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 청사 [로이터=사진제공]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3일 자산매입 축소(테이퍼링) 시작을 선언하며 통화정책 정상화에 시동을 걸었다.
지난해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후 다시 시작한 양적완화 조치를 서서히 줄여나가겠다는 것이다.
예상보다 빠른 미 경제 회복과 그 과정에서 나타난 인플레이션 부담이 연준 결정의 주된 배경으로 꼽힌다.
이번 공급발 인플레이션은 테이퍼링을 넘어 금리 인상까지 앞당기는 기폭제가 될 수도 있어 시장의 시선은 벌써 연준의 다음 스텝을 향하고 있다.
◇ 코로나발 양적완화에서 테이퍼링까지…'비정상의 정상화'
'점점 가늘어지다'란 뜻의 테이퍼링은 연준이 자산매입의 규모를 점진적으로 축소해나가는 조치를 가리킨다.
지난 2013년 5월 벤 버냉키 당시 연준 의장이 양적완화 정책의 출구전략으로 이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양적완화란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이미 '제로' 수준으로 낮춘 상태에서 추가 경기부양을 위해 채권 등 금융자산을 직접 사들여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일종의 비상수단이다.
장기 금리를 낮은 수준으로 억제함으로써 가계와 기업의 경제활동 활성화를 유도하겠다는 것이 이 정책의 취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3차에 걸친 양적완화를 단행했던 연준은 작년 3월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금융시장 대혼란에 '제로 금리'와 양적완화를 거의 동시에 시행하는 초강수를 뒀다.
대유행 직후 '무제한 양적완화'까지 선언했던 연준은 작년 중반 이후 매달 800억 달러 상당의 미 국채와 400억 달러 상당의 주택저당증권(MBS)을 사들여 월 1천200억 달러를 꾸준히 시장에 풀고 있다.
그 결과 연준의 대차대조표는 역대 최대인 8조5천억 달러로 부풀어오른 상태다.
연준이 제로 금리도 모자라 직접 자산을 대량 매입하는 것은 사실 정상적인 통화정책으로 볼 수는 없다.
따라서 이날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자산매입 규모를 월 150억 달러씩 줄여나가기로 결정한 것은 통화정책의 정상화를 향한 첫 걸음으로 받아들여진다.
◇ 물가·부동산 과열에 브레이크 건 연준
연준이 초완화적 통화정책에 브레이크를 밟은 것은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지난해 1∼2분기 곤두박질쳤던 미 경제는 이후 5개 분기 연속 '플러스 성장'으로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테이퍼링을 위한 세부 전제조건도 이미 충족됐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장기 평균 2%의 물가상승률과 최대고용이라는 최종 목표를 향한 '상당한 추가 진전'을 확인해야 양적완화 축소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게 연준의 입장이었는데, 물가와 고용 모두 회복세가 빠르다.
특히 목표치의 두 배를 넘어선 물가상승률이 연준의 결단을 압박한 것으로 보인다. 연준이 주로 참고하는 물가지표인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는 지난 9월 전년 동월보다 4.4% 올라 30년 만의 최대폭 급등을 기록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던 연준은 최근 들어 공급망 차질에서 비롯된 전방위적인 물가 급등세가 '예상보다 더 길고 강할 것'이라며 궤도 수정에 나섰다.
반도체 수급난으로 인한 자동차 가격 급등은 물론 원자재, 인력, 에너지, 물류 등 공급망 전체에서 연쇄적인 비용 상승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7월 두 달 연속 100만 개 가까이 급증한 일자리 시장은 이후 두 달간 델타 변이 탓에 위축됐으나, 가을 들어 바이러스 확산세가 수그러들면서 다시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이날 민간 고용정보업체 오토매틱데이터프로세싱(ADP)이 발표한 10월 민간 부문 고용은 전월보다 57만1천 건 증가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 39만5천 건을 크게 웃돌았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자산 가격도 연준에 큰 부담이 된 것으로 보인다.
양적완화는 필연적으로 자산 가격 상승을 수반하기 마련이지만, 코로나19 이후 '교외 넓은 집'을 원하는 이사 수요의 쏠림 현상까지 겹쳐 집값을 지나치게 끌어올린 것이 테이퍼링 옹호론에 불을 지폈다.
최근 연준의 일부 '매파'(통화긴축 선호)들은 MBS 직접 매입이 부동산 시장에 상승 압력을 가한 것으로 보고 MBS부터 테이퍼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이미 테이퍼링 소화한 시장…'금리인상의 시간'도 올까 촉각
기본적으로 테이퍼링은 통화정책 기조의 중대 변곡점이지만, 시장에 상당 부분 선반영된 소재라는 점에서 그 자체로는 파장이 크지 않을 수 있다.
연준이 8년 전 긴축발작(테이퍼 탠트럼)을 반면교사로 삼아 이번에는 조심스럽게 수위를 높여가며 여러 번 분명한 신호를 보낸 덕분에 이미 시장이 테이퍼링 이슈를 충분히 소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 9월 주춤했던 뉴욕증시는 테이퍼링 예정 시점이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연일 신고점을 경신 중이고, 과거 긴축발작의 주요 피해자였던 신흥국 금융시장의 변동성도 크지 않았다.
이에 투자자들은 테이퍼링 발표보다는 FOMC 성명과 제롬 파월 의장 기자회견의 행간에서 인플레이션과 금리 전망에 관한 힌트를 읽는 데 훨씬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연준은 이날 FOMC 성명에서 "공급과 수요 불균형이 일부 부문에서 상당한 물가 상승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면서도 "백신 진전과 공급 제약 완화가 경제활동과 고용의 지속적인 증가, 그리고 물가상승률 축소를 도울 것으로 기대된다"고 언급, 인플레이션 압력이 '일시적'일 가능성에 여전히 무게를 실었다.
그러나 시장은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이 금리 결정에 상방 압력을 가할 것이라는 데 베팅하는 분위기다.
전날 발표된 CNBC 방송의 전문가 대상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44%가 내년 7월 연준이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예상했다. 테이퍼링이 끝난 뒤 거의 곧바로 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미 연방기금(FF) 금리선물시장은 내년 6월 첫 금리 인상 가능성을 58%, 12월 두 번째 인상 가능성을 73%로 각각 반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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