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화요일자 교육섹션에 김성식의 ‘미국 들여다보기’ 시리즈를 게재한다. 이 시리즈는 미국에 이민 와 살면서 알게 된 미국의 시시콜콜한 것들로 그래도 알고 있으면 미국 생활이 풍성해지는 내용들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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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렸을 때부터 봐온 세계지도는 태평양이 지도의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나라가 지도의 중앙 부근에 있고, 미국이 있는 미주대륙은 오른편인 태평양 건너에 있었다. 그리고 왼쪽 저 멀리에 유럽 대륙이 있고 그 아래쪽에 아프리카 대륙이 있었다. 태평양을 가운데 두고 아시아 대륙과 미주대륙이 세계의 두 축을 이루고 있고, 유럽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이 변방이 되는 이 지도가 어린 시절에 지구의 여러 나라를 이해하는 기본 그림이었다.
그 어린 시절에 이 지도를 보면서 궁금해 했다. ‘유럽은 서(西)쪽에 있으니까 서양(西洋)이지만, 미국은 우리 동(東)쪽에 있는데 왜 서양(西洋)이지? 동(東)쪽에 있으니까 동양(東洋)이어야 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가 한참 세월이 지난 후 어느 날 태평양이 아니라 대서양이 가운데에 있는 세계지도를 만났다. 그 지도를 처음 본 순간에 든 생각은 ‘아니 이게 뭐야... 세상에 무슨 이런 지도가 다 있어?…' 하는 것이었다. 대서양이 가운데 있는 지도는 너무나도 낯설었다.
그때 알았다. ‘다르게 보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 자기 자신의 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것을, 누구나 자신을 세계의 중심에 두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대서양을 가운데에 둔 이 지도에 의하면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이 세상의 중심에 선다. 왼쪽에 있는 미국, 멕시코 등 미주대륙에 있는 국가들이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이웃처럼 가깝게 자리하고 있다. 반대로 아시아는 세계의 변방이다. 우리는 정말이지 머나먼 곳에 있다. 이 지도를 보면서 우리나라가 근동, 중동을 너머 극동(the Far East) 지방에 속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지도에서 우리는 동(東)쪽에 있으니까 동양(東洋)이 되고 유럽과 미주 대륙은 서(西)쪽에 있으므로 서양(西洋)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 미국에 살면서 보게 되는 세계지도는 당연히 대서양을 중심으로 한 것이다. 이 지도를 보면 영국에서 미국으로 오는 것이 아주 먼 것만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태평양을 중심으로 한 지도에서는 왼쪽 끝에 있는 영국과 오른쪽 끝에 있는 미국은 너무도 먼 나라가 된다. 거듭 얘기하거니와 사람들은 그들의 방식대로 세계지도를 그린다. 각자가 생각하는 대로 세상을 그린다.
어린 시절인 1960년대에는 우리나라에서 이륙해서 중간 급유 없이 미국까지 한 번에 날아갈 수 있는 비행기 수준이 아니었다. 가는 중간에 급유를 위해 잠시 들러야 하는 경유지가 있어야 했다. 지금의 비행기로는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 정도는 직항편으로 운행된다. 즉 우리나라에서 이륙한 후 착륙은 미국에서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중간 경유지가 있는 항공편이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비용 절감을 위해 고객과 항공사가 선택하는 것이지 중간 급유를 위한 것은 아니다.
중간 급유지가 필요했던 그 시절에 미국 가는 비행기가 알래스카의 앵커리지에 내렸다가 간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몹시 이상했다. 내가 들여다보는 세계지도를 보면 태평양의 하와이를 거쳐서 미국으로 가는 게 더 빠른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북쪽의 알래스카를 갔다가 다시 남쪽으로 기수를 돌린다는 것이다. ‘아니 왜 위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길을 택하는 거지? 하와이를 거쳐서 가는 것보다 훨씬 더 멀리 돌아가는 것 아닌가?’하고 생각했다.
나중에 지구본을 직접 보고 나서야 왜 하와이가 아니라 알래스카를 경유하는지 알게 되었다. 2차원인 종이지도가 아닌 3차원인 지구본을 들여다보면 알래스카를 지나가는 게 하와이를 거치는 것보다 훨씬 짧은 미국행 항로라는 것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그 후로는 종이에 그려진 세계지도보다는 지구의 본래 모습에 더 가까운 지구본에 의존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입체인 둥근 공 모양 지구의 겉모양을 2차원의 종이라는 편평한 곳에 그려내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고등학교 시절에 배웠다. 그러면서 지도에는 어쩔 수 없이 왜곡이라는 것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게 되어서 세계지도를 볼 때에는 종이지도가 갖는 왜곡현상을 항상 감안하게 되었다.
지구본을 대할 때면 자주 떠올리는 오래된 농담이 있다. 아다시피 지구의 자전축은 약 23.5도 기울어져 있어서 지구본도 그만큼 기울어져 있다. 장학사가 어느 초등학교를 방문했는데 선생님 책상 위에 지구본이 있는 것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앞에 있는 학생에게 물었다.
“얘, 이게 왜 기울어져 있는지 아니?” 그 어린이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대답했다. “제가 그런 거 아니에요…” 기가 막힌 장학사가 곁에 있는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이게 왜 기울어져 있는지 아시지요?” 선생님께서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 이거요, 사 올 때부터 원래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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