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체온이 36.5도 내외의 정상체온임에 이렇듯 고맙게 느껴본 적이 없었다. 지난 한달 동안 한국을 방문하면서 더욱 그랬다. 비행기를 타기 전부터 도착 후 바로 열흘간의 격리생활에 들어가, 나온 후에도 하루에 적어도 서너번 나의 정상체온을 확인해야 했다. 한국에서 볼일을 보면서도 책방, 식당, 관공서, 은행 어디든 들어가는 입구에서 온도 체크를 해야했고 마지막 비행기 타기 24시간 전에 코비드 음성테스트를 해야만 했다.
36.5도는 내가 무슨 활동을 할 수 있는 허가증이었다. 이것이 없으면 어떤 사회활동에서도 제외되어야 했다.
36.5도, 생각해보니 이 온도는 나의 생명의 온도였고 내가 삶을 살아내는 기반이었다. 내 삶속으로 들이닥친 불행의 용광로 속에서도 튀어오르는 분노와 절망의 쇳물을 삭이어 다시 삶을 살아내는 강철로 만들어내는 힘도 거기에 있었다. 생물학적으로 36.5도에서는 신진대사와 혈액순환, 면역체제의 작동 등 생명활동에 관여하는 효소를 가장 활발하게 하는 온도라고 한다.
우리의 몸에 열이 나는 것은 감염되었음을 감지한 뇌가 시상하부에서 체온을 38도로 세팅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열이 오르면 감염된 바이러스나 세균의 증식 속도가 떨어지고 각종 염증 반응도 활발해져서 감염된 균을 제거하려고 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39.5도를 넘게 되면 가장 연한 뇌신경세포가 손상되면서 헬렌 켈러와 같이 눈이나 귀가 잘못될 수도 있다. 42도 이상에서는 사망에 이를 확률이 상당히 높다. 다시 말하면 36.5도는 내가 꿈과 야망을 향해 매일 한 발짝씩 나아가게 하는 나의 의지와 정신을 담는 그릇, 내 육신의 온도이다.
내 육신이 나의 정신을 담는 그릇이듯이 지구는 내 생명을 담는 그릇이다. 지구에게도 정상온도가 있다. 15-17도 사이이다. 섭씨 16도 내외는 지구가 입고 있는 녹색외투, 생명그물망의 모든 동식물이 서로 연결되어 상호의존하여 공생하며 순환하는 생명활동에 최적화된 온도이다. 이 온도는 북극과 남극의 해류가 지구를 돌며 기후를 온화하게 하며 사계절을 만들고 바다의 해양동물, 산과 산맥들에서 포효하는 짐승들, 땅의 미생물과 숲과 들의 식물들이 서로 생명활동의 경쟁 속에서 번성하는 온도이다.
지구가 정상온도를 벗어날 때도 우리 인체와 마찬가지의 변화를 겪는다. ‘6도의 멸종’이라는 책이 있다. 저널리스트이며 환경운동가인 마크 라이너스가 쓴 책이다. 책은 지구가 정상온도에서 1도 상승할 때마다 변화하는 상태를 상세하게 서술한다. 아주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도 상승으로 바다의 산호초 70%가 죽고 태평양 섬나라 난민 발생, 태풍의 영향권이 확대된다. 우리가 지금 이 상태에 있다. 2도 상승이면 물이 부족해지고 농업활동이 어려워 식량과 수자원이 부족해지며 지중해 국가의 사막화가 심화된다. 해수면은 60센티까지 상승한다. 생물종 1/3이 사라진다.
3도의 상승은 어떡하던지 막아야 한다. 이는 기후 변화의 되먹임 현상이 일어나는 임계점(440ppm)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을 지나면 지구를 더 이상 그전의 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 아마존이 없어지고 적도국가는 지속적인 산불을 겪어야 한다. 12월6일 현재 대기권 이산화축척양은 415.01 ppm(co2.earth)이다. 4도 상승이면 호주의 농업이 불가하고 지구는 거주가 불가해지며 기근과 전쟁으로 문명의 지탱이 힘들게 된다.
5도 상승은 북극과 남극에서조차 농업이 어려워지고 해저의 메탄가스가 풀려 나오면서 해저층이 갈라져서 지속적인 쓰나미가 발생한다. 6도 상승이 되면 인류와 함께 생물종의 90%가 사라지게 된다. 이 상태에서는 인류의 멸종은 불가피하다.
지구에게도 정상온도가 있다는 사실은 지구가 둥글다는 갈릴레오의 발표와는 달리 그렇게 획기적이지도 않다. 지구가 정상온도를 유지해야 나와 내 자손들이 지속적으로 생명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는 인식, 즉 지구의 건강과 나의 생명활동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새로운 형태의 인본주의이다. 새로운 인본주의는 인간의 꿈과 문명이 자연과 우주와의 관계 속에서 바른 자리를 잡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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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 기후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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