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을 놓아버린 텅빈 나무의 밑둥이 도드라져 보인다. 한겹씩 마음을 비우고 초연히 겨울로 떠난 그 나무 곁에 서서 겨울 바람을 온 몸으로 맞는다. 속도 모르는 바람이 자꾸만 등을 떠민다. 칼로 벤 듯 지나가 버린 가을을 따라 그동안 보이지 않던 세상이 열렸다. 비탈에 선 나무들이 빈 손을 뻗어 허공에 수묵화 한 점을 그리고, 더 멀리 시선이 머무는 곳에는 숨기고 싶었던 일상의 소품들이 마치 영화의 세트장처럼 놓여있다. 보여지는 것 들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주고 싶을 만큼 정겹고, 유년시절의 친구처럼 친밀한 느낌마저 든다.
빈 숲이 좋은 것은 그동안 나무에 가려서 볼 수 없었던 숲 너머의 세상이 보여서 만은 아니다. 삶의 더 헐벗은 날을 받아들이며 수도자의 몸처럼 서 있는 나무에게서는 비장함이 묻어 있었다. 마치 징기스칸의 몽고 군인처럼 엄동의 혹한으로 떠나는 여행을 미리 준비하듯 자신의 몸둥이 외에는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버리고도 두려움이 없다. 보이지 않는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과 닿아 있었다. 물은 물길을 따라 흐르고, 산은 능선을 따라 이어졌으며, 길은 또 다른 길로 통하였다. 지나간 것이 보이지 않는것과 마찬가지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가올 것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시작과 끝은 영원한 순환을 이루는 것이리라.
이 눈부신 시간은 비로소 나를 나로 보게 하고 내가 존재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케 했다. 그리하여 나는 나와 또 다른 나 사이에 거리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 거리가 삶의 무게라고 여기게 되었다. 내가 살아야 하는 삶과 살고 싶은 삶의 간극을 성찰하게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추수 감사절을 앞두고 도시는 다시 활기를 띄었다. 백화점 앞 광장에는 큰 크리스 마스 트리가 세워졌고 길 가의 작은 상점들도 리스(Wreath)를 내 걸었다. 우리집 거실에도 아이들이 사다 세워 둔 커다란 크리스마스 나무가 멀뚱이 서서 아내가 장식해 줄 때를 기다리고 있다. 아내는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전구를 달고 장식을 하며 한동안 신나게 움직일 것이다. 내가 사는 작은 동네에도 집집마다 크리스 마스 장식을 시작했다. 해마다 촌스러운 붉고 푸른 전구가 깜박거리던 집은 올해에도 어김없이 오래된 박스를 꺼내 현관 문 앞을 장식할 것이다. 그 집 앞을 지나칠 때 마다 오래전 서울의 어느 대학가 뒷골목의 주점이 생각나 웃었던 기억이 있지만 오히려 도회의 눈부신 트리보다 정겨워서 은근히 기다려 진다.
동네로 들어서는 골목길 오른쪽 세 번 째집에는 지난 해 할아버지를 보내고 홀로 된 그리스 할머니가 산다. 어쩌다 마주칠 때마다 반갑게 먼저 손을 흔들던 할머니는 날이 갈 수록 눈에 띄게 수척해 졌으나 젊은 시절의 한 때를 기품있는 숙녀로 살았으리라고 충분히 짐작될 만큼 그 품위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녀는 그리스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아들을 기다리며 산다. 그 아들을 만나 본 적이 없는 새 이웃들도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4살의 어린 나이 때부터 바이올린을 연주해 이미 인근에서는 유명했고, 중학교때 드럼을 배우기 시작했고 고등학교때 밴드를 만들어 주내 경연대회에서 입상을 했다는 것이며, 고등학교때에는 학생 회장을 했다는 이야기를 그녀로 부터 들었을 터였다. 그녀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이웃들에게 자신이 키우던 화분을 나누어 주곤 했는데 그녀에게 있어서 아들은 영원한 첫사랑이었던것 같다. 언젠가 왜 아들이 있는 그리스로 가지 않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었다. 자신의 아들 곁으로 가면 하늘에 있는 남편이 너무 쓸쓸할 것이라며 차라리 자신이 조금 외로운 것이 마음 편하다고 했다. 다정했던 재혼한 남편과 그리운 아들 사이에서 평생을 살았던 그녀의 쓸쓸함이 느껴져 나까지 마음이 울컥했었다.
나무는 마침내 마지막 잎을 내려 놓았고 장미는 머리를 꺾지 않은 채로 검게 말라가며 그저 지나가는 바람에 그 존재를 알린다. 올 한해도 세상의 온통 미끄러운 길을 지나 여기까지 왔다.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과 부대끼며, 그들처럼 살면서도 그들과는 다른 무늬의 노을을 그려낼 수 있을거라고 믿었었다. 그러나 돌아보면 멀리 보이는 점처럼 작은 기억만 흐릿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해질 무렵부터 하늘은 잿빛이 되었다. 첫 눈이 올거라는 예보가 있었는데 산 너머에 내린다는 눈이 앞산을 아직 넘지 못했는지 변죽만 올린다. 여윈 그녀가 현관에 불을 밝힌다. 화려하지는 않으나 정성스럽게 차려진 추수 감사절 식탁이 눈에 들어왔다. 식탁 한가운데 자리한 촛불이 위태롭게 흔들리며 어둠을 쫓는다. 넘어 가는 노을과 함께 우여곡절의 시간도 겨울로 넘어간다. 그렇게 추수 감사절의 밤이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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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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