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일해 대부분의 끼니를 직접 해결하지만 바쁜 날이면 주저없이 김밥의 신세를 진다. 아파트 상가의 유일한 음식점인 분식집에서 한 줄에 2,000원. 주문을 넣고는 언제나 몇 발짝 떨어져 김밥을 마는 손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저렇게 손으로 일일이 싸고 말아서 완성하는데 고작 2,000원이라니. 김밥값이 결국은 손값이라는 건데 이렇게 싸게 팔아도 되는 걸까?
몇 년 전 김밥집을 밀착 취재한 적이 있다. 새벽 다섯 시에 찾아가 밥짓기부터 완성된 김밥이 나오는 과정 전체를 관찰했는데 충격을 받았다. 완성된 김밥을 써는 기계는 있었지만 마는 건 기술을 갖춘 여성 인력들이 한 줄씩 해결하고 있었다.
김밥이라는 음식의 정체성은 결국 사람만이 완성할 수 있는 것이구나. 세월이 흘러 2022년, 유튜브를 검색하면 김밥 마는 기계를 볼 수 있다. 다만 밥을 펴고 김으로 싸주는 두 공정만 해결해 줄 뿐, 속재료는 사람이 직접 올려줘야만 하니 빠르기의 차원에서는 숙련된 인력보다 결코 낫다고 할 수 없었다.
그렇지, 김밥은 이런 음식이지. 며칠 전에도 언제나처럼 책상에 앉아 감사하는 마음으로 김밥을 열심히 욱여넣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김밥은 대체 언제 어떻게 한국인 모두의 음식으로 자리 잡은 걸까? 김밥은 대체 어디에서 온 음식일까? 말하자면 기원이 궁금해져 인터넷을 뒤져보니 참으로 흥미로웠다. 김밥이 일본에서 또는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비롯되었다는 의견이 첨예하게 갈려 있었다.
평론가로서 음식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라고 믿는다. 역사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떻게 이런 지면을 꾸려 나갈 수 있을까? 되려 음식을 말할 때 역사가 남용되고, 그 결과 가장 중요한 맛을 논하지 않는 경향이 한국 사회에 있기 때문에 현재를 중시 여긴다는 말이다.
기원을 놓고 대립각을 세우느라 당장 오늘 우리 입에 들어가는 김밥이 맛이 있는지 없는지, 없다면 어떻게 나아질 수 있는지에 대한 담론을 제대로 형성 못하는 현실이다. 그렇게 생각하기에 조금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마음으로 김밥의 기원에 대한 의견을 정리해 소개한다.
■김밥의 일본 기원설
김에 대한 기록은 조선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경상도지리지(1425)’와 ‘동국여지승람(1530)’에 전라남도 광양군 태인도의 토산품으로 기록이 남아 있다.
우리의 주식이 밥이므로 김을 밥에 싸먹지 않았을까 짐작할 수 있지만 조선 시대에 김밥을 먹었다는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게다가 김은 일제강점기까지도 굉장히 귀한 식재료였으므로 김밥이 조선 시대에 보급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뒤집어 말하면 일제강점기에 본격적으로 김의 생산이 늘어나면서 김밥도 정착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일제강점기 사회 전반에 보급된 도시락 문화도 김밥의 일본 기원설을 뒷받침한다. 조선 시대에는 관청에서 식사를 제공했던데 반해, 일제강점기에는 직원들이 점심을 식당에서 먹거나 도시락으로 해결하게 되었다. 학교 또한 아침에 등교해 점심 시간을 넘겨 수업을 받게 되면서 도시락이 필요해졌다.
마지막으로 창경원 벚꽃놀이 등의 야유회로 인해 도시락의 존재감이 전면에 부각되었다. 외식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인파가 엄청나게 몰렸으므로 도시락을 싸와서 먹는 게 훨씬 더 편했기 때문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1930년 3월 7일자 동아일보에서는 ‘부인의 알아둘 봄철 요리법(2)’이라는 헤드라인으로 야유회용 도시락 만드는 법을 소개했다. ‘창경원에 꽃구경을 가더라도 점심 때는 되고 식당을 들어가면 양은 적고 비싸서 여건 불경제가 아닙니다. 집에서 준비하여 가지고 가면 편하게 먹을 수 있습니다(후략).’ 그리고 산도위치(샌드위치)와 함께 ‘김쌈밥’의 레시피가 실려 있었다.
‘쌈밥(스시)으로 김쌈밥(노리마기스시, 海苔きずし)이 있습니다. 재료는 아사구사노리라고 하는 두꺼운 일본김으로, 조선김으로 쓰려면 두 장을 씁니다.
밥이 뜸이 들만 하면 따로 그릇에 퍼고, 식초 한홉, 설탕 2숟갈, 소금 1숟갈, 아지노모토 1숟갈을 섞어 밥에다 비빕니다. 이것이 스시밥 짓는 것입니다. 표고를 물에 불려 간하고, 계란은 지단을 부치며, 덴부라고 하는 도미살을 분홍색으로 물들인 것을 준비합니다. 발 위에 김을 놓고 김 가운데 계란, 표고, 덴부를 놓고 말아갑니다. 만 것을 칼로 벱니다. 일본 빨간 장아찌를 잘게 썰어 같이 먹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당시의 기사에서 주목할 만한 점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당시의 김밥이 비교적 잘 사는 계층의 음식이었다는 점이다. 함께 소개한 샌드위치에 쓰이는 빵이나 버터, 잼도 그렇지만 아사구사노리라는 일본 김, 표고버섯 등도 고가의 재료였기 때문이다. 한편 두 번째로는 밥에 식초와 설탕 등으로 간을 했다는 점이다.
애초에 스시의 일종이라고 소개한 맥락에 충실한 조리법으로, 일관적으로 신문 등에 등장했다가 1977년에 이르러서야 변화를 겪게 된다. 1977년 3월 12일자 매일경제의 ‘봄놀이 채비 야외 도시락’의 조리법에서 간하는 과정을 생략한 레시피를 소개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밥에 일본식으로 간을 하는 문화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1980년대에 초등, 아니 국민학교를 다녔던 내 경험만 살펴 보아도 그렇다.
우리집은 간을 하지 않은 밥을 썼지만, 소풍을 가면 새콤달콤하게 간이 된 김밥을 심심치 않게 얻어 먹을 수 있었다. 특히 일제강점기를 경험한 할머니 세대, 즉 1910~1920년대생들이 싸준 김밥은 대체로 간이 되어 있는 편이었으니 싸가지고 온 급우들도 ‘김밥’이 아닌 ‘김초밥’이라 일컬었다.
요리책도 당시의 경향을 뒷받침해 준다. 1982년 출간된 ‘삼성가정요리(삼성출판사)’의 제20권인 ‘별미 밥과 별미 죽’에는 ‘굵은 김밥’과 ‘가는 김밥’이 실려 있는데 이름 자체가 일본 음식인 후토마키와 호소마키를 직역한 것이다. 물론 밥을 식초와 설탕 등으로 간한다거나, 일본식 생선 보푸라기인 오보로, 표고 등을 쓰는 것까지 100% 일본식이다.
■김밥의 한국 기원설
김밥이 한국 고유의 음식이라는 주장은 김의 역사를 근거로 삼는다. 이미 ‘삼국유사(1281)’에 김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본초강목(1596)’에도 신라인들이 허리에 새끼줄을 묶고 깊은 바다에서 김을 채취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고 한다.
한편 김의 최초 양식은 1650년경 전남 광양의 김여익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태인도에서 소나무와 밤나무 가지를 활용하는 방법이었다고 한다.
김이 이처럼 일찍부터 존재한 가운데 우리에게는 고유의 쌈 문화가 있으니, 김을 밥에 싸먹는 문화가 자연스레 존재했을 거라 추론하는 것이다. 그런 논리를 뒷받침해주는 음식이 있으니, 바로 복쌈이다. 말 그래도 ‘복을 싸서 먹는다’라는 의미의 복쌈은 정월대보름에 복과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로 먹는 별식이었다. ‘열양세시기(1819)’와 ‘동국세시기(1849)’에 의하면 배춧잎에 김과 밥을 싸먹는 음식이 ‘복과’, ‘박점’, ‘복쌈’이라는 음식으로 존재했다.
김에 싼 복쌈을 많이 먹으면 볏섬을 많이 한다고 해서 아침을 먹고 나와 친구들에게 ‘나는 볏섬을 많이 먹었으니 올해 농사는 내가 최고가 된다’라고 자랑을 했다고도 한다. 이때 밥을 싸먹는 김은 손으로 대강 잘라 먹었는데, 칼이나 가위로 자르면 벼 목을 잘라 농사를 망친다고 해서 경계했기 때문이다.
◇참고 문헌
-지역N문화: 일제강점기 초밥으로 만든 김밥
-별미 밥과 별미 죽(삼성 가정요리, 삼성출판사)
-전북일보: [생활 속 역사 이야기] 14. 김밥의 유래
-문화재청: 역사와 추억이 뒤섞인 한국인의 소울푸드-김밥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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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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