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덧 가을이다. 선선한 가을은 독서의 계절, 음악 듣기에도 좋은 계절이다. 지난 한 주는 한동안 듣지 않던 브람스의 교향곡들을 들으면서 지냈다. 음악은 대체로 가슴으로 들어야 제 맛이지만 브람스의 음악만큼 가슴으로 들어야 제 맛인 음악도 없는 것 같다. 좋긴 좋은데 왜 좋은지 잘 모르는 애착이 정말 좋아하는 것이듯 브람스의 음악만큼 어딘지 훈훈하고 흐뭇한 여운으로 남는 음악도 없는 것 같다. 예전에는 브람스를 들으면서 감동이란 으레 이런것이려니 하고만 생각했는데 세월이 흐를수록 감동의 격이 다른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마치 사이다(탄산 음료)처럼 쌈박한 맛을 남기는 음악이 있는가 하면 뇌를 때리는 듯한 격정적인 음악이 있고 브람스의 음악처럼 문학작품을 읽는 듯한 깊은 여운을 남기는 음악이 있다. 그래서 브람스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말 수가 없고 어딘가 (시적) 비밀을 간직한 듯한 느낌이 전해오는지 모르지만 오랜만에 브람스의 음악들을 듣고 있자니 예전에 음악 감상실에서 브람스의 음악을 틀어주던 디제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종로에 있던 르네상스 감상실의 디제이는 아마도 브람스 팬이었던 듯 싶었다. 명동 필하모니에서는 거의 브람스를 틀어주지 않았는데 신청자가 없었는지 디제이의 성향이 달라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르네상스에서만 브람스의 곡들을 들을 수 있었고 브람스의 곡을 신청하면 한 두 시간 안에 꼭꼭 틀어주곤 했었다. 아하 그렇다면, 디제이의 성향을 파악하고 나니 그 다음 (신청)곡도 자동으로 떠올랐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 역시 한 두 시간 안에 즉각 반응이 왔다. 마치 지드의 ‘좁은 문’을 읽듯 소박한 감성으로 가을녘 창가에 사뿐히 내려앉곤 하던 브람스의 음악… 장미처럼 강렬한 아름다움은 없지만 가을 국화처럼 (詩 한 귀절) 머언 젊음의 뒤안길에서/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역경의 삶 속에서 예지에 찬 시로 감동을 주었던 베토벤의 음악… 그리고 브람스의 음악이 없었다면 아마도 음악을 좋아했다고 해도 그 여정은 무척이나 삭막했을지도 모른다.
서구 음악과 오래 사귀다 보면 두 명의 독특한 인물관계와 맞닥트리게 된다. 서로 반대는 아니면서도 서로 다르며, 마치 스승과 제자의 관계인 것처럼 보이면서도 전혀 다른, 그러면서도 청출어람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브람스와 베토벤의 관계이다. 브람스는 선배 작곡가 베토벤을 존경했지만 그렇다고 베토벤과 닮은 음악은 쓸 수는 없었다. 뿌리는 베토벤에 기초하되 베토벤과 다른 음악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아닌 고민을 했던 존재가 바로 브람스였다. 차이코프스키나 리스트, 바그너, 베를리오즈 등 동시대의 음악가들은 브람스와 같은 고민이 없었다. 리스트는 그저 교향시를 만들면 됐고 바그너는 베토벤이 하지 않은 오페라 분야에 열을 올리면 그뿐이었다. 베를리오즈는 표제음악, 차이코프스키는 러시아적인 선율을 교향곡 오선지에 옮기면 그만이었다. 브람스도 브람스만의 음악을 하면 그뿐이었을텐데 왜 쓸데없는 고민을 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베토벤의 음악이 자신이 만들고자 했던 음악을 대신해버렸다는 생각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딘가 내면적이면서도 어둡고 투박하며 강렬한 음악. 브람스의 음악도 어둡고 내성적이며 투박했다. 브람스는 이미 슈만 등의 극찬으로 그 음악적 재능은 인정받았지만 그 능력을 확실히 보여줄 이렇다할 열매는 아직 없었다. 브람스는 자신의 능력에 한계를 느끼고 그 절망이 극대화됐을 때 교향곡 1번을 세상에 내놓았다. 브람스 나이 43세. 착상에서 완성되기까지는 무려 21년의 세월이 흘렸다. 이미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지만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이야말로 그 세월과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았던, 브람스 최대의 열매 중의 하나였다. 아니 어쩌면 인류 역사상 독일의 3B 중의 하나 브람스라는 인물을 세계에 알리는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작품이 교향곡 1번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브람스 vs 베토벤’이란 구도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던 서구 음악사에서도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기도 했다. 이 작품의 초연을 들은 (지휘자) 한스 본 뵐로는 드디어 베토벤의 교향곡 10번이 탄생했다고 감격해 마지 아니했지만 그렇다고해서 이 작품이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을 의식한 작품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선율미는 매우 간단했다. 베토벤의 교향곡 5번의 요소가 엿보이는데 문제는 브람스만의 수법으로 해체, 병합했고 브람스만의 수법으로 감동을 이끌어냈다는 데 있었다. 베토벤은 교향곡 5번을 남기면서 ‘운명이 이처럼 문을 두드렸다’는 코멘트를 남겼지만 브람스는 ‘거인의 발자국 소리를 등 뒤에서 들으며’라는 코멘트를 남겼다고 한다. 거인은 베토벤을 뜻하는 것으로서 브람스가 얼마나 커다란 두려움과 경외감으로 베토벤을 의식하고 있었는가를 말하는 것으로서, 이 무서운 존재는 브람스를 죽이기도 했고 또 살리기도 했다. 사실 베토벤이 있었기에 브람스가 존재할 수 있었고 또 인류 음악사의 지평을 넓힌 브람스의 예술이 탄생할 수 있었다. 외부적인 고난, 풍파, 고독이 영양분으로 작용한 베토벤의 작품이 다소 어둡고 투박했다면 브람스 음악에는 베토벤에 없는 따스함이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추억하듯 그리고 다정히 속삭이듯… 그러면서도 굵고 강직한 빗줄기… 이는 베토벤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또 베토벤을 잊게하는, 참 다르면서도 어딘가 닮은 ‘브람스 vs 베토벤’… 축복스런 인류 음악사의 양면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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