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환, 넌 벌써 이 세상 사람들 90%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어. 수학을 전공한 액츄어리(보험계리인 Actuary)들이나 알아야할 복잡한 수식까지 이해하려들 필요는 없어.”
완벽히 준비되지 않았으면 남을 가르치거나 부모가 되겠다거나 하는 일에 선뜻 나서지 않던 경향이 있는 내가 어떤 부분을 꼬치꼬치 캐물었을 때 그가 해준 말이었다. 맞다. 수영을 완벽히 배운 다음에야 풀장에 들어가겠다고 해서는 영원히 수영을 배울 수 없는 것처럼 지나친 완벽만을 추구하다 날 샐 수는 없는 일이다.
줌 화면 저편으로부터 쩌렁쩌렁하게 들려오는 힘찬 목소리의 주인공은 지난 20여년간 산호세 지역본부의 총괄대표로 일하다 은퇴한 뒤 지금은 에이전시 오너들 교육 컨설팅을 담당하고 있는 나의 사부, 7순의 데이브 영감님이시다. 내가 부족한 영어실력으로 이미 배웠던 걸 묻고 또 물으면 가끔 역정도 내시지만 결코 밉지 않은 분이다.
지난번의 비즈니스, 워컴, 주택보험에 이어 오늘은 생명보험에 관한 교육이다. 파머스 유니버시티에서의 혹독한 5주 교육을 마쳤지만 배움엔 끝이 없다. 다양한 편의성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유니버설 라이프’가 캐시 밸류의 축적이 없는 기한부 상품 ‘텀 라이프’보다 보험료가 높을 수밖에 없는 영속성 생명보험 시장에서 거의 70%를 점유하고 있다며 그가 해준 거의 1시간 동안의 일대일 줌 트레이닝을 마칠 무렵 내 얼굴에는 슬며시 철없는 미소가 번져나갔다. 42세에 이민 와 근 20년을 미국에 살면서 나름 전문분야라 할 수 있는 보험 에이전시의 오너가 되고 또 상품 전반에 대해 미국인 컨설턴트에게 1시간의 줌 트레이닝을 영어로 수강하고 대화하며 질문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에 대한 뿌듯함 때문이었다.
내가 철없다 한 것은 내용을 알아듣기만 하면 마치 수입이 저절로 생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잠시 착각했기 때문이다.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 알아들어 흡족하다는 자기만족 레벨에서 벗어나 실제로 누군가에게 서비스를 팔았을 때에야 비로소 의미가 생기는 것이다.
실력 있는 주방장의 입맛 소문을 듣고 삼삼오오 찾아간 식객들이 긴 줄 서기를 마다하지 않는 유명 냉면집도 아닐진대 내 상품이나 서비스를 사려고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는 사람들에게 부탁하던, 신문이나 인터넷을 통해 불특정 대중에게 광고를 하던 그 무엇인가를 파는 행위는 기실 모든 경제행위의 근간이 되는 것임에도 한국인들에게는 오랜 세월 ‘사농공상’이라며 상공업을 천시하던 풍조가 있어 남에게 무언가를 부탁하거나 파는 것에 대해 겸연쩍어 하는 DNA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잘 아는 지인에게조차 괜히 헛기침을 하고 나서야 말을 꺼낼 수가 있고, 말하는 동안에도 식은땀도 가끔 흘리며 얼굴도 좀 붉어지는 것이다. 바로 거절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런 심리적 장벽을 극복하는 방법이라면 세상의 거의 모든 이가 세상에 그 무언가를 팔면서 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며 스스로 담대해지는 것이다. 즉, 그들처럼 나도 파는 것뿐이니 거절당하더라도 멋 적어지지 말고 무거운 기분을 가상의 마음속 칠판지우개로 싹 지운 뒤 다른 사람을 노크하면 되는 것이다. 에루화, 병가지상사!
나의 본업인 부동산 중개업은 15년간의 산전수전 노하우가 쌓여 큰 맥을 짚어가며 시간관리를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 반면, 경기와 사업운에 따라 부침이 심해 머릿속 공상으로 보내는 시간도 많은 편이었다. 거기서 축적된 경험을, 역시 10여년전 합격했지만 매 2년마다 500불씩이나 갱신 수수료를 내면서도 장롱 속에만 고이 모셔뒀던 보험 라이센스와 접목해 활용하느라 나는 요즈음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다. 생소한 분야였던 비즈니스, 워컴, 자동차, 주택은 물론이고 라이프 등 보험업계 전반에서 활약하고 있는 유능한 전문인들과 생생한 현장경험을 서로 나누며 교류하다보니, 이 세상은 정말 내가 모르는 분야가 너무 많다는 사실 앞에 겸손하게 된다.
넓어진 시야로 보니 이 세상 부동산이 아닌 것이 없고, 보험이 관여되지 않은 곳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민 비행기에서 막 내려 무엇을 할지 아직 방향을 정하지 못한 분들이 있다면 고민하느라 시간만 허송하지 말고 보험/재정 분야에 한번 과감히 뛰어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짧은 영어가 분명 걱정일 텐데 바로 지금부터 시작하면 더딜지언정 영어는 분명히 조금씩 조금씩 속살을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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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환 실리콘밸리 부동산업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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