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평민 도미는 아름답고 지조 있는 아내가 있었다. 도미의 아내가 아름답다는 소문을 들은 개루왕은 도미를 불러 제아무리 깨끗한 행실을 하는 사람이라도 은밀하고 교묘히 유혹한다면 넘어가지 않을 사람이 없다며 그의 아내의 정절을 시험하고자 했다. 개루왕의 말을 들은 도미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일지라도 자신의 아내는 죽어도 변하지 않을 사람이라 대답한다. 이에 개루왕은 도미를 감금하고 그의 아내를 범하려 하였으나 기지를 발휘하여 그 위기를 벗어난다. 이에 분노한 왕은 도미의 눈을 멀게 하고 작은 배에 태워 강으로 흘려보낸다. 왕을 피해 달아난 도미의 처는 강어귀에서 하늘을 향해 대성통곡을 하다 떠내려오는 배를 타고 천성도에 가서 남편과 재회한 후 타향인 고구려에서 생을 마감한다.
조선 시대 평민의 행색으로 각 지방을 돌아다니며 지방관의 횡포를 감찰하고 벌하여 민중을 구원하는 암행어사가 있었다. 그중 박문수는 등과하기 전 한 기생과 정이 깊었다. 10 년의 세월이 지나 암행어사가 된 박문수는 걸인의 복장으로 기생을 찾았으나 초라한 행색을 한 박문수를 기생은 문전박대를 한다. 모두가 자신의 행색을 보고 박대한 가운데 관아의 여종만이 박문수를 정성껏 대접한다. 이를 알게 된 사또는 노여워하며 그를 쫓아내는데 박문수는 암행어사 출두를 외치며 사또와 기생을 징벌하고 여종에게는 포상한다.
사람의 입을 통해 전승되는 구비문학의 하나인 열녀 도미 설화와 암행어사 박문수 설화이다. 사실 그대로를 전달하기보다 교훈적인 내용을 담아 흥미 위주로 각색하여 이야기한다. 구전으로 전하기 때문에 세세한 부분을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보다 핵심적인 구조를 토대로 전승하기 때문에 설화는 단순하면서도 잘 짜인 구조를 지닌다. 도미 설화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첫 열녀 설화로 정절을 지키기 위해 고난과 음모를 극복하는 데 중점을 둔다. 어사 박문수 설화도 권선징악을 담고 있지만 자신 역시 여러 계략과 위험에 휘말리며 겪는 고초를 구체적으로 다룬다.
얼핏 삼국시대와 조선이라는 다른 시대적 배경과 열녀와 암행어사라는 주제조차도 다른 이 두 설화는 신분을 뛰어넘는 남녀의 사랑을 그린 춘향전의 근원이 된다. 그리고 이 춘향전은 조선의 종합 예술, 민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판소리, 춘향가로 재탄생한다.
남원 부사의 아들 이몽룡과 퇴기 월매의 딸 성춘향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춘향가는 지금까지 전해지는 판소리 다섯 마당 중에서 문학성과 예술성이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완창에 짧게는 5 시간에서 길게는 8 시간이 걸리는 춘향가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다양한 대목이 존재한다. 이몽룡이 춘향을 광한루에서 처음 만나는 장면부터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춘향전과 같은 줄거리로 진행하는 판소리 춘향가는 음악적으로 유명하고 뛰어난 부분이 많다.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사랑이로구나 내 사랑이로다’로 시작하는 사랑가와 ‘쑥대머리 귀신 형용, 적막 옥방의 찬 자리에, 생각 난 것은 임뿐이라’로 옥에 갇힌 춘향이가 칼을 쓰고 절절하게 노래하는 옥중가는 많은 현대인에게도 익숙한 구절이다.
판소리는 현재는 예술 음악으로 가치를 평가받지만, 당대에는 굿판이나 놀이판에서 광대가 소리와 재담을 몸짓을 섞어가며 대중에게 선보이던 대중예술이었다. 서양에서 귀족들에게 선보이던 오페라와도 같은 장르로 볼 수도 있으나 일반 서민들을 상대로 핍박받는 민중들의 이야기를 담고 당시의 부패한 관료와 사회를 풍자하며 해학이 넘치게 그려내는 인간미 가득한 한국 전통 예술인 것이다. 더구나 북을 치는 고수와 함께하나 긴 시간 주된 이야기를 풀어가는 창자는 한 명이라는 점에서 오페라와 달리한다.
판소리는 원래 열두 마당이었으나 현재는 춘향가, 적벽가, 수궁가, 심청가, 흥보가의 다섯 마당만이 전해진다. 조선 후기보다 훨씬 전에 불렸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를 뒷받침할 역사적 문건은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는다. 1754 년, 영조 시대에 유진한이 한시로 쓴 춘향가가 가장 오래된 판소리 문헌이다. 19 세기, 당시 광대가 아닌 전라북도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던 신재효는 그의 지식을 바탕으로 많은 판소리 사설과 단가를 정리하여 기록했다. 또한 오늘날까지 널리 통용되는 인물, 사설, 득음, 너름새의 판소리 기본 요건을 정립하고 그 내용 또한 자세히 설명하여 오늘날에도 통용되는 가장 큰 업적을 남긴다.
‘암행어사 출두야 출두야…’
‘어제저녁 옥문밖에 거지 되어 왔던 낭군 춘풍매각 큰 동헌에 맹호같이 좌정허신 어사낭군이 분명쿠나…’
‘얼씨구나 좋을씨고’
춘향가는 백제 도미의 아내처럼 갖은 고초를 겪으며 자신의 정절을 지킨 춘향이 마침내 암행어사가 되어 변 사또라는 악을 벌하며 등장한 이몽룡과 극적으로 재회하며 마침내 그 끝을 맺는다.
<
손화영 (가야금 연주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