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박자박 소웁탐방 - 밀양 삼랑진 낙동강철교와 작원잔도
밀양 삼랑진은 교통의 요충지였다. 이름처럼 세 물길이 모이고 갈라지는 곳이다. 밀양강이 낙동강에 합류하며 Y자 강줄기를 형성하고 주변에 나루터가 즐비했다. 수로뿐만이 아니다. 경부선과 경전선 철로 역시 삼랑진에서 세 가닥으로 연결된다. 길 따라 사람과 물건이 모이고 흩어지는 중간 기착지였다. 삼랑진읍과 김해 생림면 사이, 바다처럼 폭이 넓은 낙동강을 다섯 개의 교량이 가로지르고 있다. 셋은 비교적 최근에 놓인 다리이고, 두 개는 새 길이 놓이면서 쓰임새가 변했다. 편리한 교통은 역설적으로 삼랑진을 스쳐 가는 곳으로 만들었다. 수많은 길이 교차하지만 대개는 머물지 않고 그대로 통과한다. 드넓은 강 풍경이 그래서 쓸쓸하면서도 고즈넉하다.
■영남대로 ‘까치길’, 작원관과 작원잔도
삼랑진이 교통의 요지인 것은 물길 때문만은 아니다. 조선시대 동래와 한양을 잇는 가장 빠른 길, 영남대로도 이곳을 통과한다. 영남대로는 약 380㎞로 현재의 경부고속도로보다 36㎞가량 짧다.
삼랑진읍 동쪽 검세리에 작원관지(鵲院關址)가 있다. 원(院)은 관원들이 묵어 가는 숙소이고, 관(關)은 출입하는 사람과 물건을 검문하는 곳이다. ‘까치 작(鵲)’은 왜 붙었을까.
양산 원동에서 삼랑진으로 이어지는 영남대로는 낙동강 북측 벼랑을 따라 연결된다. 작원잔도라 부른다. 강줄기에서 불끈 치솟은 천태산의 지세가 험해 날짐승만 넘나들 수 있다는 비유로 까치를 끌어왔다. 반가운 소식을 기다리는 마음도 반영된 듯하다.
작원관은 문경의 조령관과 함께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조선시대 2대 관문이었다. 한 사람이 능히 1만 명을 막을 수 있다는 좁은 길목에 세워졌던 관문은 경부선 철도를 놓으며 원래의 자리에서 밀려났고, 1936년 대홍수로 흔적 없이 사라졌다가 1995년 작원잔도가 시작되는 작원마을 입구에 다시 세웠다.
관문 위 언덕에는 임진왜란 희생자를 기리는 위령탑이 우뚝 서 있다. 당시 밀양 부사였던 박진 장군이 300여 명의 병졸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왜적 1만8,000명을 맞아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 중과부적으로 패배한 항전의 현장이다.
작원마을에서 철길 아래 굴다리를 건너면 옛 나루터가 나오고, 철길과 강물 사이로 자전거길이 시원하게 놓여 있다. 작원잔도처럼 강물을 굽어보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좁고 위험한 벼랑 끝 오솔길이 아니라 자동차가 지나도 될 정도로 넓고 평탄하다.
강물 따라 휘어지는 길 중간중간에는 대숲과 버드나무가 터널을 이뤄 재미를 더한다. 이따금 푸르고 잔잔한 수면 위로 소형 고기잡이 어선이 질주한다. 평화롭고 시원한 강 풍경을 즐기며 걷기에 좋지만, 거칠 것 없이 쌩쌩 달리는 자전거를 주의해야 한다.
■옛길과 새 길, 철교가 있는 삼랑진 풍경
삼랑진 하부마을(119 안전센터 뒤에 주차장이 있다)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경상좌도의 영남대로와 연결되는 수운의 요충지로 낙동나루(삼랑진나루)가 있었던 곳이다.
1765년(영조41)에는 삼랑창(후조창)을 설치해 밀양·현풍·창녕·영산·김해·양산 등 인근 여섯 고을에서 거둔 전세와 대동미를 보관했다가 수로를 이용해 한양으로 운송했다고 한다. 한꺼번에 1,000석을 실을 수 있는 조운선 15척을 운영했다니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낙동나루는 경부선과 경전선 철도가 놓이며 조창과 함께 폐쇄됐다. 한적한 마을 골목을 걸으면 일제강점기에 지은 적산가옥이 더러 보인다. 세월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속절없이 낡아 가는 것도 있고, 부지런히 고치고 다듬어 아직도 깔끔한 외관을 유지한 건물도 있다.
제방으로 올라서면 육중한 철교를 중심으로 좌우로 각각 2개의 교량이 낙동강을 가로지르고 있다. 왼쪽에서부터 대구부산고속도로 낙동대교, 58번 국도 삼랑진교, 옛 낙동강철교, 낙동인도교, 새로 놓은 경전선 낙동강철교다.
왕복 4차선 삼랑진교가 놓이면서 낙동인도교(옛 삼랑진교)는 주로 걷는 사람과 자전거가 이용한다. 소형 자동차도 통행은 가능하지만 폭이 좁아 비켜가기가 불편하다. 맞은편에서 오는 차량이 있는지 확인하고 다리에 진입해야 한다.
바로 옆 옛 낙동강철교는 현재 레일바이크로 이용되고 있다. 다리 건너 김해에서 출발해 삼랑진까지 왔다가 되돌아가는 코스다. 삼랑진 쪽으로 드나드는 통로가 없다는 점은 아쉽다.
낙동강철교는 1905년, 1962년, 2009년에 각각 완공된 세 개의 다리를 통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1905년 5월 준공된 다리는 비가 내리면 노반이 물에 잠기는 구조였다. 결국 같은 해 9월 홍수로 침수되는 수난을 겪은 후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거쳤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낙동강인도교다.
레일바이크로 운영되는 옛 낙동강철교의 건설 과정도 순탄치 못했다. 하부 공사는 1938년 시작해 1940년에 마쳤지만, 상부 구조를 완성하기까지는 22년의 세월이 걸렸다. 광복 이후 미국의 원조로 트러스 가설 공사에 착수했지만 한국전쟁으로 마무리하지 못하고 1962년에야 온전한 모습을 갖추게 됐다. 상부 구조물 일부는 전쟁 때 추락한 임진강교 교량의 부재를 인양해 재사용했다고 하니 사연 많은 다리다.
길이 996.6m 다리 상부는 사각기둥을 눕혀 놓은 모양의 철골이 감싸고 있어 단단하면서도 웅장해 보인다. 역시 잔잔한 수면에 비치는 모습이 일품이다. 해질 무렵 붉은 노을이 강물에 비치면 더욱 근사하다.
가장 오른쪽 낙동강철교는 2009년 경전선 복선전철화 사업으로 건설됐다. 마산역까지 운행하는 KTX도 이 선로를 이용한다.
용도를 다한 시설물은 철교만이 아니다. 삼랑진 읍내에서 북측으로 산자락을 돌아가면 ‘트윈터널’이 있다. 1910년 뚫린 경부선 철도의 하행선 터널과 1940년 완공된 상행선 터널을 아우르는 명칭이다. 2004년 바로 옆으로 새 터널이 뚫리면서 두 터널은 역할을 마감하게 된다.
10년 넘게 방치되던 터널은 2017년 관광자원으로 재활용하며 빛을 보게 된다. 길이는 각 500m, 오른쪽 터널로 들어갔다가 반대편 터널로 나오는 구조다. 아치형 터널 내부에 설치한 형형색색의 빛 장식이 환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5~6개 구간으로 구분해 바닷속 모습과 핼러윈 조형물 등을 설치해 사진 찍기 좋도록 꾸몄다. 그러나 화려한 것 외에 이렇다 할 특징이 없다는 점은 아쉽다.
밀양은 대추를 특산물로 홍보하고, 삼랑진은 국내에서 최초로 딸기를 상업 재배한 시배지라 자랑한다. 삼랑진에서 그나마 관광객이 몰리는 곳이니 대추와 딸기로 다른 지역과 차별화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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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글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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