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서울시 종로구, 창덕궁과 창경궁의 남쪽에 조선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神位)를 모신 종묘(宗廟)가 있다. 토지와 곡식의 신을 모신 사직과 함께 종묘사직은 나라를 뜻했다. 조선 시대, 경복궁을 가운데로 하여 동쪽에는 종묘를, 서쪽에는 사직을 두어 왕실 제사를 올림으로 통치의 권위를 확고하게 했다. 현재 매년 5월 첫째 일요일 종묘에서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이 거행된다.
종묘제례악은 조선 왕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역대 왕과 왕비에게 올리는 가장 큰 규모의 제사인 종묘제례 행사에 사용하는 기악, 노래, 무용을 총칭하는데, 조선 시대 종묘제례는 연간 다섯 차례 행해졌다. 종묘제례악은 세종이 지은 곡으로 역대 왕의 공덕을 칭송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원래 궁중에서 대신들이 모인 예식에서 연주된 음악과 무용이었으나 세조 대에 종묘제례악으로 채택되며 제례용으로 처음 연주되었다. 종묘제례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각 11곡으로 구성된 보태평과 정대업이 순서에 따라 연주되고 곡이 연주되는 동시에 노래를 부르며 무용수들이 열을 지어 춤을 춘다.
종묘제례는 ‘영신, 전폐, 진찬, 초헌, 아헌, 종헌, 음복, 철변두, 송신 망료’의 의식으로 신을 영접한 후 술잔을 올리며 즐겁게 맞이하고 다시 신을 보내주는 의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때 댓돌 위 상월대와 댓돌 아래 묘정에 제례악을 연주하는 악대가 편성된다. 댓돌 위에는 당상악인 등가가 편성되고 묘정에는 당하악인 헌가가 편성되며 등가와 헌가 사이에 일무가 위치한다. 64명의 무용수가 8명씩 8열로 왕의 팔일무를 추는데 문덕을 찬양하는 문무(文舞)를 보태평에 맞추어, 무공을 찬양하는 무무(武舞)를 정대업의 음악에 맞추어 춤춘다. 이 문무와 무무를 통틀어 일무(佾舞)라고 한다. 여기에서 등가는 하늘을 상징하고 헌가는 땅을 상징하며 일무는 사람을 상징하는데 천, 지, 인, 삼재 사상을 음악을 통해 나타내고자 하였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사람의 일이 일어나기에 일무를 당상악과 당하악 사이에 위치 시켜 천지에 인사를 드리는 것이다. 음악과 노래와 무용은 바로 우주 자체가 된다.
무용수들이 일무를 출 때 문덕과 무공을 상징하는 도구를 양손에 잡고 춤을 추는데 문무를 출 때는 약과 적을, 무무를 출 때는 간과 척을 사용하였다. 왼손에는 대나무로 만든 관악기인 약을 잡고 오른손에는 꿩 꼬리 3개를 5척 장대에 꽂아 그 끝단에 용의 머리를 새겨 도금한 적을 잡고 문무를 춘다. 약과 적은 평화를 상징한다. 무무를 출 때 왼손에 잡는 방패 모양의 간은 생명을 아끼는 뜻을 지니며 오른손에 잡는 도끼 모양의 무구 척은 업신여김을 방어하는 뜻을 지닌다. 이렇듯 상징적인 뜻을 내포한 무구처럼 일무는 단순하고 절제된 동작에서도 상징성을 지닌다. 손에 잡은 무구의 방향을 달리하여 방위를 다르게 움직이며 몸을 천천히 움직이는데 아주 느린 동작은 물론 정지 상태조차도 의미를 지닌다.
종묘제례악은 현재 총 15개의 악기로 편성이 되는데 쇠, 돌, 가죽, 바가지, 대나무, 흙, 나무, 돌의 우주에서 생산되는 소리를 낼 수 있는 여덟 개의 재료를 사용하여 만든 악기를 사용하여 제사를 올린다. 악대의 방향, 악기의 특성과 빛깔, 그리고 쓰임까지 모두 유교적 상징을 띠며 시대에 따라 악기의 구성과 종류, 개수가 달랐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방대하던 악기 편성이 지금의 15종으로 축소되었다.
세종은 살아생전 우리의 음악을 듣다가 죽은 후 중국의 음악을 제례 음악으로 들어야 하는 것에 대해 한탄했다. 세종의 이러한 노력은 세조 대에 이르러 악, 가, 무가 완벽히 갖춰진 종묘제례악으로 쓰일 수 있었는데 궁중음악에서 외래 요소들을 극복하고 민족적인 기틀을 확립해 나간다는 점에서 종묘제례악은 그 의미를 더한다. 세종은 백성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고 그 사랑이 후대에 영원히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보태평과 정대업 22곡에 담았다.
“운수에 응하시어 태평을 이루시고, 지극한 사랑으로 만백성을 기르시며, 우리의 후대를 여러주고 도우시매, 억만 대까지 영원히 이어가고 이어가리.” – 보태평 첫 번째 곡 희문중에서.
이러한 세종의 간절한 마음을 담은 종묘제례악은, 광복을 거치며 약 25년동안 연주가 중단되었으나 1971년부터 다시 해마다 종묘에서 공연하며 현재까지 전해진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 전날 밤, 야간 출입이 금지된 종묘에서 처음으로 야간에 종묘제례악을
행하며 의식을 올리기도 했으며, 30년이 지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올림픽 성공의 염원을 담아 대규모의 종묘제례악을 거행했다. 종묘제례악은 1999년 국립국악원의 시도로 극장 예술로 재탄생했고 이후 해외의 여러 극장에서 선보이며 느림과 절제의 미학을 알리기도 했다.
조선의 기악 연주와 노래, 춤이 한데 어우러진 궁중음악의 정수로 우리의 문화적 전통이 잘 나타난 무형문화재 1호, 종묘제례악은 그 우수성과 독창성을 인정받아 2001년 유네스코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되었고, 2008년 유네스코 인류 무형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되었다. 600년이 넘는 세월을 거치며 오래되고 소중한 가치마저 지금까지 완벽한 형태로 남아있는 종묘제례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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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화영 (가야금 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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