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국왕이 핫도그를 먹어 보고 더 청했다. 국왕은 맥주도 반주로 마셨다. 또 카메라로 자신을 찍는 이들의 사진을 찍었다.”
6월 11일, 뉴욕주 하이드파크. 오늘 루스벨트 피크닉 파티가 열렸다. 영국 국왕 조지 6세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을 따라 생애 첫 핫도그를 먹었으며, 자신을 찍는 기자들의 영상을 촬영했다.
-뉴욕타임스, 1939년 6월 11일자
1938년,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영국 국왕 조지 6세에게 서한을 보냈다. 국왕 부처가 캐나다를 방문할 거라는 첩보를 입수하고 난 직후였다. 영국 대사였던 조셉 케네디를 통해 보낸 서한은 바로 초대장이었다. 1938년 9월 17일자로 쓰인 초대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방미가 가능하시다면 영미관계 개선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것입니다. 부처께서 하이드파크의 소박한 시골 경험을 좋아하실지도 모를 거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식 일정 없이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1938년 10월 8일, 조지 6세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초대를 수락하며 다음과 같이 썼다.
“말씀하신 바처럼 개인적인 일정이 양국 관계의 증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라는 생각에서 대통령의 초대를 기쁜 마음으로 수락합니다.”
1939년 6월, 영국 국왕 조지 6세 부처가 국빈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했다. 식민지 시절에도 발을 들인 적이 없었으니, 영국 군주로서 최초의 미국 방문이었다. 전쟁이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에 처한 당시 유럽의 분위기는 흉흉했다. 그런 가운데 미국은 외교에서 고립주의 정책을 고수하고 있었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에 휘말리게 된 탓에 영국과의 관계는 좋지 않았고, 반영 정서와 분노가 민심에 팽배했다. 하지만 루스벨트 대통령은 전쟁이 발발한다면 영국을 지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다른 나라도 아닌 영국이 도울 만한 상대라고 민심을 돌리고 납득시킬 수 있을까?
서한을 주고 받는 가운데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미 계획을 세워 놓았다. 영국왕 부처가 미국을 방문하고 자신이 영접하는 것 자체도 중요하지만, 핵심은 긍정적인 이미지 조성이었다. 반영 정서가 팽배한 데다가 대통령제를 실행하는 미국 국민들에게, 영국왕 부처 또한 보통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상을 각인시켜야만 했다. 그러기에 하이드파크에 있는 자신의 사택에서 벌이는 피크닉만큼 좋은 전략이 없었다.
야외 공간에서 벌이는 행사이니만큼 감출 게 비교적 적은 데다가, 음식 또한 실내 만찬보다는 자연스레 소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루스벨트 대통령은 영국왕 부처가 아예 수도인 워싱턴 D.C.를 방문하지 않는 등 공식 일정을 일절 잡지 않을 요량이었다. 하지만 국무부의 반대로 영국왕 부처는 조지 워싱턴의 생가 방문, 무명 용사의 묘(1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의 묘역) 참배 등의 공식 일정도 소화했다. 그리고 드디어 대망의 피크닉이 열렸다.
국왕과 왕비를 위한 작은 핫도그 두 개가 은쟁반에 담겨 나왔다. 프랑크소시지를 먹어 본 적이 없었기에, 왕과 왕비는 핫도그를 보고 당황했다. “어떻게 먹는 것입니까?” 왕비가 묻자 루스벨트 대통령이 가장 미국적일 방법을 알려 주었다. “핫도그를 한 손으로 드시고 다른 손으로 받치셔서 입에 넣고 조금씩 씹어 가면서 삼키시면 됩니다. 완전히 다 드실 때까지요.” 왕비는 포크와 나이프를 고수한 반면, 조지 6세는 루스벨트 대통령이 알려 준 요령을 받아들여 미국인처럼 핫도그를 먹었다.
그래봐야 고작 핫도그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루스벨트 대통령의 전략은 결실을 맺었다. 피크닉이 지나고 고작 석 달 뒤에 영국은 독일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국회를 설득해 영국과 동맹을 맺어 나치 독일의 세계 제패를 막았다. 그런 가운데 핫도그로 미리 다져 놓은 이미지를 통해 어쩌면 남의 나라 전쟁이었던 2차 대전을 향한 민심을 다독이는 데도 성공했다. 미국 고유의 문물이자 서민 음식인 핫도그를 즐겁게 먹는 상황을 통해 영국 국왕 부처에게 서민적인 면이 있음을 각인시킨 덕분이었다. 그렇게 핫도그가 미국의 2차대전 참전에 큰 몫을 하고 난 이후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그 역사대로 흘러갔다.
물론 조지 6세의 일정이 서민 음식 핫도그로만 점철된 것은 절대 아니었다. ‘더 캐나디언 인사이클로피디아’에 의하면, 그의 미국 일정은 캐나다 방문으로부터 주의를 돌리기 위한 일종의 전략이었다. 자필 회람에 의하면 조지 6세는 루스벨트 대통령과 두 차례의 회담을 가졌는데, 첫 번째에는 캐나다의 수상인 맥켄지 킹이 참석했다. 물론 목적은 곧 발발할 제2차 세계대전의 전략 논의였다. 이 자리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국이 이미 밴쿠버섬을 중심으로 해양 방어선을 구축해 놓은 상태에서 캐나다가 별도의 함대를 구축하는 건 예산의 낭비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핫도그의 유래
핫도그의 원형은 독일 프랑크프루트의 소시지 ‘프랑크프루터(frankfurter)’이다. 돼지고기와 쇠고기를 섞어서 만든 이 소시지의 역사는 1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미국에서 핫도그라는 음식으로 정착한 기원에 대해서는 대략 세 가지 설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1880년대 미국 중서부 미주리주의 세인트루이스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다. 프랑크프루트 이민자인 포이스트방어가 길거리에서 빵 없이 소시지를 팔았는데, 손을 보호하라고 내준 장갑을 손님들이 돌려주지 않아 손해가 생기자 아내가 빵을 대안으로 제시했다고 한다.
두 번째 설 또한 같은 성(포이스트방어)의 다른 인물이 장갑 대신 빵을 썼다는 내용인데, 시대와 배경은 좀 다르다. 1893년(시카고) 혹은 1904년(세인트루이스)의 박람회에서 소시지를 팔았는데, 역시 나눠 준 장갑을 손님들이 기념품으로 가져가 결국 빵으로 대체했다는 이야기이다. 마지막 설은 오늘날 핫도그의 발원지 대접을 받는 뉴욕주의 코니아일랜드와 관련이 있다. 파이 장수인 찰스 펠트먼이 수레에 소시지를 삶는 화로와 빵을 채워 가지고 다니면서 판 음식이 오늘날의 핫도그가 됐다는 이야기이다. 참고로 소시지는 이미 1880년대부터 ‘도그’라고 불렸는데, 당시 쇠고기나 돼지고기 외에도 개고기로 소시지를 만들었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미국 지역별 핫도그의 유형
①뉴욕: 미국 어느 지역보다 핫도그를 많이 먹는데, 단순함이 미덕이다. 빵과 소시지의 기본 조합에 알싸한 머스터드를 끼얹고 신맛 두드러지는 사우어크라우트(독일식 발효 양배추 절임)나 토마토 페이스트에 볶은 양파를 올린다.
②시카고: 뉴욕 다음으로 유명한 시카고의 핫도그는 토핑을 다양하고 푸짐하게 얹기로 유명하다. 토마토, 오이, 매운 고추 피클, 단 양파 다진 것, 렐리시(오이피클 잼)까지 다섯 가지가 기본이다.
③애틀랜타: 남부의 중심 도시인 애틀랜타에서는 프라이드치킨 같은 소울푸드에 곁들이는 코울슬로(coleslaw)를 핫도그에 얹는다. 우리도 치킨 프랜차이즈에서 사먹을 수 있는 바로 그 코울슬로는 채쳐 절인 양배추를 마요네즈에 버무려서 만든다.
④디트로이트: 추운 동네이다 보니 디트로이트의 핫도그는 푸근함을 강조한다. 빵과 소시지의 기본 조합에 다진 양파를 얹고 쇠고기 칠리(토마토 스튜의 일종)를 끼얹은 뒤 곱게 채친 체다치즈로 마무리한다.
⑤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에서는 일반적으로 베이컨을 말아 구운 소시지로 핫도그를 만든다. 미국 서부 제일의 미식도시인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이 기본 조합에 토마토, 양상추 등을 얹은 ‘BLT(Bacon Lettuce Tomato, 베이컨 양상추 토마토) 도그’를 먹는다.
⑥투산과 피닉스: 애리조나의 주요 도시 투산과 피닉스에서는 멕시코의 영향을 받은 핫도그를 먹는다. 캘리포니아처럼 베이컨을 말아 구운 소시지와 빵의 기본 조합에 핀토콩(얼룩덜룩한 강낭콩의 일종), 양파, 머스터드, 마요네즈, 다진 토마토, 할라페뇨 고추를 얹는다.
⑦밀워키: 미국 치즈의 메카인 위스콘신주의 밀워키에서는 결이 조금 다른 핫도그를 먹는다. 폭신한 빵에 부드러운 소시지를 얹는 게 아니라, 더 딱딱한 하드롤에 이탈리아식 소시지를 올린 핫도그이다. 케첩은 바르지 않는 대신 버터나 알싸한 머스터드를 끼얹고 사우어크라우트로 마무리한다.
⑧뉴어크: 이탈리아계가 깊이 뿌리내린 뉴저지주, 특히 뉴어크 같은 맨해튼 인접 지역에서는 이탈리아식 핫도그를 즐겨 먹는다. 미국식 핫도그빵이 아닌 이탈리아식 롤빵에 볶은 파프리카, 양파, 감자튀김 등을 얹는다.
⑨댈러스: 우리가 핫도그라 일컫는 음식이 미국에서는 ‘콘도그(Corn Dog)’이다. 소시지를 꼬챙이에 수직으로 끼운 뒤 질척한 발효 반죽을 입혀 튀기는 음식 말이다. 옥수숫가루 반죽을 입힌 데다가 튀겨낸 모양새가 옥수수와 닮았다고 해서 그렇게 이름 붙었다. 정확한 기원은 많은 음식이 그렇듯 논란거리이지만 1930, 1940년대에 텍사스주 박람회에 등장해 자리 잡았다는 설이 있다. 따라서 주 박람회가 열린 댈러스의 핫도그는 콘도그이다.
<
이용재 음식 평론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