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미국대선 투표가 끝났다. 미국 시민권이 있는 독자들은 대부분 대통령 선거와 더불어 연방과 주 상·하원의원, 살고 있는 지역구의 판사 후보에게도 투표했을 것이다. 특히 뉴욕주의 경우 투표지 첫 장을 가득 채운 판사 후보자들 중 소수계 출신, 그 중에서도 아시안은 몇 명 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챈 독자도 더러 있었을 것이다. 가까운 예로 한인 주요 밀집지역인 뉴욕시 퀸즈에선 이번 투표를 통해 13명의 판사를 뽑는데 당선이 확실시되는 민주당 출신 후보 중 아시안계는 레이 쳉(Leigh Cheng) 후보 단 1명 뿐이었다.
올해 5월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으로 불거진 전국적인 항의시위를 계기로 이런 인종차별 문제의 심각성을 체감한 재닛 디피오리(Janet DiFiore) 뉴욕주 대법원장은 오바마 대통령 시절 국토안보부장관을 지낸 ‘제 존슨(Jeh Johnson)’ 변호사에게 뉴욕주 법원내의 인종간 편차문제에 대해 조사를 의뢰했다.
10.15. 발표된 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평등과 공정을 기치로 진보주의의 선봉장이라 일컫는 뉴욕주 법원에서조차 구조적 인종차별이 만연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존슨 변호사는 뉴욕주 법조인 위주로 세칭 ‘평등한 정의(Equal Justice)’ T/F를 조직, 약 4개월 간 뉴욕의 판·검사, 변호사 협회, 법원 청원경찰 단체, 각종 시민연대 등과의 인터뷰 및 자료 조사 등을 토대로 103쪽 분량의 보고서를 만들었는데 한마디로 현재 뉴욕주 법원은 소송당사자를 비롯 법원공무원까지 직·간접적으로 소수계로서의 인종차별을 당하는 ‘악습 문화(culture of toxicity)’가 심각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우선 인적 구성이 인구비례 대비 판사를 비롯한 법원 공무원들 중 백인 비중이 월등히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즉 뉴욕주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백인 비율은 55.3%에 불과한데 판사는 75.7%, 법원 공무원은 62.7%가 백인인 것으로 집계됐다.
백인이 31.7%로 오히려 소수계에 속하는 뉴욕시만 따로 떼놓고 봐도 판사는58.1%, 법원 청원경찰은 52.7%가 백인인 것으로 보고됐다.
이에 비해 뉴욕주 인구의 15.7%를 차지하는 흑인 판사 비율은 14.2%, 인구 17.7%의 히스패닉계 판사는 7.1%, 더 나아가 아시안계는 인구 8.5%에 판사는 2.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백인 편중현상은 인사권 행사 등 법원내 중요 결정을 내리는 고위직으로 올라갈수록 더 심각한 것으로 드러나 무려 백인의 비율이 4분의 3에 육박하였다.
존슨 변호사는 이 같은 인종적 불균형으로는 사법부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공정성을 기대하기 어렵고, 아울러 가정법원, 형사, 주택법원 등에서 소수계 가족정서나 문화, 경제적 상황 등의 고려 없이 백인식 사회적 잣대를 무차별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조언했다.
또 영어를 못하는 소송당사자는 통역 때문에 재판시간이 길어지는 것이 당연한데도 이를 문제 삼아 재판장과 청원경찰이 통역사(interpreter)를 ‘방해자(interrupter)’라고 비꼰 사례 등을 소개하며 소수계를 위한 제도적 법원 서비스의 미비와 이에 대한 백인 공무원들의 봉사정신과 이해심 부족도 개선점으로 지적했다.
소수계 검사와 변호사, 법원공무원들도 마찬가지로 인종차별로 인한 불이익을 당하는 것으로 드러났는데 쉬운 예로 소수계 변호사들은 법원출입 시 백인 청원경찰로부터 불필요한 신분증 제시를 요구 받는다고 응답했다.
또 백인 청원경찰이 유색인종 동료 경찰을 ‘착한 원숭이’라고 부른다든지 “사격시험의 타겟이 (경찰의 총을 맞고 사망한 흑인) ‘션 벨’의 사진이었으면 자신의 성적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한 사례 등도 지적을 받았다. 무엇보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이런 악습을 보고해도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디피오리 대법원장은 이 보고서 발표 이후 앞으로 더 공정하고 투명한 법원을 만들 것을 약속했다. 법원이 앞에 나서 개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소수계의 목소리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하려면 소수계 유권자들이 앞으로 있을 판사 선거에서 적극적으로 참정권을 행사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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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락/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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