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재의 식사 - 크리스마스 케이크의 역사
크리스마스에는 대체로 케이크 같은 단맛의 음식이 대세다. 아무래도 기쁨은 단맛으로 나눠야 더 맛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축제에 짠맛 위주의 음식이 빠질 수는 없다.‘밥 배와 디저트 배는 따로 있다’는 말처럼 일단 짠맛의 음식을 적당히 먹어 주어야 남은 맛을 씻어주는 역할의 디저트가 훨씬 더 즐겁다. 아무래도 밥을 좀 먹어야 디저트가 맛있으므로, 우리도 크리스마스의‘밥’을 일단 가볍게 살펴보자.
잔치의 풍요로움과 푸짐함, 그리고 나눠 먹는 식사의 상징성 등을 반영하느라 크리스마스에는 대체로 통구이가 주 메뉴로 식탁에 오른다. 한 달 전인 추수감사절의 분위기를 이어 받아 칠면조를 먹기도 하고 오리나 거위 등도 통째로 굽는다. 중세에는 멧돼지 머리 통구이가 대세였음을 생각해 보면 인류는 참으로 먼 길을 걸어왔다.
가금류 외의 고기로는 햄 통구이가 크리스마스의 단골 메뉴이다. 돼지 뒷다리를 뼈째로 훈제해 익힌 햄의 전체에 대각선의 격자로 칼금을 넣고 정향을 촘촘히 박은 뒤 오븐에 굽는다. 그리고 사이사이 흑설탕, 메이플 시럽 등으로 만든 글레이즈를 발라 반짝임과 달콤함을 불어 넣는다.
물론 크리스마스라고 전세계에서 고기를 먹는 것은 아니다. 폴란드 등 동부 및 중앙 유럽에서는 잉어 같은 생선이 주 메뉴인 열 두가지 요리를, 포르투갈에서는 바이킹의 세계 진출용 식재료였던 염장 건조 대구로 만든 바깔라우를 먹는다.
이런 메뉴로 식사의 전반부를 마무리하면 후반부의 디저트가 기다리고 있다. 크리스마스라면 케이크를 꼭 먹어야 할 것 같고, 그렇다면 부쉬 드 노엘을 골라야 할 것 같다. 부쉬 드 노엘은 크리스마스에 행운을 기원하며 때는 통나무, 즉 ‘율 로그(yule log)’의 모양을 따 만드는 케이크다. 부쉬 드 노엘의 기본은 롤케이크로, 얇은 스폰지 케이크인 비스퀴에 버터크림을 바르고 둥글게 말아 모양을 잡는다. 그리고 겉면에도 짙은 색깔의 크림을 바르고 포크 등으로 나무 껍질을 상징하는 골을 넣어 마무리한다. 부쉬 드 노엘은 전통적으로 머랭(휘저어 거품을 낸 계란 흰자)을 구워 만든 버섯 모양 과자로 장식한다.
이름에서 드러나듯 부쉬 드 노엘은 프랑스 음식이지만 기원은 유럽 전체 또는 바이킹의 북유럽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일단 보편적으로 유럽에서는 다음 해의 풍작을 기원하며 크리스마스를 포함한 한겨울에 장작불을 지피던 전통이 있었다. 그러던 것이 전통적인 난로가 사라진 근대, 즉 19세기 후반부터 장작을 닮은 케이크를 만들어 먹기 시작해 오늘날의 부쉬 드 노엘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노르웨이의 신화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다. 고대 노르웨이인들이 동지 때 다시 해가 뜨는 걸 기뻐하며 장작을 땠다는 이야기이다. 태양을 지구에 다가왔다가 멀어지는 불의 바퀴라 믿었으므로, 다시 해가 뜨는 걸 해의 귀환이라 믿었고 기렸던 것이다. 바로 이 장작의 풍습이 전해 내려와 결국에는 케이크로 자리 잡았다는 주장이다.
프랑스에 부쉬 드 노엘이 있다면 이탈리아에는 파네토네가 있다. 작은 케이크를 의미하는 파네토(panetto)에 접미사(one)가 붙어 ‘큰 케이크’가 되었는데, 사실 조리법을 보면 발효 반죽으로 만드는 빵이다.
하지만 계란과 버터를 푸짐하게 쓴 반죽에 건포도나 설탕을 입힌 시트러스 류의 껍질, 체리 등을 더해 맛과 열량 면에서는 케이크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게다가 표준이 1㎏을 넘기는 큰 빵이다 보니 풍채 면에서는 되레 케이크보다 더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잘 내준다.
역사가 1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파네토네는 일단 이견의 여지 없이 밀라노가 고향인데,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중 그럴싸한 것을 골라 소개해보자. 15세기, 공작의 매 조련사인 우게토라는 이가 있었다. 그는 제빵사의 딸을 사랑해 밤마다 빵집에 찾아가 밀회를 나누었는데, 어느날 어려움이 들이닥친다. 제빵사의 견습생이 아프고 경쟁 상대가 생겨 빵집 매상에 타격을 입은 것이다. 우게토는 사랑하는 이의 시름을 덜어주기 위해 공작의 매를 판 돈으로 버터를 사 빵 반죽에 더하기 시작했으니 그게 파네토네의 시초라는 것이다. 버터 덕분에 빵집이 인기를 얻기 시작하자, 우게토는 한 술 더 떠 계란부터 건포도까지 각종 재료를 더해 오늘날의 파네토네의 원형을 완성했다는 이야기이다.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몇 백 년 전에 토니라는 제빵사가 있었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은 물론 아버지인 부유한 상인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브랜디에 절인 과일, 버터, 계란, 설탕 등의 고급 재료를 활용해 빵을 굽는다. 상인 아버지는 빵이 너무나 마음에 든 나머지 딸과의 결혼을 허락한 것은 물론 밀라노에 빵집을 차려준다. 그렇게 ‘토니의 빵(Pane Tony)’이 탄생했고 결국 파네토네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파네토네는 태생적으로 산도가 높은 자연발효종으로 만드는 덕분에 유통기한이 길다. 그래서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데, 원래 풍성한 빵에 크리스마스의 정신을 깃들여 한층 더 풍성함을 더해 먹는 게 정석이다. 이탈리아의 전통을 따르자면 파네토네에는 고소하고 진한 마스카르포네의 크림을 곁들여 먹는다. 한편 워낙 커 한 번에 다 먹을 수 없으므로 남은 건 크리스마스 다음 날 프렌치 토스트를 만들어 브런치로 먹어도 좋다. 약간 푸석거리는 질감에 스폰지 같은 조직이 계란물을 워낙 잘 빨아들이므로 프렌치토스트에 아주 잘 어울린다.
하지만 이제 손이 많이 가는 케이크를 만드는 집은 많지 않으니 주고받는 마음과 풍습만 부담으로 남았다. 그리고 이를 악랄한 평판의 대량 생산 제품이 메운다. 매년 때가 오면 슈퍼마켓에 깔리는데, 단단하고 무겁기가 딱 벽돌이다. 서로 주고는 받지만 아무도 먹지는 않는다. 그래서 문이 닫히지 말라고 괴어 놓는 돌처럼 쓰이거나 지독한 농담의 소재로 인기를 누린다. ‘세계에는 단 한 종류의 과일 케이크가 있다. 아무도 안 먹지만 버리지는 못한 채 그냥 둔 것이다’라는 농담이다.
주니 안 받을 수는 없고 받아 쟁여두고 있자니 스트레스 받는 사람들을 위해, 과일 케이크를 시원하게 처리하는 행사마저 열리고 있다. 콜로라도주의 마니토우 스프링스에서 주최하는 과일 케이크 멀리 쏘기 대회다. 1995년에 시작했으니 이제 역사도 제법되었다. 거대한 새총 등 과학의 도움을 받은 장비들이 돌덩이나 다름없는 과일 케이크의 한계를 넘기 위해 등장한다. 전 보잉사 직원들이 대포 ‘오메가 380’으로 세운 2007년 기록 432m가 아직도 왕좌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올해 크리스마스에 받아 화를 불러일으킨 과일 케이크를 날려 버릴 기회는 내년 1월 3일로 잡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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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 음식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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