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밖으로 소리내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 큰 경고 소리가 들리고 사이렌 요란하지 않아도 우리의 마음 저 구석에서 그것을 듣고 있다. 방송마다 신문마다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고 준비해야 한다고 대서특필하지 않아도 그 기사의 저편에서 일어나는 우리의 위기를 읽는다. 그런데 아무도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지 않는다.
수십 년마다 한번 올까말까 한 재해가 너무나 빈번해서 새로운 정상이 되고 그 강도가 해마다 심해져 간다. 산과 들에 플라스틱이 없는 곳이 거의 없고, 바다에 우리가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가 쌓여온 지 70여년이다. 바닷물은 플라스틱 스프가 되었고 그 스프를 마시고 고기들은 죽어가고 살아남은 고기는 더 큰 물고기에 먹혀 우리의 식탁에 올라온 물고기는 결국 엄마의 뱃속에서 자라는 아기가 먹는다고 해도 플라스틱 제조 공장은 계속 돌아간다.
플라스틱 통에 싸인 물과 음식을 먹고, 플라스틱 섬유가 들어간 속옷과 겉옷을 입고, 수백 가지의 독성 화학물질로 처리된 플라스틱 전자기구에 싸여서 일하고 먹고, 놀고, 또 그러한 건축자재로 만든 성에서 산다. 그 성에서 배출되는 폐기물도 플라스틱 봉투에 싸여져 나온다. 쓰레기 매립장은 인간의 음식물 쓰레기를 주워 먹으려 몰려든 새떼들로 하늘을 덮고 그 쓰레기를 품은 땅은 썩지도 못한다. 홍수가 나면 어디서 나왔는지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나뭇가지나 흙탕물보다도 더 많고 강풍에 날리는 플라스틱이 봉지는 날아가는 새의 머리를 감싸고 그 새는 봉지를 쓴 채로 살아야 한다.
온난화 기체는 지구 대기권을 점점 두껍게 해 달빛과 별빛을 흐리게 하고 그 안의 생명체들은 해마다 점점 더 뜨거워지는 온실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데….
해수면이 올라가 섬나라가 없어진다는 얘기도 들었고, 북극의 북극곰이 얼음이 없어 헤엄을 치다가 힘이 빠져 죽는다는 얘기도 들었다. 영구 동토대 한대림의 수억만 년 얼어있던 기반이 녹아 물웅덩이가 만들어져 소나무, 전나무들의 뿌리들이 이리저리 흐트러져 술 취한 숲이 되었고, 빙하에 수억만 년 얼어있던 정체모를 바이러스들이 언제 어디서 우리를 공격할 지도 모른다는데, 인간에 의한 인류세 대량 멸종시대가 이미 시작되었고 진행되는 중이라는 얘기도 들었는데. 무슨 제대로 된 모습의 자연이 있어서, 무슨 아프지 않은 자연이 있어서, 시인과 예술인들은 여전히 자연을 찬양하는가? 이 아프고 더럽혀지고 착취 당하는 자연을?
금년에 태어난 아이가 80세가 되는 2100년이면 지구는 불덩어리 지옥으로 변하고 우리의 아이들도 삶의 터를 잃어 난민이 될 수도 있다는데. 이 세대는 기후변화를 만든 세대이면서도 대멸종의 마지막 세대가 될 수도 있다는데….
정작, 아이들이 분노해 일어섰다. 그들은 의사당 앞에서 유엔에서 거리에서 울먹이며, 자기들이 살 지구를 왜 망쳐놓았느냐고, 왜 자신들의 지구에 대한 걱정으로 마음껏 놀 수 있는 어린 시절을 빼앗느냐고, 이렇게 참혹한 지구 상태 앞에서 어른들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느냐고 세계의 지도자와 어른들을 꾸짖고, 수업을 거부하고, 거리로 뛰어나가 스트라이크를 벌여도… 우리들에게는, 그냥 하나의 뉴스?
왜 이리 조용한가? 왜 이리 아무렇지도 않은 양 우리는 그냥 살고 있는 것일까? 생태계 멸종이라는 절벽이 저 앞에 있고 우리 자신이 아이들을 밀어 그 벼랑 끝으로 계속 밀고 가면서 아무 죄책감조차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왜 우리는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화석연료를 태워 냉난방을 하고 자동차를 몰고 다니고 육식을 하며 아무 생각 없이 대기권 속으로 비소 같은 죽음의 물질을 계속 밀어 넣는가?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준 생명체, 코비드19로 경제의 엔진은 멈추고 사람들은 집에 숨어 있어야 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입자 이산화탄소로 전에 보지 못했던 재앙들, 한없이 타는 산불, 엄청난 바람과 홍수를 동반하는 허리케인, 마을을 뒤덮는 산사태를 겪고 있다. 이 두 개의 물체, 우리의 시각한계를 넘는 미시세계의 준 생명체와 입체를 이해하고 대처하는데 우리는 왜 과학자의 말을 듣지 않고 정치인의 말을 듣는가?
얼마나 더 많은 데이터와 증거가 모여야 사람들은 놀랄까? 얼마나 더 잦은 신종 바이러스의 공격과 얼마나 더 엄청난 재앙을 당해야 사람들은 행동을 바꿀까? 세계의 나라들이 모여서 아무리 머리를 맞대고 의논해도 신성한 생명의 산실, 아마존 열대우림은 계속 잘려지고 태워지고, 신성한 국유림의 보호구역의 석유채굴장으로 만들어 동식물을 삶의 터에서 내쫒고 엄청난 온난화기체를 대기권으로 퍼부어 더 뜨거운 지구로 만들려고 하는 독재자들.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얼마나 더 많이 자연이 아프고 신음하고 헐벗어야 사람들은 가슴속에서 늘 속삭이는 소리, 그 소리를 입 밖으로 내어 말하기 시작할까?
그날, 그날이 언제 올까? 사람들이 분연히 일어나, 팔을 걷어붙이고, 쓰레기를 만들려 하지 않고 하늘의 이산화탄소를 걷어내는 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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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 / 기후 전문가 워싱턴 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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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멈출수 없는 욕망으로 벌어지고 있으니 어쩌겠어요. 인간세상이 종말을 고하고 새롭게 시작되어야 겠지요