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길을 갈 때면 교차로를 마주치게 된다. 차로 가든 걸어서 가든, 좋든 싫든 교차로를 지나게 되어있다. 바쁠 때는 교차점에서 늦어지기에 썩 반갑지 않은 곳이지만, 오히려 우리는 교차점에서 바쁜 걸음을 멈추고 숨과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고 사람과 마주칠 수 있다. 근래에 나는 수십 년 전에 헤어졌던 친구와 반갑게 만날 수 있었다.
서울에서 중학교 1 학년 때 앞, 뒤로 앉아 재미있게 지냈던 좋아하는 친구였는데, 미국으로 조기 유학을 떠난 이후로 소식이 끊어졌다. 궁금해 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내 소식을 알아보고서 연락을 한 것이었다. 중학교 때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어 우리는 한눈에 알아보고 얼싸 앉았다. 그 친구는 사춘기 때 미국에 와서 어려웠지만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서 잘 성장하였고 깊은 신앙인이 되었을 뿐 아니라 신경외과 의사가 되어있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고 미 중부지방에서 오랜 의사 수련생활을 마쳤다. 그 후 중부지방의 유수한 병원에서 일을 하다가 시간이 갈수록 고향과 같은 로스앤젤레스가 그립고 교포 사회에 좋은 영향을 주고 싶어서 남가주로 다시 왔다고 했다. 서로 의사의 입장을 잘 이해하기에 우리의 이야기는 더 깊었다.
닥터 이가 걸어온 신경외과의사의 길은 뼈를 깎는 수련을 거쳐야만 되는 매우 어려운 길임을 아는 터라 친구가 무척 자랑스러웠다. 친구는 미국에서도 유명한 뇌종양수술 의사이며 그가 하는 뇌종양의 수술은 무척 다양하였다, 뇌는 지능을 가지게 하며 생각 하는 것, 계획하고 소통하게 하고 느낌을 갖게 하며 심장박동, 호흡, 혈압의 모든 생명의 중추를 관장하는 기관이니 수술의사의 섬세함과 과감한 순간적 결정을 필요로 함은 말할 것도 없다. 그 중에서도 뇌 속 깊이 있는 뇌 수막종, 뇌하수체 종양 수술이 특히 나의 관심을 끌었다.
뇌하수체는 콩알만 한 크기로 뇌의 아래쪽 가운데 부분에 달려 있는데, 우리 몸의 중요 호르몬을 조절해주는 중심역할을 한다. 갑상선, 아드레날린, 여성호르몬, 젖 분비호르몬, 성장호르몬, 소변 양을 조절해주는 호르몬 등을 조절한다. 뇌하수체는 두개골의 중심부위에 파여 있는 부분 안에 쏙 들어있다. 뼈 안에 딱 맞게 들어 있기 때문에 충격으로부터 보호는 잘되지만 종양이 생기면 정상적인 세포를 압박하여 뇌하수체 호르몬을 과잉 혹은 과소 생산 할 수 있다. 상황에 따라서 월경이 불규칙해지거나 성욕이 떨어지고, 남녀 모두에게서 유즙이 나오기도 하고 손과 발, 턱이나 코가 커지고 이마가 튀어나오면서 얼굴 모양이 달라지는 말단비대증, 당뇨나 고혈압이 생기기도 한다. 가슴과 배에만 살이 찌고 팔다리는 가늘어지는 몸통 비만이 생기기도 하고, 얼굴이 달덩어리처럼 될 수도 있다.
뇌하수체 바로 위로 지나가는 조직이 시신경인데 머리의 앞쪽에 있는 눈과, 머리의 가장 뒤쪽에 있는 뇌를 연결시켜주는 신경이다. 눈과 뇌가 시신경으로 잘 연결되어야 물체를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좌우 2개의 앞에서 뒤로 가는 시신경은 뇌의 중간 부위에 있는 뇌하수체 바로 위쪽에서 X 자로 만나는데 신기하게도 신경 줄의 50% 는 교차해서 반대쪽으로 넘어가고 나머지 50%는 교차하지 않고 같은 쪽으로 간다. 즉 왼쪽 시신경의 반은 왼쪽 눈으로, 오른쪽 시신경의 반은 오른 쪽 눈으로 똑바로 가고 나머지 반은 서로 좌우 길을 건너 반대쪽으로 간다. 이렇게 된 이유는 좌우 두 시신경이 협력하여 일을 함으로써 더 잘 보고 거리 감각도 좋아지기 위해서이다. 뇌하수체의 종양이 커지면 지나가는 시신경이 눌리게 되고 시야가 희뿌옇거나 검게 보이게 되는데 좌우의 신경이 마주치는 교차점이기에 해 양쪽의 시야가 동시에 영향을 받는다. X자로 만나면서 반은 같은 쪽으로 가고 반은 반대쪽으로 교차해가는 시신경의 오묘함을 보면서 인생의 교차점에서도 자신을 지키면서 상대방과 함께 일하고 도와주는 것이 인생의 지혜이며 기쁨임을 깨닫는다. 번거로울 수 있지만 교차가 있어야 만남이 있고, 만남이 있어야 동행이 있고, 동행이 있어야 외롭지 않고 함께 하며 사랑을 나눌 수 있지 않겠는가? 어떤 때는 교차로를 지나면서 생각을 다시 바꾸게도 된다. 내가 왜 상대방에게 너그럽게 양보하지 못했던가?
크리스마스 시즌에 십자가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 똑바로 생긴 십자가이든, 예수님의 제자 안드레아가 순교한 X자형 이든 십자가의 교차점은 우리가 보는 관점을 바뀌게 해 준다. 희생을 통한 사랑을 생각하게 해주며 적대감에서 긍휼을, 절망에서 희망을, 슬픔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게 하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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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식 내과의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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