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한 대한남아들은 총에 일종의 향수를 느낀다. 자칭 특등사수들이다. 지금은 ‘방아쇠 수지증’에 걸린 나도 이미 반세기 전 논산훈련소에서 구식 M-1 장총과 칼빈 소총의 방아쇠를 가슴 두근거리며 당겼었다. 헌병(군사경찰)이었던 덕분에 권총도 휴대해봤다. 한국인보다 사격경험 비율이 높은 외국 국민은 아마 없을 터이다(북한 제외). ‘총과 말과 카우보이’의 나라인 미국도 한국엔 족탈불급이다.
하지만 국민의 총기소지 비율에선 한국이 미국에 어림 반푼도 없다. 2018년 한 집계에 따르면 미국 민간인들이 소지한 총기는 3억9,300여만 정으로 추정됐다. 100명당 120.5 정 꼴로 한 사람이 한 개 이상 보유했다거나, 미국인 전체 가구 중 42%가 총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2020년 통계도 있다. 한국은 5,000만 인구 중 권총 등 소형총기를 보유한 사람이 2019년 고작 3,042명으로 공식 집계됐다.
최근 서울의 한 술집에서 만취한 청년이 벽에 걸린 다트 과녁에 권총을 쏴보겠다며 난동부리다가 출동한 무장형사들에게 제압당했다. 한국에선 총격 여부와 관계없이 총을 휴대한 사람이 나타났다는 것 자체가 큰 사건이다. 조사결과 그는 총기소지 허가증이 있지만 문제의 권총이 불법 조립된 소위 ‘유령 총’으로 그가 인터넷을 통해 구매한 사실이 밝혀져 총포·도검·화약류 단속법 위반혐의로 입건됐다.
맛있는 음식을 보면 먹고 싶듯이 총을 갖고 있으면 쏴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세계인구의 5%도 안 되는 미국인들이 전 세계 개인보유 소총의 45%를 점유하고 있으니 탈이 안 날 수 없다. 2012년 말 코네티컷 주의 샌디 훅 초등학교에서 어린이 20명과 성인 6명의 목숨을 앗아간 총격사건이 발생한 이후 작년까지 무려 2,500여건의 대량 살상사건이 일어났다. 평균 매일 한 건 꼴이다.
살상자가 4명 이상인 경우를 지칭하는 대량총격 사건이 비일비재하지만 그로 인한 사망자 수는 전체 총격사건 사망자의 2%도 채 안 된다. 금년 들어 지금까지 총격사건으로 사망한 미국인은 총 1만3,056명이다. 이중 대량살상 희생자는 167명에 불과했다. 자살자가 7,326명으로 가장 많았고 살인사건 희생자가 5,730명으로 뒤를 이었다. 요즘 말썽을 빚는 경찰관 총격 피살자도 19명으로 집계됐다.
안 그래도 교통사고만큼이나 흔한 총격사건이 코비드-19 팬데믹 상황에서 더 늘어났다. 장기 ‘집콕’에 염증을 일으킨 사람들의 총질장난 때문이다. 지난 15일 인디애나폴리스의 페덱스 창고 주차장에서 19세 정신질환 청년의 무차별 총격으로 8명이 숨졌다. 최근엔 ‘트럼프 표’ 아시안 혐오 세태가 유행하며 지난달 애틀랜타에서 한인여성 4명을 포함한 아시아인 8명이 표적총격을 받고 목숨을 잃었다.
강도가 가정집에 침입해 주인을 살해하는 사건이 많지만 침입하던 강도가 집주인 총에 맞아 황천길로 가기도 한다. 가정폭력 피해 여성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남편의 총격을 받기 일쑤다. 그래서 경찰도 수틀리면 총부터 쏘고 본다. 과잉진압이 늘어나는 이유다. 3살 꼬마가 권총을 오발시켜 5살 형이 죽었고, 차 안에서 코흘리개 아들의 오발사고로 아버지가 비명횡사하는 가정비극도 있었다.
한국이라면 “총기판매 금지”를 외치는 시위대가 광화문광장을 촛불이나 태극기로 뒤덮을 터이다. 미국에서도 그런 여론이 비등하지만 대형 총격사건 직후 반짝할 뿐이다. 신성불가침 같은 제2 수정헌법(개인의 총기소지권리 보장)과 전국총기협회(NRA)의 영향력이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그에 더해 미국인들 사이에 팽배한 ‘내호남살’(내 총은 호신용, 남의 총은 살상용) 작태도 극복해야할 벽이다.
미국인들은 10만명 당 3.96명이 총에 맞아 죽는다. 서부 개척시대의 무법천지로 되돌아가는 듯하다. 한국에선 그 비율이 200분의 1(10만명 당 0.02명)이다. 권총에 맞아 죽기보다 김정은의 핵폭탄에 맞아 죽을 확률이 더 커 보인다. 한국 경제가 발전할수록 떨어지기 마련인 재미동포의 시세가 목숨 위험 때문에 더 떨어질 모양이다. 그래도 미국이민 희망자가 역이민 재미동포보다 많다는 게 희한하다.
임진왜란 때 활을 들고 싸운 우리 조상들은 생소한 철포를 쏴대는 왜군에 연전연패했다. 새도 맞힌대서 ‘조총’(鳥銃)으로 불린 이 철포에 충무공 이순신도 전사했다. 철포(鐵砲)는 일본발음으로 ‘뎃포’다. 풍차에 달려드는 돈키호테식의 엉뚱한 행동거지를 일컫는 ‘무대뽀’(無鐵砲)라는 말이 뎃포에서 생겨났다. 요즘 무차별 총격범들이 무서운 것은 최신식 뎃포를 가지고 무대뽀로 발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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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전 시애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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