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친구가 작업중인 시를 읽어 주었다. 산책길에서 도토리가 아닌 나뭇잎을 물고 있는 다람쥐를 만났다. ‘너도 식성이 달라진거야? 팬데믹에 지속적인 산불에 비정상이 정상이 되어 있는 세상에 너마저?’하고 묻는다. 다람쥐는 시인의 마음을 알았다는 듯 빤히 쳐다본다. 시인은 그제서야 다람쥐의 뺨이 통통한 것을 알아차리고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랍니다”라고 다람쥐가 말 해 준 것 같다.
다람쥐 입속의 보이지 않는 도토리와 입 밖에 보이는 나무잎과의 연결은 쉽게 유추할 수 있지만 세상일에서 보여지는 것과 보여지지 않는 것과의 연결은 그렇게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보이는 현상 뒤의 보이지 않는 원인을 찾으려 늘 애쓴다. 그런데 그러한 능력이 거세된 사람들이 꽤 많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팬데믹 현상의 연결선을 트럼프는 보지 못하거나 부인한다. 그 결과로 자신의 통치하에 있는 수백만 국민을 바이러스로 사망하게 하고 자신도 걸렸다. 미디어는 트럼프의 감염이 ‘옥토버 서프라이즈’라고 한다. 왜 그것이 ‘서프라이즈’인가? 그의 팬데믹 대응 태도로 이것은 예견할 수 있었다.
팬데믹 재앙의 중심에서 보균자로서 수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선거유세를 하겠다는 그의 행동을 ‘살인적인 근무태만 (suicidal neglegent)’, ‘격리병동 백악관’ 이라는 미디어의 표현에 공감이 가게 한다. 그의 행동은 한국의 ‘신천지 교회’ 교주 같고 미국에서는 사교집단 ‘피플스 템플’의 교주 짐 존스 같다. 짐 존스는 아프리카의 가이아나에 수천명 신도들을 이주시켜 사이나이드 독약 쿨에이드를 마시게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이산화탄소와 기후변화와의 연관성을 보지 못하는 정당이 있다. 세상에서 유일한 기후부인정당 미국의 공화당이다. 미국의 기후부인주의는 아이러니하게도 엑슨모빌이 자체내 과학자들의 “화석연료가 기후변화를 가져온다”라는 보고서가 나오자마자이다. 해마다 6천5백억불의 정부보조금을 받는 화석연료산업은 즉각 ‘의심을 파는 상인(Merchant of Doubt)’ 들과 어용과학자를 고용하고 그럴듯한 연구소를 설립하여 기후변화와 화석연료 사이의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대중이 의심하도록 하는데 지난 40년동안 막대한 돈을 뿌려왔다.
물론 정치권을 움직일수 있는 로비 활동으로 공화당의 모든 의원들의 정치자금의 기반이 되었다. 앨 고어, 존 케리, 오바마로 이어지는 기후변화 대응책의 노력이 정책적으로 입안되는 것에 번번히 실패를 맞은 이유다. 오히려 기후변화는 ‘입에 담아야 하지 못 할 말(Dirty Word)’ 로 정치화 되어 버렸다. 당연히 이들은 기후학자들을 공격했고 기후학자들은 환경운동가가 되어 그들과 싸워야 했다. 그러면서 탄소배출양은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다.
미국싱크탱크의 연구원인 데이비드 웰즈의 저서 ‘2050 거주불능 지구’에서는 지구의 온도가 8도 상승할 2100년의 세상 모습을 그린다. 해수면이 60미터까지 상승하여 바다는 세계의 주요 도시 3분의 2를 덮어 버린다. 따라서 식물을 생산할 수 있는 토지가 거의 없다.
캘리포니아의 산불같은 화염 폭풍이 세계의 숲을 휘젓고 이로 인해 더 강력해지는 허리케인은 해안을 강타한다. 전염병이 빈틈없이 곳곳을 채우면서 북상해 북극의 일부까지 올라온다. 열기가 너무 강해서 사람이 살 수 있는 지역이 3분의 1밖에 남지 않는다. “그때에도 인생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오늘날 우리로서 참을 수 없는 강도의 가뭄과 폭염에 견뎌야 할 것이다.”
이 무시무시한 과학적 예측을 기후학자들은 말하지 못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는 연구 결과대로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대중을 낙담시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마저 사라지게 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다른 하나는 기후 부인주의 세력들과 투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논문에 나타난 결과들이 조금이라도 과장되었거나 잘못된 계측을 할 경우 빌미를 잡히게 되고 자신의 가족들까지도 위험에 놓이게 된다.
다람쥐가 나뭇잎을 물고 있다고 해서 우리는 다람쥐가 나뭇잎을 먹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눈에 보이는 세계는 우리의 감각능력 한계 밖에 있는 미시세계와 거시세계에 지배된다. 한 나라의 지도자와 입법부가 바른 정책을 펴기 위해서 과학의 말을 들어야 함은 당연하다.
그 연결고리를 보지 못하는 무능력과 알면서도 부인하는 부도덕성이 바로 수백만의 소중한 인명을 바이러스로 사망하게 하고 인류세라는 멸종시대를 만들어 왔다.
너무 늦지 않았느냐고? 이것 한가지는 분명하다. 결국은 인간의 행동에 달려 있다는 것. 바이러스도 기후변화도 과학이 설명하고 길을 제안하기는 하지만 이것들은 인간 통제 밖의 시스템이 아니라 인간 행동 시스템 안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
인류세라는 말은 인간의 행동이 멸종시대를 초래함을 뜻한다. 이것은 또한 인간의 행동이 인류세를 멈출 수도 있음을 뜻한다. 늦지 않았느냐고 묻기 보다는 지금 당장 행동해야 한다. 지구가 불에 타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는가? 묻기 보다는 물을 한 바가지라도 더 가지고 와서 불을 꺼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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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 / 기후 전문가, 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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