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깡패 국가가 따로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납득 가능한 그럴듯한 명분도 없으면서 살상극은 이어지고 있다. 인격에 비해 주먹이 지나치게 크면 저런 일이 생기나 싶기도 하다.
국내총생산, GDP 하나로 나라 전부를 판단할 수는 없겠으나 지금 러시아는 한국보다 오히려 GDP가 적은 국가다. 영국이나 프랑스의 절반을 조금 넘는 정도. 하지만 보유 핵탄두는 세계 1위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에 의하면 러시아의 핵탄두는 6,200여개로 미국의 5,500여개 보다 많다. 다음이 중국으로 300개. 프랑스와 영국 보다는 20~30배 많다.
러시아의 핵은 위력면에서도 최고기록을 가진 것이 있다. 60여년 전 러시아의 수소 폭탄 실험 때는 1,0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핀란드의 가정집 유리창도 깨졌다고 한다. ‘차르 봄바’, 황제 폭탄으로 명명된 이 폭탄은 미국이 히로시마에 투하한 ‘리틀 보이’의 300배 위력이었다. 27톤 무게의 이 거대 폭탄이 낙하산에 매달려 지상에 떨어지는 순간 에베레스트 7배 높이의 버섯구름이 치솟아 올랐다.
군사력만 놓고 보면 러시아는 미국과 함께 확실한 지구의 일진 중 하나다. 힘 센 나라가 우격다짐으로 남을 괴롭히는 게 러시아 하나가 아니긴 하나, 만에 하나 러시아의 핵 위협이 실행된다면 끔찍한 재앙을 피해 가기 어렵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부터 전술핵 운운하며 슬쩍슬쩍 품에 감춰진 칼집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문제는 러시아가 사실상 푸틴 일인 천하라는 것이다. 만인 지상, 그 위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 당시, 미국의 합참 의장이 비밀리에 러시아의 국방 최고 책임자와 접촉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자칫 대통령 한 사람 때문에 재앙적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고 한다.
강대국 지도자들에게 결례의 표현이겠으나 역사는 ‘또라이’ 한 둘 때문에 무고한 생명이 결딴나는 참극을 무수히 보여 주었다. 시스템 상으로 지구의 핵무기 통제력도 이 정도까지로 보인다.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제동장치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
“지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정말 당연한가.” 고대 희랍인들이 자연을 이해하는 방식이었다. 이 표현을 빌어 “인류가 지구에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가”, “사람은 지구의 주인공인가”라는 질문을 한다면, “그렇지 않다”는 답이 옳을 것이다.
지구 역사는 45억년으로 이야기된다. 과학의 발전에 따라 우주나 지구 생성의 설명이 조금씩 바뀌고는 있으나 지금은 지구 역사가 이쯤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인류는 300만~500만년 전쯤, 현재 멸종한 고생인류가 출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20만~30만년 전 처음 등장한 것으로 고인류학에서는 보고 있다.
여기서 10만년, 아니 몇 백 만년이 틀리다고 해도 중요하지 않다. 근 45억년 동안 지구가 인류 없이 훌륭하게 존재해 왔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자연사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공룡이 차라리 오랜 기간 지구의 주인공이었다. 포유류 시대가 열리기 전 1억6,000만년간 지상을 누볐다고 하니까.
지구에는 모두 5차례의 대멸절이 있었다고 학자들은 본다. 기후변화가 주 원인이었다. 북극 온난화가 저위도 지방보다 2배이상 빨리 진행되면서 온난화가 가속화되는 현상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언젠가 현생 인류도 멸절하는 날이 올까. 굳이 태양의 기대수명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지구의 경험에 비춰보면 “예외 없음”이 맞는 답으로 보인다.
인간은 피조물이면서 인공지능, AI를 탄생시키는 조물주의 자리에 올라섰다고 얼마 전 작고한 이어령 교수는 지적했다. 교회들은 이제 진화론이 문제가 아니라 AI시대에 대해서도 답변할 수 있는 영성을 갖춰야 한다는 말을 강조하면서다. 다른 생명체와는 달리 지구에 단 한 종만 분포해 있는 호모 사피엔스는 선택에 의해 스스로 멸절할 수 있는 유일한 종으로 꼽힌다. 새삼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고도 정보화 시대에 들어선 지금에도 변하지 않고 있는 것들에 대한 답답함 때문이다.
‘포로로 잡힌 러시아 병사는 어머니와 영상통화를 했다. 굶주린 그는 지금 우크라이나 인들이 준 홍차와 빵을 먹고 있다고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에게 말했다.’
‘숨진 우크라이나 병사의 휴대폰에는 미스드 콜 6개가 찍혀 있었다. 다시 전화가 왔다. 병사의 어머니였다. 전화를 받은 러시아 군인은 그녀의 아들이 죽었음을 알리고, 애도했다.’
실시간으로 세계를 하나로 묶어 주는 소셜 미디어 시대, 전장에서 전해지고 있는 칙칙한 녹색의 불투명 수채화들이다. 만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백주 유럽에서 벌어지는 살상극. 과연 인류는 발전하고 있는 것인가. “어떤 것은 그렇고, 어떤 것은 아니다.”가 정답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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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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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으신 말씀입니다. "아직도 이러고 살아?"가 현실인 세상이죠. 평화가 있어도 판이 깨질 판인데, 무슨 전쟁입니까? 대체 어느 시대에 사는 사람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