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광할 정도로 무언가를 좋아한 적이 있는가. 어느 것에 푹 빠져 열광하는 것을 흔히 ‘~에 미쳤다’라는 표현을 쓴다. ‘제정신을 잃고 실성하다’라는 좋지 않은 뜻의 ‘미치다’와 한편으로 일맥상통한다. 제정신을 잃을 만큼 무언가에 빠져있으니 말이다.
여기에 한국음악에 제대로 미친 명인이 있고 2012년 우리는 그 명인을 잃었다. 가야금 즉흥연주의 명인 백인영 선생이다. 1945년 전남 목포 출생의 그는 1968년 즉흥연주로 유명했던 유대봉 선생을 만나 즉흥연주를 배웠고 86년 유대봉의 가야금 산조를 처음으로 선보이며 연주자로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고(故) 백인영 선생이 말하는 유대봉류 가야금 산조는 배울 때마다, 그리고 어제와 오늘 가락이 달라 배우기 힘들었지만, 즉흥성이 좋았다고 한다. 백인영 선생은 가락을 정리해 또박또박 타며 전수하는 여느 연주자와는 달리 흘러나오는 대로 즉흥적으로 연주했다. 그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그를 미쳤다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그 살아있음이 산조 본연의 미이기에 선생은 자신의 공연 제목을 미친 산조(美親散調)라 직접 칭하기도 했다. 무대에서 보여주는 선생의 연주처럼 그의 해학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한국 민속 음악을 대표하는 산조는 북이나 장구의 반주로 함께하는 기악 독주곡으로 예술성은 극에 달한다. 산조는 19세기 무렵에 만들어진 것으로 탄탄한 예술성에 비해 비교적 그 역사는 짧다. 오늘날 전해지는 산조의 시초는 최고의 명인으로 알려진 김창조(1856~1919년)가 조선 고종 때 처음으로 창제한 가야금 산조이다. 전라도를 비롯하여 충청도, 경기 남부의 민속악 연주자들이 주로 연주하던 것으로 김창조가 산조의 틀을 잡기 이전부터 시나위나 무속음악의 한 형식으로 유사 산조가 존재했다. 김창조는 1890년부터 1895년 사이에 판소리 가락을 도입하여 느린 장단에서 시작하여 점차 빨라지는 장단인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장단을 큰 틀로 산조의 기반을 확립했다. 흩어진 가락(散調)이라는 뜻처럼 조성을 달리하여 적절히 배열하고 한 조성에서 다른 조성으로 자연스럽고도 끊임없이 변해가는 가락이야말로 산조가 가진 뛰어난 예술성을 잘 표현한다. 진양조, 중모리와 같은 느린 장단에서는 농현으로 음을 세분하며 깊은 소리를 표현하고 자진모리와 휘모리의 빠른 장단에서는 당김음과 변형 박자를 사용하여 끊임없이 리듬을 변형시키는 등 고도의 기교로서 긴장과 이완을 반복한다. 이렇듯 가락과 장단을 마음껏 희롱하는 듯한 산조는 19세기 대중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 민간에서 전승된 음악인 산조는 악보 없이 구전으로 전수되었는데 즉흥 음악인 시나위에서 파생한 만큼 연주자는 때에 따라 즉흥적인 가락을 삽입하곤 하였다. 같은 가락의 산조가 연주자에 따라 달리 연주되는 것은 물론 한 연주자도 그때그때 가락을 달리했다. 산조의 악보는 1980년대에 비로소 서양의 오선보를 통해 채보되었는데 덕분에 많은 류의 산조가 기록된 장점은 있으나 예전과 같이 때에 따라 가락을 달리하여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연주자는 더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국악은 고상하기만 하거나 대접받아야만 하는 예술은 아니다. 궁중음악이나 지식층에서 사랑받던 단정한 음악 또한 존재하지만, 서민계층에서 연주되던 민속 음악 또한 결코 그 예술성이 궁중음악에 뒤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한국음악의 예술성이 폄하되고 이후 활발하지 못한 국악 교육으로 인하여 언제부터인가 음악을 말함에 있어 서양음악이 우선시 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에 잘못된 인식으로 바닥에 떨어진 전통음악의 품격을 높이고자 많은 이들이 노력하였으나 이런 노력의 폐해의 일종으로 현대는 산조나 시나위와 같은 민속 음악에조차 지나치게 격식을 요구하기도 한다.
백인영의 산조는 현대에 자리잡힌 격식과 틀을 깬다. 그의 무대는 조명과 음향이 멋지게 갖춰져 있고 몇백 석의 객석이 자리하는 무대가 아닌 일순 조선 시대 서민이 열광하는 자리로 변한다. 연주자는 시골의 장터처럼 관객과 격식 없는 대화를 하고 기품있는 산조 공연을 생각했던 관객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즉흥 연주의 달인인 선생의 격식 없는 무대는 절대 가볍지 않다. 흥에 겨운 무대는 심지어 뛰어난 예술성마저 품고 공간을 압도한다. 조선 시대 민간에서 민속악을 연주하며 대중과 호흡하던 당시의 모습을 투영한다.
산조는 연주자가 일생을 걸고 자신만의 산조를 만들며 연주한다. 하지만 백인영 명인과 같이 산조가 가진 즉흥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연주하는 연주자는 드물다. 민속악의 흥과 한을 대변하며 전통의 형식과 틀을 뛰어넘는 듯하지만, 전혀 경박스럽지 않으며 대중과 호흡하고 대화하는 뛰어난 예술성마저 지닌 천재 연주자, 백인영 선생이야말로 오히려 한국 민속악을 바로 이해하고 계승한 것이다. 그의 산조는 어느 순간 미친 산조로 대변된다. 산조에 미치고 민속악에 미치고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예술에 미친다. 관객도 연주자도 한바탕 흥취에 한껏 젖는다. 현대에 자리 잡은 산조의 고정관념을 깨는 선생의 산조는 요즘의 국악 연주자에게도 가히 파격적이라 할 수 있다.
국악이란 무엇일까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산조와 전통에 그리고 예술에 미친 백인영 선생의 아름다운 미친 산조, 경계와 한계가 없는 살아있는 본연의 산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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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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