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박자박 소웁탐방 - 문경 마성면 진남교반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중국의 대표 작가이자 사상가인 루쉰(1881~1936)의 소설 '고향'의 한 대목이다.
길이라는 한 글자에는 무수한 시간과 공간이 교차한다. 사람이나 자동차가 지나갈 수 있게 땅 위에 낸 물리적 공간이라는 기본적인 의미 외에, 개인적인 삶이나 사회·역사적 사건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는 과정도 길이다. 지향하는 방향이나 지침, 자격이나 신분에 주어진 도리 역시 길로 표현된다. 무수한 사람들이 희망을 찾아 길을 나선다. 고생길을 벗어나 모두가 성공의 길에 이르면 좋겠지만, 더러는 길을 잃고 방황하고, 다시 살길을 모색한다. 문경 마성면 진남교반은 토끼 길부터 고속도로까지 대한민국 길의 역사가 축약된 곳이다. 오래전부터 경북 8경에서 으뜸으로 꼽히는,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자 영남과 충청을 잇는 가장 빠른 길목이기도 하다.
■언제부터인지도 모를 반질반질 ‘토끼비리’
교반은 ‘다리 근처’라는 뜻이다. 진남교반 길 탐방은 3번 국도 진남2교 북단 진남휴게소에서 시작한다. 주차장에서 고모산성으로 오르다 중간쯤에 ‘토끼비리’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비리’는 벼루의 방언이다. 단순한 절벽이 아니라 강가나 바닷가에 있는 벼랑을 일컫는다. 토끼비리는 토끼 한 마리 지나갈 만한 강 절벽을 따라 난 길이다.
바로 아래에 산자락을 휘감으며 S자 모양으로 영강이 흐른다. 속리산 자락에서 발원해 문경을 거쳐 상주에서 낙동강과 합류하는 물길이다. 진남교반은 영강이 문경새재에서 내려오는 조령천과 합류하는 지점이다.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대로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 문경새재로 들어서는 관문인 셈이다.
길의 유래는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오른다. 태조 왕건이 견훤과 전투를 벌이기 위해 남하하다가 이곳에 이르렀는데 길이 막혔다. 마침 토끼 한 마리가 벼랑을 따라 달아났다. 쫓아가 보니 길을 낼 만한 지형이어서 벼랑을 잘라 길을 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전하는 토천(兎遷), 즉 토끼비리의 유래다.
산비탈을 따라 이어지는 토끼비리는 약 2km, 그중 500m가량은 탐방객이 걸을 수 있게 정비돼 있다. 추락 위험이 있는 곳에는 목재 계단을 설치하고, 돌부리가 채이는 땅은 순탄하게 다졌다.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조치지만 아쉬움도 있다. 몇몇 지점은 아예 옛길 옆으로 계단을 설치했다. 사람이 다녀야 길이 된다는 상식에서 벗어난다. 무수한 발길로 다져진 그 길이 언젠가는 박물관의 유물처럼 취급되지 않을까 싶다.
길 중간에 관갑잔도(串岬棧道)라는 한시 안내판이 있다. ‘요새는 함곡관처럼 웅장하고, 험한 길 촉도같이 기이하네. 넘어지는 것은 빨리 가기 때문이요, 기어가니 늦는다고 꾸짖지나 말게나.’ 조선 초기의 문신 어변갑(1380~1434)이 토끼비리의 험난함을 읊은 시다.
문화재위원을 지낸 고 최영준 고려대 명예교수는 토끼비리를 건설하는 데 세 가지 공법이 이용됐다고 했다. 1구간은 급한 암벽을 깎아내 노면을 평탄하게 다지고, 토석의 유실을 방지하기 위해 약 3m 높이의 축대를 쌓았다. 2구간은 가장 가파른 곳으로 석회암과 역암을 절단한 흔적이 뚜렷하다. 급히 좁아지는 지점에 축대를 쌓아 폭을 넓히거나 가장자리에 말뚝을 박고 그 위에 나무 난간을 설치했다. 3구간은 산줄기가 뻗은 고갯마루에 암맥이 돌출해 있는데, 이 부분의 바위를 깨 암석안부(巖石鞍部)를 만들었다. 말 안장 모양의 이 안부는 영남대로상에서 가장 크고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고 한다.
영남대로는 조선시대에 부산(동래)과 서울(한양)을 잇는 간선도로다. 이렇게 좁은 길이 대로의 일부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당시로는 기술적 한계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오늘의 기준으로 보면 예술성과 창의성을 가미한 자연친화적인 길이다.
■진남교반 여러 길이 한눈에, 고모산성
토끼비리는 바로 석현성과 고모산성으로 이어진다. 두 산성은 이름만 구분돼 있을 뿐 실제는 하나로 연결돼 있다. 석현성은 조선 중기 이후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진남문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연결된 성곽의 길이가 385m에 불과한 작은 성이다. 성곽의 기초와 몸체 일부가 남아 있는 것을 근래에 복원했다. 정확한 본래의 형태를 알기 어려워 여장(女墻ㆍ성곽 위에 낮게 쌓은 담)은 비슷한 시기에 축조된 북한산성과 문경관문을 참고했다고 한다.
석현성 안 옛길에는 주막과 성황당이 자리 잡고 있다. 1797년에 지었다는 성황당 주변에 수령 300~400년에 이르는 느티나무가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문경 영순면 낙동강변에서 옮겨 온 주막은 ‘영순주막’이라는 본래 이름 대신 ‘돌고개주막’이 됐다. 돌고개는 석현을 한글로 풀어 쓴 명칭이다. 고갯마루 부근에 있던 여러 채의 주막은 한국전쟁 때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청을 묻힌 꿀떡을 파는 가게도 있어 꿀떡고개로도 불린다. 성의 정문 격인 진남문에 오르면 맞은편 의룡산 능선이 수려하게 펼쳐진다.
진남문에서 북측으로 이어지는 고모산성은 5세기경 신라가 북진하면서 축조한 산성이다. 성곽 아래에는 6~7세기 신라시대 고분군도 남아 있다. 충주로 넘어가는 길목인 문경은 힘과 힘이 충돌하는 곳이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백제·신라가 접전을 벌였고, 고려시대에는 견훤과 왕건이 치열한 전투를 치른 곳이었다. 임진왜란 때는 지역 의병이 왜군과 맞선 현장이었지만 당시 고모산성이 어떻게 이용됐는지에 관한 기록은 없다고 한다. 다만 구한말 문경 출신 의병장 이강년(1858~1908)이 1896년 600명의 의병을 이끌고 이곳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일본군과 관군에 맞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지만 결국 패하고 말았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가은읍 ‘운강이강년기념관’에 그의 항일 의병 공적을 전시하고 있다. 한국전쟁 때는 남북이 치열하게 교전을 벌인 곳이었으니, 고모산성 자체가 전란의 역사나 다름없다.
둘은 3번 국도 교량이고, 또 다른 둘은 옛 국도 교량이었다가 마을 길로 활용되고 있다. 나머지 두 교량 중 하나는 신작로로 불리던 길의 일부였고, 지금은 관광객을 위한 도보 다리로 이용되고 있다. 바로 아래에 위치한 교량은 문경과 가은을 연결하는 옛 철길이었다. 강 왼편 산자락에 토끼비리가 숨어 있고, 산성 아래로 중부내륙고속도로가 관통하고 있으니 진남교반은 고대에서 현대까지 대한민국 길의 역사가 고스란히 응축된 길 박물관이나 마찬가지다.
고모산성 북측에서 강 건너편으로 보이는 봉생마을 언덕에는 봉생정이라는 아담한 정자가 있다. 진남교반 상류 물굽이와 그 안쪽에 자리 잡은 솔밭 캠핑장이 그림처럼 조망된다. 고모산성 전망에 비하면 한결 차분하고 정돈된 풍광이다. 봉생정은 서애 류성룡이 한양을 오갈 때 쉬어가던 장소를 기리기 위해 선조 16년(1583) 향토 유림들이 세웠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말았는데, 순조 4년(1804) 여섯 문중에서 다시 복원했다. 2005년 중수해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현판은 구한말의 명필 김성근이 썼다고 한다.
토끼비리와 고모산성을 모두 둘러보는 데는 두어 시간이면 충분하다. 산성이나 벼랑길이나 힘든 구간이 거의 없지만, 그래도 여름이라 한낮에는 부담스럽다. 이럴 땐 고모산성 바로 아래 ‘문경오미자터널’에서 더위를 식힐 수 있다. 항상 20도 안짝의 온도를 유지하고 있으니 천연 피서지나 마찬가지다. 1990년대 문경의 마지막 탄광인 ‘은성탄광’이 문을 닫으면서 버려진 540m 철로 터널을 지역 특산물인 오미자를 주제로 꾸몄다. 다양한 장식 조명이 불을 밝히고 있고, 와인바도 운영하고 있다. 인근 옛 진남역은 철로자전거 출발점으로 이용되고 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가은선 철로를 활용한 레저 시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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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글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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