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국도 관련제도 마련 ‘현재진행형’…나라마다 제각각
▶ ICO 직접 규제법은 없고 증권법 등 기존 법 적용
비트코인이 세상에 등장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가상화폐에 대한 세계 각국의 법적 정의는 아직도 모호하다.
이에 따라 가상화폐를 규제해야 할지 여부도, 나아가 어떻게 규제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국가마다 입장이 다르다. 한마디로 가상화폐를 둘러싼 제도 수립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 가상화폐, '화폐'인가 '자산'인가 명칭 혼용
세계 각국이 가상화폐를 어떻게 인식하는지는 이를 부르는 명칭을 보면 알 수 있다.
대개 'OO화폐'라고 칭하면 지급수단 또는 교환의 매개로서 가상화폐를 인정한다고 보면 되고, 'OO자산'이라고 부르면 화폐보다는 가치저장 또는 투자대상으로서 성격을 강조하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우리나라는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에서 가상화폐를 '가상자산'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가상화폐 소득 과세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가상화폐가 '화폐'로 오해되는 것을 염려해 '가상자산'이라는 용어를 쓴다고 설명한 바 있다.
주요 20개국(G20)은 당초 가상화폐를 '암호자산'(crypto-asset)이라고 지칭했다가 최근 들어 '가상자산'(virtual asset)으로 바꿨다.
유럽중앙은행(ECB)은 2012년과 2015년 '가상화폐 체계'(Virtual Currency Schemes)란 보고서를 내며 '가상화폐'란 용어를 썼다가 요즘엔 '암호자산'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일본은 2019년 관련 법을 개정하면서 가상화폐를 지칭하는 표현을 '가상통화'에서 '암호자산'으로 변경했다.
일본은 공식적으로 '암호자산'이라는 용어를 쓰지만 2016년 '자금결제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가상화폐를 지급결제 수단으로 인정했다. 사실상 화폐의 성격을 가진 자산으로 간주하는 셈이다.
이와 달리 미국 국세청(IRS)과 재무부 등은 '가상화폐'라는 용어를,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암호화폐'(cryptocurrency)를 각각 쓰며 '화폐'라는 말을 고집하고 있다.
특히 미 국세청은 2014년 '가상화폐 과세지침'에서 가상화폐를 "교환의 매개, 계산의 기본 단위, 가치 저장 등의 기능을 하는 가치의 디지털 표현"이라고 정의했다. 어떤 환경에서는 가상화폐가 실제 화폐와 같이 작동한다고도 말했다.
영국은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를 '민간통화'(Private Currency)라고 불렀다가 금융당국인 금융행위감독청(FCA)이 '암호자산 지침'(Guidance on Cryptoassets)을 발간하며 '암호자산'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FCA는 이 지침에서 가상화폐를 '토큰'이라는 용어를 써서 교환토큰, 유틸리티토큰, 증권토큰 등으로 분류했다.
◇ 가상화폐 '자산'으로 간주…소득세 또는 자본이득세로 과세
과세 측면에서 보면 세계 주요국은 가상화폐를 대개 '자산'(property)으로 간주해 세금을 매기고 있다.
국회와 연구기관, 각국 과세당국에 따르면 미국은 가상화폐 가운데 실제 화폐로 바꿀 수 있는, 즉 '전환 가능한'(convertible) 가상화폐를 자산으로 간주해 과세한다. 비트코인처럼 거래소 등지에서 거래가 활발한 주요 가상화폐들은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가상화폐를 거래대금이나 임금 등으로 받으면 소득으로 보고 수취 시점 가상화폐의 공정가치를 총소득에 포함한다.
가상화폐 채굴이 일회성이면 채굴로 얻은 가상화폐를 기타소득으로, 사업목적의 채굴이면 사업소득으로 각각 분류한다.
보유하고 있던 가상화폐를 팔아 매매차익이 생기면 자본이득(capital gain)으로 보고 과세한다. 국내 투자자가 가장 관심 있는 부분일 것이다.
매매 차익이 1년 이하 단기 보유에 따른 경우면 일반소득과 합산해 종합소득세율로 과세하고, 1년 초과 장기 보유이면 이익에 따라 0%, 15%, 20% 세율을 적용한다.
미국은 조 바이든 행정부 들어 가상화폐 과세가 강화되는 추세다.
미 재무부는 작년 5월 연간 600달러(약 71만6천원) 이상 가상화폐 거래에 대해서 은행이 그 입출금 내역을 신고하게 했다. 이후 업계 반발이 거세자 그해 10월 기준금액을 1만달러(약 1천193만원)로 대폭 높이긴 했다.
일본은 이전엔 가상화폐를 귀금속 등과 같은 상품으로 보아 소비세를 부과했다가 관계 법령을 개편해 2017년부터 소비세 대상에서 제외했다.
대신 개인의 경우 가상화폐 거래로 발생한 이익을 원칙상 잡소득으로 간주하고 종합과세를 하고 있다.
잡소득은 일본 소득세법상 규정된 소득의 한 종류로서 이자소득, 배당소득, 부동산소득, 사업소득, 양도소득 등이 아닌 기타소득을 의미한다.
독일은 가상화폐 매매에 따른 이익을 소득세법상 자본이득으로 간주해 과세한다.
단, 가상화폐를 1년 이내 단기 보유한 경우 그 이익이 연간 600유로(약 81만원) 이상일 때에만 일반 누진세율로 과세한다. 연간 이익이 600유로 미만이거나 1년 이상 장기 보유일 경우엔 세금을 매기지 않는다.
호주는 가상화폐 채굴이나 일한 대가로 얻은 가상화폐에 대해서는 개인소득세를, 가상화폐 매매로 인한 차익에 대해서는 자본이득세를 각각 부과한다.
1년 이상 장기 보유한 가상화폐를 매매했을 땐 과세액의 절반을 감면해준다.
가상화폐 취득가액이 1만호주달러(약 860만원) 이하이면 자본이득세 자체를 부과하지 않는다.
◇ ICO 직접 규제 법률은 없어…주로 기존 법령으로 의율
가상화폐공개(ICO·initial coin offering)와 관련해서는 이를 직접적으로 규정하는 제도가 없다는 점이 공통분모다.
한국과 중국은 2017년 9월 ICO를 명시적으로 금지했다. 단, 중국은 이후 모든 종류의 가상화폐 거래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단속까지 벌이고 있어 ICO 금지라는 의미가 퇴색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가상화폐 거래를 허용하면서 ICO를 금지한 국가는 사실상 한국 말고는 없다시피 하다.
다른 국가들은 ICO를 인정하면서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경우 기존 법령으로 규율하거나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정·배포해 건전성을 도모하고 있다.
미국은 SEC가 증권법상 '투자계약'의 의미를 광범위하게 해석해 ICO가 이에 해당하면 규제한다.
일명 '하우이 테스트'(howey test)라고 해서 ▲ 공동의 사업이 있고, ▲ 이 사업에 금전이 투자되고 ▲ 투자에 따른 수익에 대한 기대가 있고 ▲ 해당 수익이 발기인 또는 제3자의 노력으로부터 나올 경우 투자계약으로 간주해 증권법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SEC는 2017년 7월 이 규정을 처음으로 적용해 일종의 가상조직인 탈중앙화자율조직(DAO)이 발행한 토큰이 증권에 해당한다고 결정했다.
이후 암호화 메신저 텔레그램이 2018년 진행한 17억달러(약 1조8천400억원) 규모의 ICO도 증권이라고 판단, 텔레그램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했다.
텔레그램은 결국 작년 6월 1천850만달러(약 221억원)의 제재금을 내기로 SEC와 합의했다.
스위스 금융시장감독청(FINMA)은 2017년 9월 ICO 규제지침을 발표하고 이듬해인 2018년 2월 ICO 관련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ICO를 관리하고 있다. 별도의 법을 만들기보다는 ICO를 유형별로 나눠 이런 경우 이런 법령을 준수해야 한다는 식으로 안내한 것이다.
범현대가 3세인 정대선 HN(옛 현대BS&C) 사장이 설립한 에이치닥이 2017년 스위스에서 ICO를 진행하기도 했다.
증권형토큰공개(STO·Security Token Offering)도 ICO의 일종이다. 사업자가 투자자들에게 제공하는 가상화폐가 증권형 토큰일 경우 STO라고 말한다.
증권형 토큰은 미래 수익이나 실물 자산 등에 대한 지분·권리를 부여하는 징표다. 다양한 토큰(가상화폐) 유형 중 증권의 속성을 가진 것을 가리킨다.
SEC가 ICO가 증권법상 투자계약에 해당하는지를 따지는 것도 결국 ICO로 제공되는 가상화폐를 증권, 즉 증권형 토큰으로 본다는 의미다.
일본도 ICO를 규제할 때 ICO로 제공되는 가상화폐가 자금결제법상 가상통화에 해당하면 가상통화교환업자로 등록하도록 하고 있고, 해당 가상화폐가 증권 성격을 띠고 있으면 증권형 토큰을 규율하는 금융상품거래법을 따르게 했다.
이를 위해 2019년 금융상품거래법을 개정, '전자기록 이전권리'라는 개념을 신설해 증권형 토큰을 규제 대상으로 포섭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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