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는 전혀 모르는 사람, A와 B가 마주하고 있다. 이때 제 삼의 인물이 $100짜리 지폐 한 장을 커피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제안을 한다. A와 B가 그 $100을 나누어 갖되, A는 $100을 나누는 비율을 정하고 B는 그걸 수용할 것인지 거절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역할을 제각기 받었다. 단, B의 승인이 전제되어야 비로소 배분은 가능하다. 따라서 A는 B가 수용할 수 있는 배분 금액을 적정선에서 제안하는 것이 심리적 관건이었다. 그렇다면 이 간단한 심리테스트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A와 B가 공평하게 $50불씩 나눠갖게 되면 좋겠지만 그 배분비율을 제안하는 A가 일면식도 없는 B에게 그래야할 아무런 담보가 없다. 오히려 슬며시 욕심이 드는 것은 아니 보아도 뻔한 일이다. 실험 결과 B 역할을 맡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몫이 $30 이하로 내려가면 거부권을 행사함으로 자신의 손해를 무릅쓰고라도 부당한 A를 응징하려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배분비율이야 어쨋든 제안을 일단 받아들여야 이익이지만 실험에 참가한 80%의 B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러면 왜 사람들은 자신이 손해를 보면서도 이런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것일까….
이번에는 두 원숭이가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행동을 볼 수 있도록 울안에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각각의 울안에 준비해둔 돌멩이를 갖고 오도록 주문을 하고 그렇게 하면 보상을 주게된다. 실험이 진행되고 우선 돌멩이를 잘 갖고온 A원숭이에게는 보상으로 오이를 주었고 그리고 나서 나중에 임무수행을 한 B 원숭이에게는 포도를 주었다. 그러니까 똑같은 일에 보상을 그들이 보는 앞에서 달리한 것이었다. 그러자 처음에는 오이를 받고 만족했던 A원숭이가 포도를 받는 장면을 보고는 몹시 화를 냈다.
다시 돌멩이를 갖고 오라 주문하자 포도를 기대한 A 원숭이가 분을 삭히며 임무를 수행한다. 하지만 그 보상으로 다시 오이를 주자 그 오이를 막바로 사람에게 던져버렸다. 그리고 B원숭이가 다시 임무를 마치자 전과 같이 포도를 주었다. 이에 A원숭이는 소리를 지르고 울을 흔들면서 마구잡이로 소란을 폈다. 세번째 시도로 A원숭이에게 다시 돌을 갖고오라고 주문했다. 그런데 나중에는 돌을 갖고 오는 임무수행조차 하지 않았다
평등과 불평등에 관한 아주 단순한 실험이었지만 이는 희로애락의 우리가 속한 이 세상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않다. 세상 1%의 부자들이 전 세계 재산의 절반이상을 갖고 있으며 지구위 10%의 부자가 세계재산 총액의 80%를 소유한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여기서 찌질하게도 타인의 성취를 폄하하거나 우리들의 상한 빈정을 달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여전히 떠오르는 물음이 하나 있다. 과연 그들이 소유하고 누리는 그 모든 것이 온통 그들만의 행운이며 진정 부끄럼 없는 실력이었을까….
게다가 같은 종끼리 폭력을 휘둘러 동료를 죽이는 확률이 다른 포유류보다 인간은 무려 6배나 높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더더욱 우리들의 상상이 섬뜩하다. 합당치 않으면 분노하여 제손에 들어온 먹이마저 던져버리는 뇌를 갖고 진화해온 원숭이마저 그럴지언데 하물며 노사분규에서 분신자살을 감행해서라도 무리와 전체의 생존확률을 높여온 인류를 어찌 그들의 찌질한 탓만으로 돌리겠는가….
어차피 우리들 얘기이니 하나 더 해보자. 소행성 충돌로 인해 공룡이 멸종하고 이 지구의 빙하기와 간빙기를 견뎌내지 못한 네안데르탈인이 스러져가는 동안에도 우리는 슬기롭게도 바늘귀를 만들어 옷을 만들고 추위를 견디며 연대하여 살아 남았다. 그런데 선사시대의 유골을 들여다 보면 그들의 18%가 살해당했다. 자원을 독점하고 생존을 높이기위해 그들은 동종간 서로 폭력을 써왔다는 뜻이 된다. 아마도 거기서 이긴 자가 우리들의 선조가 되었을 것이다.
이는 20세기에 들어서며 각종 세계대전에서 희생된 사망자수를 합쳐도 채 3%를 넘지 않는 동종간 살해율을 상기하면 장담할 수 없으나 그래도 아직 희망은 있다. 그러면 우린 어느날 모두 개과천선하고 그만큼 덜 폭력적이 되었을까…. 그건 아마도 그동안 쌓여온 문화와 문명의 탓으로 동종살해는 더 복잡하고 음성적으로 숨어들었고 형태는 더 고급하고 세련되어 그랬을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그걸 통제하는 공권력과 근대적 국가의 출현과도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제 바이러스도 바이러스지만 그 공권력과 국가를 이끌 바로 선택의 선거철이 다가오고 있어 하는 말이다. 인류만큼이나 과대평가 받은 종이 이 세상에 없었듯 또 인류만큼 과소평가 받은 종 역시 없을 것이다. 그러니 기꺼이 우리 몫의 한 표를 이번엔 제대로 행사했으면 한다. 우리가 살면서 못 미더운 이에게 내 운명을 맡기는 것만큼 더러운 느낌도 또 없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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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혜 / 부동산인,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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