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RV를 장만해서 여생에 미국 방방곡곡을 유람하며 사는 게 꿈이라던 또래 지인이 있었다. 그가 꿈을 이뤘는지 알 수 없지만 당시엔 그의 말이 내 귀에 솔깃했다. 나도 RV를 렌트해서라도 미국 땅을 연차계획을 세워 섭렵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나 때가 지났다. 일손을 놓은 지 오래지만 계획에 전혀 진전이 없다. 은퇴가 늦었던 탓인지 가슴이 떨리지 않고 다리가 떨리기 때문이다.
꿈을 접고 있다가 지난주 시애틀타임스 기사를 읽고 마음이 다시 싱숭생숭해졌다. 허구한 날 운전하며 RV 캠핑장을 찾아가느라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지 않고 안락하게 유람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특히 다리가 더 떨리기 전에 미국은 물론 지구촌 구석구석을, 내 집에서처럼 밥 해 먹어가며, 돌아다닐 수 있다. 물론 RV여행보다 경비가 훨씬 많이 들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시애틀의 마이클 캠벨(75)과 부인 데비 캠벨(65)은 각자 생업에서 은퇴한 후 지난 8년간 전세계 85개국을 유람하며 270여개 ‘에어비엔비(Airbnb: 휴가용 임대주택)’에서 살아왔다. 시애틀 생활비로 외국에서 살 수 있는 은퇴방법을 궁리해온 캠벨부부에겐 그게 안성맞춤이었다. 반년간의 시험여행에 크게 만족하자 이들 부부는 집과 자동차를 팔아치운 후 본격적으로 에어비엔비 순례에 나섰다.
에어비엔비는 침실과 부엌만 아니라 집을 통째 빌릴 수도 있으므로 호텔에서 하룻밤 묵는 뜨내기 여행자들과 달리 마치 현지주민처럼 한 곳에 장기간 눌러 살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캠벨부부는 말했다. 경비를 줄이려고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며 외국생활을 체험했고, 부인은 문화예술 분야, 남편은 유명선수들이 벌이는 축구, 테니스 등 국제경기 관람에 스케줄을 많이 할애했단다.
캠벨부인은 동네 마켓에서 장을 봐 음식을 직접 해먹었다며 270개 에어비엔비를 전전하면서 오만가지 부엌을 섭렵했다고 자랑했다. 생전 못 써본 고급 주방기구도, 용도가 아리송한 솥도 구경했고, 르완다에선 마당에 있던 닭이 부엌을 제집처럼 들락거렸다고 했다. 의외로 칼도마가 없는 집이 많았고, 에어비엔비의 가재도구가 약속이라도 한 듯 이케아(IKEA) 제품 일색인 것도 신기하다고 했다.
자칭 ‘노인 방랑자’인 캠벨부부는 언어 때문에 낭패한 적이 없다며 ‘excuse me’ ’thank you’ 등에 해당하는 현지어만 미리 익혔다고 귀띔했다. 어느 나라든지 영어를 이해하는 젊은이들이 있게 마련이라며 먼 길을 걸어서 약방까지 안내해준 청년도, ATM에서 현찰인출을 도와준 여인도 있었단다. 모든 나라 사람들이 대부분 친절하지만 8년간 소매치기도 두 차례 당했다고 이들은 털어놨다.
에어비엔비는 2008년 브라이언 체스키, 조 게비아, 네이슨 블레차지크 등 궁색한 동창생 룸메이트 3명이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종래의 민박집 B&B(Bed & Breakfast)를 흉내 내 샌프란시스코의 자기들 집 거실에 공기 매트리스를 깔아놓고 ‘Airbed&Breakfast.com’을 개설한 데서 비롯됐다. 이 플랫폼을 통해 방을 빌려줄 사람과 투숙객을 연결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대박 비즈니스가 탄생했다.
반년여 만에 회원업소가 2,500여개로 우후죽순처럼 불어나고 고객도 1만여명으로 폭증하자 이들은 다음해 상호를 ‘Airbnb‘로 줄였다. 2011년엔 런던, 베를린, 함부르크에 사무실을 열어 시장을 세계로 확대했다. 이어 2012년 파리, 밀란, 바르셀로나, 코펜하겐. 모스크바, 상파울루에 진출했고 다음해 서울을 비롯해 싱가포르, 태국, 인도네시아, 일본 등에도 지사를 열어 아시아를 중점 공략했다.
호텔처럼 건물이나 대규모 고용이 필요 없는 에어비엔비는 창업 8년만에 세계 191개국 3만4,000여 곳에 200여만개의 숙박공간을 굴릴 정도로 성장했다. 지금까지 누적 고객수가 8,000만명을 넘어섰다. 매 2초마다 한건 씩 부킹이 이뤄진다. 요즘엔 단독주택뿐 아니라 아파트, 캠핑카, 요트, 섬, 성채 등도 다룬다.
건강만 받쳐주면 지구촌 에어비엔비를 전전하다가 죽고 싶다는 시애틀의 캠벨부부가 부럽지만 솔직히 켕긴다. 집 팔아 비용을 댄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더 늦기 전에 연간 한달씩만이라도 RV유람을 떠나는 것이 장땡일 듯 한데 주야장천 운전할 일이 겁난다. 매사가 이 모양이니 코앞에 닥친 올여름 마지막 노동절 연휴에도 뒷마당 잔디나 깎고 있을 것 같다. 지난 봄 현충일 연휴에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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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전 시애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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