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인도 마갈타 영축산에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법하던 곳이 있었다. 영축산을 가리켜 영산이라고 하는데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설법한 모임을 영산회라고 하였다. 한국 사찰은 대부분 석가모니불을 봉안하고 설법을 듣는 제자, 국왕과 대신 등의 장면을 묘사한 불화, 영산회상도를 대웅전의 본존 뒷벽에 안치한다. 영산회상의 주인인 석가모니불이 대웅전 영산회상탱화 앞에서 법회에 참여한 모든 이에게 설법하는 것이다. 조선 시대, 불보살의 자비와 거룩한 덕을 찬양한 ‘영산회상불보살(靈山會相佛菩薩)’의 일곱 자의 가사에 곡을 붙이고 노래를 하는데, 이후 오백여 년을 거치며 19세기 말 방대한 기악 합주곡, 영산회상이 마침내 완성된다.
영산회상은 상영산, 중영산, 세영산, 가락덜이, 삼현도드리, 하현도드리, 염불도드리, 타령, 군악의 9곡의 모음곡으로 되어있다. 영산회상은 거문고 1, 가야금 1, 해금 1, 단소 1, 세피리 1, 대금 1, 장구 1로 편성하는 현악영산회상을 말하며 중광지곡(重光之曲-밝은 빛의 음악)으로도 부르며 거문고가 선율의 중심이 된다고 해서 거문고회상이라고도 한다. 이 9곡의 곡에 계면가락도드리, 양청도드리, 우조가락도드리의 3곡을 이어 연주하는 것을 가진회상이라고 한다. 이 외에도 관악기가 중심이 된 일명 표정만방지곡(表正萬方之曲- 올바름을 만방에 드러내는 곡)의 관악영산회상도 있으며, 현악영산회상을 4도 낮게 조 옮김 한 유초신지곡(柳初新之曲)도 있다. 15세기 세조 시대의 음악을 수록하고 있는 대악후보에 따르면 영산회상은 영산회상불보살 일곱 자 가사의 관현악 반주 성악곡으로 상영산 한 곡이었다. 중종 때에 이르러 불교 가사가 수만년사로 바뀌며 세속화되었는데 17세기 후반에 기악곡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고 추측한다.
조선의 궁궐에서는 음력 섣달그믐날 묵은해의 잡귀를 몰아내기 위해 의례를 행하였다. 이를 나례(儺禮)라고 하는데 이 풍습은 고려 정종 6년 무렵부터 행해졌다. 이때 잡귀들에게 두려움을 주어 쫓아내기 위하여 처용의 탈을 쓰고 오색의상을 입은 다섯 명의 무용수가 처용무(處容舞)를 춘다. 나쁜 귀신을 쫓고 경사로운 일을 맞이한다는 벽사진경(辟邪進慶)의 의미로 신라 헌강왕(875 년~886 년)때의 처용 설화에 기반한 춤을 추는데 이때 춤의 반주 음악으로 영산회상을 연주한다. 비단 섣달그믐의 나례뿐만 아니라 영조의 기로소(耆老所–조선시대 연로한 문신들의 친목 및 예우를 위해 설치한 관서)입소를 기념하는 연향에서 술을 올릴 때에도 반주에 맞추어 처용무를 추었다.
조선 시대는 숭유억불(崇儒抑佛)을 국가시책으로 삼았고 태종은 본격적으로 억불정책을 시행하였다. 불교 종파의 강제 통폐합과 사찰 및 승려의 수를 강제로 줄이고 국가적 불교 행사도 폐지했다. 따라서 부처의 성덕을 찬양하는 불교적 의미가 가득한 영산회상 불보살의 노래가 가사 없이 세속화되어 반주만 남아 기악 합주로 전해지는 것은 당시 조선의 정책을 볼 때 당연한 일이었다. 이렇듯 세속화된 영산회상은 조선 후기 선비와 중인 지식층이 발전시켰고 현행 영산회상은 19 세기 후반에 완전히 갖추어져 전승되고 있다.
영산회상은 궁중음악에서 발전한 만큼 간결한 선율에 곧고 바른 기품을 담고 있다. 가장 느린 상영산에서 시작하여 9곡이 연주되는 동안 점차 빨라지는 장단, 서양음악의 아첼레란도(accelerando)와도 같은 형식을 띠는 데 단순히 가속하는 박자가 아닌 원곡인 가장 느린 상영산을 끊임없이 변주한다. 고요히 흘러가는 선율 안에 몰아치는 듯한 역동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선율 또한 담고 있지만, 민속악과는 반대로 절제하며 무심의 경지 안에 절정의 음악을 담아낸다.
한국 전통음악은 그 역사가 참으로 오래되었다. 우리 선조는 초기 기원전부터 우리의 삶과 함께 음악을 발전시켰다. 고고학적 자료에 따르면 신석기 시대 우리 조상들은 노래와 춤을 통하여 그들의 감정을 표현하였는데 단순히 박자와 리듬을 표현하기보다 북과 같은 타악기로 음의 높낮이와 장단을 표현하였고 청동기 시대에 들어서는 각종 동물의 뼈와 가죽, 그리고 청동을 사용하여 피리와 뿔 나팔, 청동방울과 꽹과리와 같은 악기를 만들어 공동생활의 노동요에 동반 악기로서 사용했다. 고구려에서는 가요와 함께 기악이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였는데 고구려 무덤벽화에 나타난 악기만 해도 무려 24종에 달하며 옛 문헌들의 기록에 보이는 악기는 16종이다. 모두 4세기에서 6세기 전후의 벽화에 보이는 악기들인데 이는 당시 세계적으로 맨 먼저 우리만의 새 악기가 창조되고 발전한 나라로서 기악의 발전사를 보여준다. 이렇듯 유구한 역사를 거치며 기악이 발전하고 마침내 조선에서는 영산회상이라는 궁극의 미를 지닌 음악도 탄생한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전통 영산회상의 정적인 미를 단번에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동양의 미와 철학, 그리고 정신이 수백 년에 걸쳐 녹아있는 음악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고대로부터 인류 역사와 함께 노래하고 악기를 만들어 발전시킨 우리 민족에게 음악과 철학의 정신은 이미 스며들어 있을 것이다. 바쁜 현대를 사는 우리를 내재한 아름다움으로 무심과 몰아(沒我)의 경지로 인도하는 영산회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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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화영 (가야금 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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