현 사태와 함께 내가 시민들의 저항을 목격하고 느낀 경탄스런 감동을 노래로 작곡할 생각이다. 이 전쟁으로 내 음악에 대한 개념이 어떻게 변할지 지금으로선 모르겠으나 과거의 역사를 보면 전쟁이라는 큰 스트레스를 겪고 나면 새 예술이 태어나곤 했다. 1차 대전 후 건축과 문학과 그림과 음악 등에서 새 형태가 생성되었다는 것이 그 좋은 예다. 이 전쟁이 끝나면 언젠가 그 어떤 새 형태의 음악이 나오리라고 생각한다. 나의 많은 음악 동료들은 벌써 이 전쟁에 저항하는 시민들에게 바치는 노래들을 발표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내 경우 음악은 가슴과 영혼 속에서 발효 된 뒤에서야 나온다.”
-난민들과 군인들을 위해 노래 부를 때 가장 많이 신청하는 곡은 무엇인가.
“첫째는 내 노래 중 가장 유명한 것인 ‘오비미’(Obimy)로 이 노래는 미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의 가수들이 나름대로 편곡해 불렀다. 다음으로는 ‘에브리 싱 이즈 고잉 투 비 올라이트’(영어 번역)이다. 이 노래야 말로 요즘 우크라이나 시민들에게 매일 들려줄만한 것이다.”
-난민과 병원의 환자들을 방문한 경험이 어떤지.“끔직한 것도 있고 정신을 고무시켜주는 것도 있다. 키이우의 병원을 방문했을 때 부차의 폭격에서 다리 하나를 잃고 입원한 남자를 봤다. 그를 위로하려고 다리 하나만 잃었을 뿐이고 나머지 신체기관들로 보다 중요한 일들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더니 히죽이 웃더라. 그런데 그 때 간호사가 내게 다가와 귀 속 말로 이 남자의 아내와 두 아들은 러시아군에 의해 사살됐는데 그가 이 끔찍한 일을 목격했다고 알려주었다. 그 말을 듣고 큰 연민과 함께 깊은 충격을 받았다. 이런 일들은 매일 같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를 견디고 살아남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내 정신을 고무시켜 주는 경험은 한 주유소에서 만난 남자의 것이다. 그는 내게 자기 아내와 두 딸을 외국으로 피신시킨 뒤 자기는 싸우기 위해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자기 가족을 외국으로 피신시킨 뒤 조국으로 돌아온 남자들의 수는 백만 명에 이르고 있다.”
-외국으로 피난한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자신들은 난민이 아니라면서 전쟁이 끝나면 조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렇다. 그들은 전쟁이 지겨워서 조국을 떠난 것이 아니라 정부와 군의 요청으로 피난한 것이다. 내가 오늘 동부전선을 방문했을 때도 그 곳에 아직까지 남아 있는 노약자와 여자들과 아이들에게 제발 집을 두고 피난 가라고 종용했다. 그 것은 군의 작전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우리나라에 살기 싫어서가 아니라 군인들이 제대로 작전을 수행하도록 나라를 떠나는 것이다. 나는 전쟁이 끝나면 피난 갔던 시민들 중 80-90%는 조국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예측한다.”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자존심과 용기는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인지.
“간단히 말해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자유 국가의 시민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는 우리에게 참혹했다. 과거 우리나라는 독립할 경우가 있었지만 그 때마다 무슨 일인가 일어나 독립이 좌절되곤 했다. 1991년이 되어서야 독립을 했는데 그때 가서야 사람들은 세계 어느 한 구석에 우크라이나라는 나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한 부분이라고들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해 전연 무지했다. 우리는 항상 개인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투쟁해왔다. 우리는 피 속에 개인주의의 유전인자를 가지고 있다. 세상의 사람들은 이제야 우리들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고 있다. 우리나라가 러시아와 다른 것은 우리나라는 수평사회이지만 그들은 황제를 지녔던 수직사회라는 것이다. 러시아가 우리나라를 두려워하는 것도 이렇게 자기와 다른 가치관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진정한 의미에서의 독립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필요한 것은 젤렌스키 대통령도 말했듯이 군사적 지원이다. 진정으로 이의 지원을 부탁하는 바이다.”
<
박흥진 한국일보 편집위원 / 할리웃 외신 기자 협회(HFPA)원 편집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